우울증에서 벗어나니 장점과 단점이 동시에 생겼다. 장점만 있을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그것도 같은 특징에서 장단점이 동시에 발생했다. 바로 '불안'과 '예민'이라는 특징에서 각각 발생한 장단점이다.
불안의 감소 - 그 장점과 단점
우울증이 심할 때보다 불안이 줄어들었다. 마음이 비교적 평안하다.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크게 타격받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는 작은 일에도 크게 동요하며 마음이 들쑥날쑥했다. 그런데 지금은 불안이 줄어드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생활에도 여유가 찾아왔다. 다른 글에도 썼지만 그 덕분에 취미활동도 하고 나를 돌아볼 여유도 생긴 것이다.
그런데 불안이 줄어들었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성취에 대한 동력과 에너지가 줄어든다. 여기서 성취란 미래의 꿈이나 희망 같은 긍정적인 느낌의 성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버림받지 않기 위한 노력, 낙오되지 않기 위한 노력,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노력 같은, 부정적인 상황을 피하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말한다.
이 같은 태도는 생활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실제로 최근 업무와 관련해 좋은 기회가 몇 번 왔었는데 최선을 다하지 못했고 기회를 잡지 못했다. 내심 속으로는 별로 잡고 싶지 않은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업무를 하게 되었을 때 찾아올 고통을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예전의 나 같았으면 필사적으로 기회를 잡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의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은 더 이상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도약의 기회임은 분명했으니까.
문제는 그 기회를 잡은 이후의 삶을 보장할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언제나 그랬듯 그 안에서도 비슷한 충동적이고 중독적인 양상의 생각과 행동을 지속하면서, 내 안의 무언가를 파괴하며 나름대로의 전투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엔 생활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히키코모리의 삶, 인생에 대한 비관, 죽음에 대한 극단적인 생각, 억울함, 분노, 우울이 지배하는 생활 말이다. 나를 비난했던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하루 종일 곱씹어가며, 나는 왜 미움받는 사람일 수밖에 없는지, 나는 왜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데 사랑받을 수 없는지에 대해 자조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 무의미한 말에 고통을 받으며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우울증이 있던 때에는 긴박함과 치열함이 가득했었다. 이에 반해 우울증 이후의 삶은 아무것으로도 무장하고 있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대신 삶과 생활에 대한 지속성을 갖게 됐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전에는 오로지 버림받지 않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는 내가 홀로 존재했다면, 이제는 다양한 내가 함께 삶을 살아간다. 실패하는 나, 성장하는 나, 좌절하는 나, 위로하는 나, 일하는 나, 취미활동하는 나, 기타 등등의 나. 삶의 색채가 다채로워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물론 그 색채 안에는 회색도 분명히 있다. 아름답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여기서 (나의 경우) 문제는 성취하기 위한 나가 너무 없어져버렸다는 것이다. 별다른 목표가 없는 상태에서 불안까지 감소해버리는 바람에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느낌이다. 가끔은 이대로면 좀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상황이 안 좋은 건 맞긴 한데, 주변에 좋은 사람들도 있고, 너무 먼 미래만 걱정하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다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 꼭 성공을 해야 하나, 꼭 꿈을 이뤄야 하나? 이루면 좋고, 안 이루어도 괜찮지 않나. 꿈은 변하는 것인데.
다만, 자신을 확장하는 삶만큼은 꼭 살아내고 싶다. 지금까지의 생각이나 삶의 트랙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걷고 싶은 욕망은 있고, 반드시 그렇게 할 것이다.
무시당하는 나 - 그 장점과 단점
이제는 타인이 나를 무시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 예전에는 상대방이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수시로 떠올랐다. 그래서 만만해 보이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하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누가 날 무시할 이유도 없고, 혹시 누군가 나를 무시한다면, 그건 상황마다 이유가 다를 수 있기 때문이지 내가 무시당할 만한 사람이어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단점은 타인의 마음이나 생각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졌다는 데 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파악하기 위해서 아주 세세한 것까지 촉각을 세워서 캐치하곤 했는데, 그런 민감성이 현저히 떨어져 버렸다. 상대방이 이해 안 가는 행동을 하면 그런 행동을 왜 하는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행동의 심리를 파악해 보려고 약간 애써보지만, 그 생각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깊게 생각할 만큼 관심이 있는 건 아니기에 생각을 멈춘다.
가끔 주변의 몇몇 후배들이 '00이 자기를 무시한다'라고 말하는 걸 볼 때가 있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후배들은 거의 정해져 있다. 자기를 무시하는 대상에 대한 분노도 동반한다. 그 후배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 00이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무시당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라는 의미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난 그 00이 다른 사람들을 그다지 무시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그가 성격이 더러울 뿐이고, 어떤 상황에서 그 후배들이 잘못 걸렸던 것뿐이다.
개인적으로는 위에서 밝힌 '성취에 대한 높은 갈망'과 '타인의 감정에 대한 높은 민감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능력 중에서도 특출 난 능력이 아닌가 싶다. 그때는 그 사실을 몰랐지만, 어쩌면 우울증이 있을 때 더 많은 가능성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싶다. 가끔은 그때의 나였으면 지금과 다르게 살고 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삶의 질은 떨어졌을지 몰라도, 지금보다는 겉보기 등급이 조금 더 높은 인간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