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감정이 갑자기 튈 때 내가 견디기 어려운 이유

[문영의 생각들]

by 문영

우리 가족 소개

우리 집에는 술을 좋아하는 남편과 세 살배기 아들이 산다. 나는 평소에 남편보고 ‘술 먹지 말아라’는 말은 하지 않는데, 이것은 타인에 대한 월권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 몇 시까지 들어와! 2) 또 누굴 만나려고! 3) 나만 애 보냐! 와 같이 여느 부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말은 안 하고, 못 한다. 그렇게 적당한 거리감을 두고 적당히 살아가고 있다.


내가 견딜 수 없는 부분

아마 티는 안 나겠지만 내가 견딜 수 없는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남편이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이다. 어제저녁 우리 집에 내 친구와 아이가 놀러 와 있었다. 와중에 남편 지인이 ‘21시에 술 먹으러 오겠냐’는 연락을 했고 남편은 우리에게 그걸 읽어주었다. ‘누가 21시에 술 먹으러 오라네. 아직 생각해 본다 했어…’ 하고 여지를 둔다. 나는 최근 여러 상황 등을 빠르게 생각하고서(예, 남편 건강검진 결과가 안 좋았고, 요즘 배가 많이 아프다고 했으며, 내일은 둘 다 출근해야 하고, 내가 늦게 퇴근하는 날이고, 오늘 21시까지 가면 또 새벽 3시는 되어야 들어오게 될 텐데?) 반감이 들 수밖에 없으나 내가 통제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결국 나가겠네?’라는 뉘앙스로 체념하듯 말을 건넸고 남편은 이제 기분이 상하게 된다. 나는 이게 견딜 수가 없다. 그 이유는 이어서…


➀ 남편의 기분이 왜 상했나 이해하기

남편은 나와 아이를 분명히 사랑하지만, 젊은 나이에 밖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도 크니 충돌과 갈등이 크다. 그래서 나가서 놀면서도 미안해하고, 나가지 않고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도 스스로 만든 통제감에 갇혀 답답해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나가서 놀라’며 밀어내는 말을 하니 방어기제의 하나로 분노가 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또한, ‘어차피 나가서 술 마시게 되겠다’라는 말은 개인의 자율권을 침해하는 말 아닌가? 여하튼 친구와 친구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기분이 나빠져 방에 들어가 게임을 하다가, 자기 공부를 하다가 했고 저녁을 먹지 않았다. 친구는 집에 가서는 ‘OO이 눈치 보며 있는 게 이젠 좀 힘들다.’는 카톡도 보내온다. 나는 남편의 기분을 이해해 주고 진심으로 사과하였으며 친구에게도 미안하다.


➁ 왜 나에게 분노가 일었는지 느껴보기

그런데, 상황을 이해하고 말고 상관없이 나는 한쪽에서 무섭게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끼고 크게 당황한다. 나는 남편의 처지를 잘 이해하여 내가 잘못 말했음을 알아차렸으나 이후 남편의 감정을 보듬어주고 사과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과한 분노를 느꼈다는 것인데, 이해하고 미안하면서도 화가 날 수가 있나? 내가 미쳐버렸나? 이건 ‘양가감정’ 같은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될만한 현상이다. 생각해 보면, 매번 이런 상황에서 나는 화가 났었으며 이런 상황은 처음이 아니었다.


나의 원가족

나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조금 이해가 될 것 같은데, 우리 집은 고부갈등이 너무 심해서 엄마가 가출한 적도 있었고 장녀인 나는 원가족 내에서 어른의 감정을 품어왔다. 그리고 너무 이른 나이에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오게 되었는데, 사회에서 독립해 가면서 매번 내 역할은 <참고, 보듬고, 키우고, 이해하고, 달래고, 돌보는 것>이었다. 또 다른 역할도 있다. <기능하고, 생산하고, 일로서 칭찬 듣고, 해내고, 해결하고 등>이었다. 나는 감정대로 행동해 온 적이 별로 없다. 예를 들어 아르바이트하다가 손님에게 머리를 맞아도 그만둘 수가 없으니 그냥 했다. 가끔, 아니 어쩌면 자주 감정이 터져 나온 적은 있지만 매우 부적응적인 모습으로… 우울증을 앓는다던지, 발작하고 소리를 지른다든지. 벽에 머리를 박는다든지. 나에게 ‘보듬기 외 n개의 역할’로 인한 부작용이 아주 깊은 곳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혼란스럽지만 ➁를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아주 혼란스럽다. ➀ 남편의 입장을 이해하고 미안함을 느끼는 것과 ➁ 내 과거에 따른 분노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니? ➀과 ➁는 시간의 층위가 다르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의 역할, 피로, 억눌렀던 감정 등이 현재로 찾아오는 것이다. 이 분노는 과거의 내가 반응하는 것이며 현재의 상황으로 인한 것이 아냐. 왜 화가 나는가? 이건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상대가 어떻게 행동하든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이 감정은 내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경고와 같다. 너, 옛날처럼 또 누구를 보듬고, 키우고, 이해하고, 달래고, 돌보려고? 이 비슷한 상황을 마주하는 순간 고통스러운 과거로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한 경계 사이렌이구나. 이건 본능적이고 기능적인 감정인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사실 어린 시절 그때와는 현재가 너무 다르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긴 하다. 다른 사람들 감정까지 보살피느라 고군분투하던 애어른은 이미 오래전에 커 버려, 지금의 나는 스스로 잘 지킬 수 있는 튼튼한 진짜 어른이 된 지 오래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고. 무엇보다 저 감정은 저 사람의 몫이고, 나는 내 몫을 하면 된다. 나는 더는 타인의 감정을 대신 짊어지고 보듬어줄 필요가 없다. 나는 더는 그때의 자리로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 이제는 그냥 지금의 나로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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