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럴 수 있을까?

[문영의 생각들] 작성일: 23/11/11

by 문영

친정엄마는 할머니 장례를 치르면서 엄청나게 울었다고 한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약 10년 전 할머니 때문에 한창 힘들 때 엄마가 나에게 '(할머니가 죽으면)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을 자신 있다'라고 카톡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걸 기억하는 건 나뿐이겠지. 쓸데없는 기억력. 나도 기억하기가 싫은데, 기억하는 게 좀 많다.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이다. 동생은 가고 싶은 학원들 다 가고, 앞으로 적금 따위가 모이고 있고. 왜 나는 싸구려 단과 학원 하나밖에 다닐 수가 없었는지 나는 왜 지원을 받지 못했는지 등을 소리쳤을 때, 엄마는 내 돈 내가 알아서 쓴다고 했었다. 그리고 최근 있었던 일이다. 우리는 신혼여행 겸 베트남 여행을 가기로 하고 3개월 된 아기를 며칠 맡기려고 몇 달 전부터 약속했었는데, 나는 미안해서 친정에 백만 원 단위의 가전을 사주었었다. 그런데 엄마는 여행 며칠 전 갑자기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게 돼서 여행 기간 중 아기를 며칠 못 봐준다고 하더라. 내가 백만 원이 넘는 가전까지 사주었다며 억울함과 당황스러움을 토로하니 그게 서운하다고 하더라. 본인은 <노후대비>를 해야 한다는 카톡... (그러니까 식당일을 해야 한다는 말이었음... 그런데 상식적으로 식당일을 해서 어떻게 노후대비를 하냐) 이러한 사건들의 반복적 경험은 나를 절망스럽게 하다못해 부모와 심리적인 절연을 결심하게 했다.


나는 평생을 불평등 속에서 살다가 이젠 부모의 노후대비를 도와 살펴 아뢰어야 하는 그런 입장이 되었다.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추가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어떻게 그래도 자식에게 내가 노후대비를 해야 한단 말을 할 수가 있는지... 나는 정말 모르겠다... 그 단어의 무게를 왜 자식이 지어야, 엄밀하게 말하면 내가 지어야 할까? 그간 할머니로부터 엄마를 방어하려 부단히 도 지랄하다가 원가족으로부터 쫓겨나 혼자 여기까지 일궈내어 놓고도, 이미 약속되었으며 보상까지 충분히 드렸으나, 그 노후대비를 위한 식당 알바보다 내 아기는 후순위가 돼버리는 그런 상황, 이런 무게를 내가 감당할 수 없겠다 싶으니 그 후부터는 그냥 가위로 잘라낸 것... 정말 이해가 안 되네... 대체 어떻게? 그런 말을 나에게? 내 아기를 본다. 나도 이런 과정을 겪어가며 자라났을 텐데? '응애'라고 외치며 울고, 쌀알 같은 이가 나고, 부모를 보고 큰소리로 웃기도 하고, 안아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손가락을 빨며 잠들기도 하고... 나도 이런 모습을 보였을 텐데 자식에게 내가 돈이 없어 노후대비를 해야 한다는 말을 어떻게...? 내 아이는 절대 부모의 역할을 대신 지을 수 없다. 나는 내 생명이 다하는 한 어떻게든... 저런 말은 안 할 것인데... 엄마와의 마지막 카톡은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지워버렸지만, 나를 사랑한다며 이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겠다고, 너는 기대라는 거였다. 그런데... 이제? 나이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또 다른 부모가 되어버린 내가 어디에 어떻게 기대는가? 그저 우리는 엄마가 아기를 봐줄 때 일급 6만 원을 잘 계산하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다. 그리고 할머니가 위독해서 가족들 다 불러모았을 때 엄마가 급하게 점심에 나가서 남편이 반차를 썼는데, 이 날은 3만 원으로 계산해서 입금했었음. 이 이상의 무엇인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모르고 하고 싶지도 않으며 그간의 삶의 관성이 있으니 할 수도 없다.


이번에 할머니가 죽고 나서 통곡했던 엄마는 어떤 맥락이었을까? 개인에게 궁금한 것은 아니고, 그 현상에 대한 궁금증. 어리고 아무것도 모를 때 시집온 자신의 삶을 다 망쳐놓고 첫 딸과의 관계도 다 박살을 내어버린 미친 노인네도(시어머니) 죽으면 슬픔과 그리움의 대상이 되는가? 죽음이 면죄부가 되는 현상을 직접 목격하고 나니 당황스럽긴 했다. 하긴, 그 눈물이 그리움과 슬픔만을 연유로 하겠어. 해방감과 무상함 그리고 모르겠지만, 알 수 없는 뭐가 섞여 있었겠지. 난 할머니 입관을 보기 싫었는데 별 감정이 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시체를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나 증오하고, 미워하고, 무서워하고, 상담도 받고, 치료도 받고, 죽여버리겠다고 어린이 때부터 성인 초기까지 타오르던 마음이 그냥 없었다. 볼 일도 없었지만 만일 봤어도 그 시체가 나에게 주는 의미는 다른 호실에 안치된 다른 할머니 시체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을 것 같다.


다른 가족들은 어땠을까? 왜 운 걸까? 나도 30년 후 그럴까? 혹은 그럴 수 있을까? 나도 부모님이 죽으면 그간의 괴로웠던, 그리고 이제 폭발해서 싹둑 잘렸던 그 줄이 다시 생겨나면서 갑자기 마구 슬퍼하고 눈물지을까? 나는 행복한 기억이 아무것도 없는데. 좋았던 기억이 없어도 그럴 수 있을까?


이런 글을 쓰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참 이상한 사람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터널의 종료지점까지 달려가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