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의 생각들] 작성일: 24/10/07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도 출, 퇴근길에 잡생각을 많이 하는 편인데, 오늘 어느 긴 터널의 초입에서 <약 15년 전 친할머니 포함 온 가족이 내 노래를 들으러 대학축제에 와 준 기억>을 떠올렸다. 그 당시 나는 최소 추정 천 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했다. 무대는 매우 만족스러웠고, 커뮤니티에 그 노래 부른 사람 누구냐는 익명 글까지 올라왔었더랬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대 빛과 깔끔하고 정확하게 피치가 조절되는 내 목소리, 그날 신었던 분홍색 운동화. 한쪽에 모여 서 있는 나의 원가족. 그 기억의 조각들을 복기하다가 나는 생뚱맞게도 눈물이 고인다. 왜일까?
나는 그들이 그리웠을까? 그것은 단언컨대 아니다. 나와 부모를 이어주던 그 끈은 완전하게 타버려 다시 이을 수가 없음에도...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리면 슬픔에 풍덩 빠지고 만다. 나는 <다양한 가능성이 열려있던>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운 거다. 그 가능성의 보기는 수도 없이 얘기할 수 있다. 어쩌면 엄마가 집을 나가지 않았더라면? 내가 20대 초반에 집을 뛰쳐나오지 않았더라면? 할머니가 조금 덜 폭력적이었더라면? 아빠가 우리에게 조금만 더 관심이 있었더라면... 무엇보다 내가 독립하게 된 가장 결정적이었던 사건, 할머니랑 몸싸움을 한 날, 내가 마침 밖에서 놀거나 해서 그날 집에 없어서... 그 싸움이 없었더라면? 사실 오늘날 이런저런 가정들은 의미 없다. 결국 우리들의 수백 가지 수천 가지의 언행과 사건들이 모이고 이어져 내 안의 끈이 끊어진 지 오래되었다. 그 가정들이 무슨 실효성이 있나? 현재의 나는 그들을 그리워하는 건 아니지만... 어떠한 다른 형태의 관계의 가능성이 일말이나마 남아있던 그 시절이 참 그립긴 하다. 그때의 나는 이런 상황이 되어버릴 줄은 꿈에도 모르고 가족들이 왔다는 사실이 그냥 기뻤고 동생들을 향해 웃으며 마이크를 흔들고 그랬는데... 내가 느꼈던 순수한 기쁨, 원가족 관계에 일말의 가능성이 있었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사무치게 그립다.
위 정도의 생각을 하니 터널의 중반 즈음 되었다. 나는 핸들을 잡은 손에 힘들 조금 주고 터널의 끝을 바라본다. 하지만 어쩔 수는 없어... 내가 해야 할 것은 내가 구성한 가정이 잘 굴러가도록 사회에서 기능하고 아이를 기르고 집안일을 하고 그 외 할 일을 하는 것 그뿐이야. 십수 년 전의 상황들을 끄집어내 슬퍼하고 애달파하기엔 나는 할 일이 너무 많고 그저 터널 끝까지 달려가는 수밖에 없어. 다른 길이 없어... 나는 터널의 종료까지(죽음, 종결) 이제 달려가는 수밖에 없어.
가끔 내가 아이가 힘들 때 잘 돌봐주지 못해 아이가 큰 상처를 입고 로봇이 되어버린다든지 나와 절연한다든지 하면 어떨까 상상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나는 위와 유사하게 또 아이가 나에게 안아달라며 울던 순진무구한 표정 따위를 떠올리며 여러 가능성이 있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매일 울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고 내 부모도 그러하겠지... 하며 이해해 주고 이 끈을 이어 붙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들의 슬픔은 그들 몫이고 책임이다. 내 서러움과 고통의 시간도 내 몫이었던 것처럼.
나는 생각의 끝에 긴 터널의 끝에 도착했다. 삶도 이렇게 흘러가리라는 생각을 한다. 내 상황과 감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시간은 균일하게 흘러가고 나는 죽음에 도달할 것이며 이것이 삶이다. 정신을 차리고 앞을 바라봐. 나는 더는 옛 기억에 흔들리고 슬퍼할 여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