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의 생각들]
꽤 오래 우울과 불안을 앓아오던 나. 나의 우울에는 여러 원인이 있었고, 그 작은 원인들은 얽히고 묶여 하나의 길이 되었다. 타고난 기질이 잘하는 것 좋아하고 나서길 좋아하는 면이 있었는데, 원가족과 정서적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겉돌다 보니, 성취욕구가 기형적으로 발달한 것. 게다가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이른 나이에 경제적으로 독립하게 되어 내 존재의 이유는 생산과 성취가 되었던 바이다. 대단한 성취는 아니지만 매사에 실수를 과하게 자책하는 것, 끝까지 해내려고 이를 갈았던 여러 장면들이 근거가 된다. 그리고 20대 후반. 운명처럼 시작한 교직원 생활. 나는 한 부서에 5, 6년이나 있었는데 그 부서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일 잘하는 것보다 자기 기분이 우선이었다. 느리다 못해 멈춰있는 그 집단에서 나 홀로 버티고 싸우고 일하며 거의 닳을 대로 닳아버렸던 세월이 참 무상하다. 우울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밥 먹다가도 울었고 자다가도 울었고 나중에는 울음도 나오지 않아 퇴근하면 방바닥에 드러누워 침잠하는 기분을 느꼈던 나의 세월... 부끄럽지만 내 우울이 티가 나기도 했던 것 같다. 가까운 이에게는 티를 내기도 했다. 상대가 어떤 상황인지 고려하기에는 내 시야가 너무 좁았다. 내 상황을 있는 대로 토로하고 나를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또 한 번 슬픔을 느끼며 물 밑에 쓰러져있었던 나. 그리고 그 시절로부터... 5년 정도가 지났다.
나는 30대 중반으로 넘어오고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우울을 야기한 많은 것들로부터 독립했다고 생각한다. 돌이켜보면 내 우울의 가장 큰 방아쇠였던 부서가 이동되었고(육아휴직을 다녀오면 부서가 바뀔 수밖에 없다) 아이를 기르면서 '잘하지 않아도 되는 영역'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나는 세상에 맞서 혼자 고군분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 많은 이들과 함께 늙어가며 후세대를 잘 기르는 역할을 성실히 하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아버렸다. 지금은 썩 우울하지 않고 기쁨과 슬픔을 느끼는 감정이 폭 또한 많이 줄었다. 마치... 취해있던 우울에서 깨어난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https://blog.naver.com/diverse0pony/223929123780
나와 유사하지만 또 다른 사람의 이야기. (나보다 4살 어린) 남편이 몇 달 전부터 정신분석 기반의 정신과에 다녔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약물도 꽤 여러 종을 먹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의 상처는 누구에게나 있을 테지. 그냥 편하게 말해 아버님이 배움이 길지 않으시고 감정적인 분이어서 폭력적이기도 회피하기도 하셨던 모양이다. 아빠가 된 남편은 그 상처를 오래 안고 현재도 고통 속에 있다. 최근에는 그 고통에서 야기된 것으로, (마치 나처럼) 어머님과도 연락을 끊었던 것 같았음... 문득 우울해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과거의 내가 언듯 비치기도 했으나, 그의 우울은 그가 안아야 할 그릇이라며 외면했던 것 같기도...
어제 남편이 밖에서 혼자 술을 새벽까지 먹고서는 엉엉 울면서 들어온다. 나는 자다가 깜짝 놀라 깼다. 아이도 눈을 떴는데 내 손을 잡고 자기 귀로 조용히 가져가는... 나는 아이의 귀를 막아준 채 그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어지는 흐느낌, 울부짖음... 어린 시절의 상처를 토해내는 울음소리들. 큰 소리로 무섭다며 목 놓아 운다.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는 아이를 진정시키고 나가 남편의 등에 손을 얹는다. 네가 두려워하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 네가 지금 무서워하는 건 실체가 없다. 몇 마디를 하니 아마 그 효과는 아니었겠지만 울음은 잦아든다.
아, 우울은 술주정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5년이 지나고서야 (몇 명 되지도 않았지만) 타인들이 내 우울을 공감해주지 못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내 우울에 너무 깊게 침잠되어 있어 마치 술에 취한 것과 같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사람들은 술에 취한 사람과 어우러질 수가 없는... 그런 것과 유사한 기제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술에 많이 취한 사람들끼리 소통이 원활하게 되던가. 각자의 얘기만 떠들 뿐이고 서로 대화를 나눈 들 서로 명료히 이해나 할까. 나는 술에 취한 것과 같았구나. 그리고 깨어나 다른 이가 취한 것을 마주하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구나. 어쩌면 5년 전 다른 이들도 그랬었을까? 만취한 사람을 마주한 것처럼... 어쩔 줄을 몰랐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