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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Jul 13. 2022

고향이냐 타향이냐

당연한 듯 보이지만 의외로 난이도가 있는 문제

# 고향이냐 타향이냐


돌아갈 고향이 있다면 당연히 고향이다. 고향을 등져야만 했던 사연이 있다면 타향을 선택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마치 유행가 가사에 등장했음직한 유치한 질문으로 치부할지도 모르지만, 도시 탈출을 꿈꾸는 자 모두가 한 번쯤은 고민하는 문제다.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도 부모 고향이 시골이라면 유사한 고민을 한다. 누구나 예측 가능한 문제로 보임에도 고민하는 이유가 무얼까?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누가 봐도 유리하지 않은가. 하지만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 발길을 멈칫하게 만든다. 평판은 과거와 현재가 모두 동원된다. 


"도시로 나가 성공했다고 하더니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보니 별거 없네. 난 고향 지키면서 땅이라도 늘렸는데, 넌 돈 떨어지고 병들어 고향으로 돌아오냐?"라는 말이 두려운 것이다. 세상 잣대로 성공한 사람이 아닌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고향을 떠날 때 모습이 어떠했는지도 중요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야반도주하듯 고향을 등진 사람도 고향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어쩌면 고향을 바꿔버린 영특한 사람들도 있으리라. 


갈등은 있지만 고향이 우선인 이유는 넘친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이렇다. 우선 활용할 인맥이 존재한다. 일가친척에 더하여 초등학교라도 고향에서 졸업했다면 동문 선후배들이 든든한 뒷배가 되어준다. 외지인 눈에는 조폭처럼 보이는 현상이다. 물려받은 집이나 땅이 있다면 삶터 이전에 따른 정착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다. 특히 들어온 놈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 시골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외지인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다. 귀농 귀촌인들에게 가장 아프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도시를 탈출하고도 다시 도시로 되돌아가게 되는 대표적인 이유다. 고향이라면 하등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향이 만사형통은 아니다. 위에서 말한 평판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면 차라리 타향이 속 편하다. 남들이 검증할 방법도 없으니 과거를 그대로 드러내지 않아도 된다. 이 경우 시골에서 태어났더라도 지금까지 살던 도시를 고향으로 말해도 무방하다. '고향 세탁 방지법'이 없지 않은가. 그러니 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도시 탈출 이유가 관계에 지쳐서라면 고향은 피해야 한다. 고향에서도 비슷한 속앓이를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타향에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도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고향에서는 불가능하다. 고향에서 그리 산다면 싹수없다는 소리는 각오해야 한다. 그 밖에도 게으른 농부를 꿈꾸거나 유유자적한 삶을 원한다면 역시 타향이 제격이다. 고향에서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던가.


모두에서 말했듯 도시를 탈출하면서 고향으로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이를 누가 부인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고향이 편치 않은 이유가 존재한다면 타향이 정답이다. 타향도 정이 들면 고향이라 했으니 정 붙이고 살면 그만이다. 도시 탈출이 목적이지 귀향이 목적이 아님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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