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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Sep 16. 2022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 돈이 목적이라면

혼자는 외롭다 짝과 동행하라

#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아내는 도심 속에 남겨두고 혼자서 도시를 탈출하려는가? 비겁하고 바보스런 짓이다. 짝과 동행하시라.


도시를 탈출해 산골로 날아든 사람들에게서 몇 가지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물론 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외관상으로는 개성이 강해 보인다. 머리를 기르거나(또는 스님 스타일) 수염을 덥수룩하게 방치하고 생활한복을 입는 등 겉보기에도 남다르다. 좋게 말해 개성이 강해 보인다는 소리지 고집이 세고 이웃과 어울리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활도 편하고 자유로움을 추구한다. 달리 말하면 생활이 무질서하다는 소리다. 듣기 거북할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이들은 주로 혼자 도시를 탈출한 중년 남성들이다. 눈치를 보거나 잔소리를 할 동거인이 없으니 자유로운 영혼 어쩌고 하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다. 


지금쯤 어떤 독자들은 필자에게 화를 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네가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이냐고. 필자는 10여 년 가깝게 산골에서 혼자 생활했다. 초기 2년간은 머리를 뒤로 묶고 다녔고, 수염은 귀한 손님이 방문하거나 스스로 더 이상 버티기 힘들겠다 싶을 때까지 깍지 않고 버텼다. 그 알량한 농사를 지으면서도 내키지 않으면 제키기 일수였다. 비슷한 모양으로 살아가는 지인들과 낮술을 즐기기도 했다. 곶감 농사철이 아니면 생활력 없는 무능한 조선 선비 꼴로 고상한 척 책을 뒤적이고, 써지지도 않는 글을 쓴답시고 자판을 두드리며 시간을 낭비했다. 이만하면 제3 자라고 말하기 어렵다.


우리는 왜 도시 탈출을 꿈꾸는지 자문해보자. 각자 수만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도심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맘 편히 자유롭게 살아가기 위함이 아니었던가. 이유가 그러할진대 왜 아내는 도심 속에 남겨두고 홀로 떠나려 하는가? 그 좋은 걸 왜 혼자만 즐기려 하는가? 이상한 일이다. 이기적인 행동이지 않은가.


산골에서 벌어지는 변화무쌍 하지만 뻔한 시간여행을 따라가 보자. 한동안은 가족, 이웃, 직장 등 대인관계에서 오는 피곤함 특히  마누라 잔소리가 없는 일상이 호젓하고 여유롭고 자유롭다 느껴진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외롭다는 생각이 뒤따르고 만사가 귀찮아지며 무기력증도 실감한다. 외형도 위에서처럼 개성 있게 변해간다. 가끔은 서럽다는 생각에 울컥하기도 하고, 드물지만 심약한 어떤 바보들은 극단적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변화를 감당할 자신이 있는가? 어느 누구도 쉽사리 답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내가 원치 않은데 어쩌라는 소리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더라도 수단 방법 가리지 말고 설득해야 한다. 알량한 자존심 따위는 집어치우고 온 마음을 다해 설득해보자. 필요하다면 연애시절에 써먹던 선의의 거짓말이라도 동원해보자. 그럼에도 아내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면 주기적인 방문 약속이라도 받아내자. 만족스럽진 않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도 확보하는 것이다. 최후 수단으로 어떤 이는 친구 같은 애인, 애인 같은 친구를 만들기도 한다. 결코 권장사항은 아니고 말이 그렇다는 것이다.


도시 탈출을 꿈꾸는 자유인들이여! 절대로 홀로 탈출을 감행하지 마시라.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짝은 도심 속에 남겨두고 혼자서 고난의 길을 가려하시는가? 부디 짝과 동행하시라. 


사족)

여러 사정으로 짝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예외다. 이분들에게는 무엇보다 우선하여 짝을 만드는데 집중하길 권한다. 치유가 목적이거나 도를 구하려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예외다.




# 돈이 목적이라면


우주 만물이 그러하듯 돈이란 놈도 절대 자연법칙을 따른다. 돈도 중력의 힘을 거스를 수는 없다. 돈은 뭉칠수록 밀도가 높아지고 질량이 증가한다. 강한 중력에 의해 주변 자본까지 끌어당긴다. 돈이 집중된 곳에서 벗어나지 않으려는 성질이 있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돈이 가진 속성이다. 이를 부정하고 돈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자본 밀도가 낮은 시골로 향한다면 자연법칙을 따르지 않는 무모한 행위다.


과거 산업화 시기에 나타났던 이농현상을 기억하자. 농민이 농사일을 버리고 농촌을 떠날 때 목적은 돈이었다.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 없고 기회마저 박탈당한 가난한 농민들은 돈을 좇아 도시로 향했다. 비록 도시 외곽 달동네 주민으로 전락하는 서러운 삶이었지만, 힘겨운 노동을 해서라도 돈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지금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도시 탈출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도시에서조차 돈에 쪼들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대안으로 시골을 택했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정히 말하면 도시에서 돈과 인연이 없었다면 시골에서도 그럴 확률이 높다. 도시에서는 막노동이라도 할 수 있지만 시골에서는 그것도 어렵다.


필자도 돈에 대한 욕망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돈을 목적으로 도시 탈출을 감행하진 않았다. 능력 범위 내에서 농사일을 하고, 나머지 시간은 글을 쓰고 강연을 다니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도 꿈을 좇아 걷는 중이고, 예나 지금이나 주머니가 가벼운 것도 변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버티고 있다. 혹시 앞으로 돈이 목적이 된다면 버티지 못할지도 모를 일이다. 


돈이 목적이 아닌 도시 탈출자들은 이후 전개될 상황을 버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돈이 아닌 다른 꿈이 있고 그 삶을 예측하고 각오했기에 견딜 수 있다는 말이다.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면 도시 탈출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돈이 목적이라면 도시에서 기회를 엿보는 것이 현명하다. 특히 젊은이들은 도시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보고 도시 탈출은 멀찍이 뒤로 미루어도 무방하다. 그대들은 시간이라는 자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 


사족)

도시 탈출을 사업으로 생각하고, 걸맞은 추진력과 자본력이 있는 사람들은 예외다.


돈을 목적으로 한 도시 탈출은 방향 설정 자체가 잘못되었다. 돈은 돈을 좇지 꿈을 좇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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