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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탈 Sep 16. 2022

대한민국은 모계사회 / 이상과 현실

아내 의견을 먼저 구하라

# 대한민국은 모계사회


대한민국이 모계사회라는 사실은 상식에 속한 지 오래다. 아니라고 우기고 싶은 분들은 자신과 주변을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위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지만 필자가 주목하는 사례는 이렇다. 가정 내 권력서열에서 아내가 최상위에 위치한다는 말을 사회가 용인한다는 것이다. 흔히들 집안내 권력서열이 아내, 자녀, 애완견 그리고 마지막이 남편이라 말한다. 씁쓸하지만 부인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비교 적절성에 이의를 제기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지만, 하이에나 집단 내 권력서열과 무척이나 닮아있다. 하이에나는 집단 내 암컷 우두머리가 여왕이고, 그 자식 중 암컷이 공주 지위를 차지하고, 기타 암컷들이 다음이고 마지막이 수컷들이라 한다. 수컷 입장에서 보면 공주 아비이면서도 그 자식보다 서열이 낮다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또 한 가지 사례는 아이들에게 고모보다 이모가 더 친근하다는 사실이다. 권력자인 아내가 의사결정권을 갖다 보니 시댁은 제켜두고 친정을 중심으로 교류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라면 해당 남편은 아내로부터 불량남편 취급받기 십상이다. 물론 아내 입장에서 시부모는 언제나 어려운 존재이다 보니 만만한 친정부모에게 끌림은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남성들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양보하며 산다고 자위하고 싶겠지만, 사회적으로 여성 지위가 높아지면서 생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도시 탈출을 말하며 모계사회를 논하는 이유는 그 험난하고 지난한 과정에서 여성의 지혜를 빌리라는 소리다. 혹시 모를 부정적 결과에 따라 불어올 후폭풍에 대비하는 예방적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현실적이고, 남성은 나이가 들어도 온전히 철들기 어려운 DNA를 가지고 있다. 도시 탈출 과정에서 아내 말을 들으면 큰 실수는 면한다는 소리다. 도시 탈출 과정에서 판단에 확신이 서지 않는 일이 발생하면 동료보다 아내 의견을 먼저 구하라. 차라리 모든 의사결정을 아네와 함께하는 게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 이상과 현실


누구라도 낯선 길을 홀로 떠나게 되면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게 마련이다. 도시 탈출이라는 중대사를 앞둔 상황이라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동료들과 함께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이는 경계해야만 한다. 이상과 현실은 너무나도 다른 이름이기 때문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라는 말이 있다. 옳은 말이다. 당연해 보이는 듯한 이 말을 귀농 과정에 적용한다면 어떨까?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각자에게 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설령 혼자 움직인다 하더라도 가족과 무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인생 2막을 함께하려는 동료 각자에겐 집단보다 우선해야 할 대상이 존대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를 간과한 채 의욕만 앞세워 일을 진행한다면 중도에 탈락하는 자 원천무효를 선언하는 자가 생길 때마다 감당하기 어려운 좌절을 맛보게 된다. 


귀농 귀촌 과정에서 대다수가 관련한 교육을 받게 된다. 물론 독단적으로 감행할 수도 있지만 흔치 않다. 특히 귀농 희망자는 모두 사전에 교육울 받는다. 저마다 처한 사정은 다르지만 귀농이라는 동일한 목적을 가졌다 보니 유난스러운 동료의식을 가지게 된다. 자연스러운 일이고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일이다. 교육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특별하게 다가오는 사람들도 생긴다. 교육 후반부쯤 되면 이들은 동일한 이상을 가진 집단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만남이 반복되며 계획은 점점 구체화되지만, 이때부터 새로운 고민이 시작된다. 


집단은 여러 형태일 수 있지만 문제가 되는 고민거리는 대게 유사하다. '돈'과 '다름'이다. 어딜 가나 이놈의 돈이 문제다. 어떤 사업이건 자본 투입은 필수다. 동일한 부담이 원칙이지만 그게 쉽지 않다. 각자 주머니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딴 주머니 차고 살지 않는 이상 가족의 동의는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족의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기도 한다. 상상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돈은 인간에게 희망을 선물하지만 절망을 안기기도 한다. 모두가 동일한 생각을 가진 듯하지만, 일이 구체화되면서 서로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고 가족이 관여된 일이기에 어쩔 수 없이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각자 샘 법이 다를 수도 있다는 소리다. 어찌 이를 탓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공동 이익보다 개인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본능이다. 가족이 연관된다면 더욱 그렇다. 급조된 단체는 조그마한 시련에도 쉽게 흔들린다. 혼자 일을 꾸미는 것이 두렵더라도, 만남은 귀히 여기고 정보는 공유하되 함께하는 것은 신중하면 어떨까? 이상과 현실이 매우 가까울 수도 있지만 무량대수만큼이나 멀리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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