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집
집은 사람 온기를 머금을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생명을 품지 못한 빈집은 죽은 공간이다. 그런데 산골엔 빈집이 사방에 널려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그리도 멀쩡하던 집이 주인이 떠나가 버리면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폐허가 되고 만다. 사랑이란 열병을 앓아본 사람은 그 이유를 쉽게 헤아릴 수 있다. 잊히거나 버려졌다는 사실에 쉽게 상처받는다. 집에 깃든 정령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여린 존재이다. 혼자서는 견딜 수 없기에 또 다른 사랑을 찾아 어딘가로 떠나버린 것이다. 그러니 빈집의 황폐함을 탓하면 안 된다. 떠나버린 야속한 사랑을 탓해야지 어찌 버림받은 사랑을 탓하려는가.
이곳 산골에도 빈집이 많다. 대처로 떠나버린 자식들 둥지가 되기 위해, 금쪽같은 새끼들에게 행여나 짐이 될까 두려워 늙은 부모는 낡고 초라한 고향집을 홀로 지킨다. 마침내 지친 부모는 먼 여행길을 떠나셨고, 자식들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인 잃은 빈집은 누가 봐도 표가 난다. 온기가 없고 쓸쓸함이 묻어난다. 이에 더해 괴기한 기운이 감도는 흉물도 지천이다. 빈집은 오랫동안 방치된 무덤과도 닮아 있다.
돌보는 이 없는 산골 빈집은 생활 시설도 고생을 한다. 죄 없는 동네 이장이 동파방지를 위해 꾀를 내보지만, 이를 비웃듯 얼음이 물방울을 타고 올라 수도꼭지를 틀어막았다.
때로는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빈집을 헐어버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집터도 있다. 이런 곳은 자식들이 고향으로 돌아올 확률이 비교적 높은 복 많은 땅이다. 반면, 폐허로 방치한 채 언젠가 돌아오리라 외치는 사람들은 허언일 가능성이 높다. 진짜로 돌아올 의지가 있는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라도 자신의 온기를 남겨두지 절대 방치하지 않는다.
정령마저 떠나버린 빈집은 어떤 이에겐 공포로 다가오지만, 누군가에겐 희망이 되기도 한다. 흙내음, 산골의 한적함, 숲의 청명한 기운과 자연을 동경하며 산골을 찾는 이방인에게 빈집을 양도하자. 자신에겐 막연한 희망에 불과한 빈집을 간절한 누군가에게 삶의 터전으로 제공하는 것은 큰 보시다. 옛 추억이 조금은 아쉽겠지만, 집은 생존을 위해 사람 온기와 손길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