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이 그리고 속옷
산 정상이다. 홀로 산행이라 가방과 스틱을 증거물로 인증사진을 찍는다. 정상에서 마을 쪽을 바라보니 같은 내용으로 두 개의 안내판이 서 있다. 좌측은 거창군에서 세운 것이고, 우측은 함양군에서 설치한 것이다. 이곳이 거창군과 함양군 경계라는 증표다.
척박한 산 정상에도 야생화가 화사하게 꽃단장을 하고 나를 유혹한다. 유혹하면 넘어가야 인지상정이 아니던가. 한참이나 꽃과 연애질을 하고 나니 정신이 몽롱해진다. 아쉽지만 살림이라도 차리자고 꼬드길까 도망치듯 서둘러 하산길에 나선다.
산중에서 만나는 계곡물은 언제나 귀하고 반가운 존재다. 오늘은 선녀가 목욕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못내 아쉽지만, 어쩌겠는가 다 때가 있는 법이거늘. 산을 타다 보면 전망대로 안성맞춤인 장소가 항상 있기 마련이다. 오늘은 정상을 제외하면 이곳이 전망대로 손색이 없다. 거기에 멋들어진 소나무가 자기만 바라보라고 요염한 자태를 드러낸다. 소나무 너머로 시선을 돌리니 하산길 산객을 배웅하는 산 정상이 보인다. 필자만큼이나 아쉽고 서운한 모습이 역력하다. 조만간 다시 찾겠다고 위로하며 발길을 재촉한다.
여기서 한 가지 고백을 해야겠다. 사실, 오늘은 송이를 알현하러 산을 오른 것이다. 비장의 카드까지 배낭 속에 숨기고 말이다. 결과는 눈 빠지게 송이를 찾아 헤매다 산 정상까지 올랐고, 목적지가 정상인 양 자신을 속이는(위로하는) 뻔뻔함까지 보인 하루였다. 아무래도 요 비장의 카드가 문제다.
우리 마을에는 송이 달인으로 불리는 노인이 있다. 그 아들이 얼마 전 모임에서 송이를 딸 수 있는 비법이라 귀띔을 한다.
"형님, 송이 따러 갈 때는 치마를 입고 가시면 됩니다."
"뭐? 왜?"
"형님, 송이 모양을 보세요."
"음~~~"
내용인즉, 송이 모양이 남성 상징과 닮았으니 치마를 보면 불쑥불쑥 올라온다는 것이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송이에 눈이 멀었어도 치마를 입고 산을 오를 수야 없지 않은가. 하여, 궁리 끝에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뭔가를 찾았다.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여차저차 산고 끝에 어렵사리 마법의 성물을 구해 배낭에 숨기고 산을 올랐다.
등산길을 따라 오르다 적당한 능선 길로 빠질 요량이었지만, 어떤 일인지 가도 가도 소나무 숲조차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오르면 보이겠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정상이었다. 그랬다. 아! 기대가 너무 컸나? 비장의 카드가 바뀌어서 그런가?(치마가 여자 속옷으로 바뀌었다.) 배낭 속이 아니고 입었어야 했나? 등등 원인 분석을 해보기만 쉽지 않다. 후배 귀띔이 농담인 줄 알면서도 '밑져야 본전이지'란 생각으로 감행한 송이 채취 산행은 이렇게 아쉬움만 남기고 끝이 났다. 하지만 산 정상에서 바라본 서상의 아름다움은 이를 보상하기에 충분하다. 다음에는 치마를 입어야 하나?
(사족)
알만한 분들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혹여 지역에 피해를 줄 가능성 때문에 산 이름은 생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