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와 장화

산골에서 뭇 짐승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

by 도시탈

# 회초리와 장화


회초리와 장화 이 두 가지 공통점이 무엇일까? 힌트라면 필자가 사는 곳이 산골이라는 점이다.


필자가 거처하는 농장은 해발 600m 정도에 위치한다. 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인간이 가장 살기 좋은 고도가 600m~700m 정도라고 하니 너무 오래 살까 봐 가끔은 겁이 나기도 한다. 누군가는 배부른 소리 한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건강하게’라는 전제가 없는 이상 근심거리가 틀림없다.


그런데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은 동물들 서식지로도 알맞은 모양이다.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모양새로 더불어 사는 동물들이 부지기수다. 고라니, 노루, 멧돼지, 수달, 뱀, 두더지 등등 아주 많다. 알고 보면 필자도 이웃이 꽤 많은 편이다.


그중에서도 이 친구는 여기가 천국인 듯하다. 고도가 적당한 것은 물론이고, 돌이 많고, 먹이활동을 하기 좋은 먹이사슬이 견고한 곳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천적이라고는 멧돼지밖에 없으니 이 친구 입장에서는 살만한 곳임이 틀림없다. 그렇다고 사랑스럽다 말하기는 어렵다. 징그럽고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이쯤 되면 모두 짐작할 듯하다. 바로 뱀이다. 사실, 이 친구는 겁이 많은 편이다. 사람과 마주치면 도망가기 바쁘다. 겁에 질려 바삐 도망가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고 가끔은 안쓰럽게도 느껴지기도 한다. 자기들이 궁지에 몰리지 않으면 먼저 공격하지도 않는다. 가끔은 로드킬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수난을 당하는 불쌍한 놈이기도 하다.


하지만 산골 주민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두려움인 것이다. 실증사례도 많다. 필자 거처 앞에 오미자밭이 하나 있다. 지금은 농사랄 것도 없이 방치된 밭인데 아픔이 있는 땅이다. 이곳은 원래 젊은 귀농 부부가 오미자밭으로 일구던 땅인데, 수시로 출몰하는 뱀 때문에 경작을 포기하고 아예 아랫마을로 이사를 가버렸다. 시설 투자비도 포기한 채 말이다. 지금은 뱀을 식량으로 여기는 늙은 농부가 이어받았지만, 오미자 농사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뱀 사육장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필자 오미자밭도 비슷한 환경으로 하루 한두 번은 이 친구와 대면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책이 필요하다. 우선, 장화를 꼭 신는다. 만약을 대비해서도 그렇지만, 심리적인 안정이 주목적이다. 물려도 안전하단 생각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대부분 농부는 장화를 신고 다닌다.


가끔은 회초리도 들고 다니기도 한다. 이놈이 공격 의사가 있다고 판단되면 기다란 회초리를 사용하여 숨을 거두어들인다. 물론, 징그럽고 거북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이때 의욕이 넘쳐 두꺼운 몽둥이를 사용하지는 말아야 한다. 경험으로 보면 사용이 불편하기도 하지만, 타격 시 지면과 접촉면이 적어 실패할 확률이 높다. 괜스레 힘만 빼는 꼴이다. 반면, 낭창낭창한 회초리는 휴대도 간편하고 공격 시 지면과 접촉면이 확대되어 성공 가능성이 아주 크다.

이 땅은 저 스스로 택한 삶터이고 자족하며 살아가는 보금자리이다. 편치 않은 이웃이 있다고 내가 떠날 수도 없고, 그들을 강제로 내몰 수도 없다. 불편하지만 더불어 살아야 할 이웃인 것이다. 그렇더라도 장화는 신고, 느낌이 있는 날은 회초리도 허리춤에 차고 다녀야 한다. 특히 밤에는 장화는 꼭 신고 외출해야 한다. 월봉산 달 밝은 밤에 큰 회초리 옆에 차고 마실이나 다녀오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