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러스 야상곡 ; 베딩 위에 녹아내린 달콤한 밤

올겨울을 준비하는 세가지 무드보드

by 이그조띠끄 김서윤

[시트러스 야상곡]


술병은 조형적 오브제(High),


잔은 빛을 담는 조각(Mid)


푸드 플레이트는

계절을 말하는 컬러 팔레트 (Low).


High–Mid–Low

높낮이를 변주한 회화적 레이어가 설치미술을 완성한다.










여름을 애정하지만, 유독 겨울이라는 단어에 끌린다. ‘겨-“와 ”울”의 음운이 부드럽게 이어지며 따뜻함과 쓸쓸함이 한 감정에 녹여진 단어, 발음 자체가 지닌 청각적 울림에서도 창백한 겨울 냄새가 난다. 눈 위를 걸을 때의 은빛 파삭임, 시린 바람에 실려오는 금속의 날카로운 잔향, 손끝까지 감싸는 울니트의 두툼한 결. 겨울은 늘 생생한 오감으로 먼저 도착한다.


하얀 눈발과 하얀 입김에 서린 무채색의 겨울 단상. 그 차가움이 있기에 집 안의 공기는 더욱 다정한 온기의 팔레트로 채색되어간다. 11월 말, 채비의 계절 겨울은 웅크렸던 몸집을 서서히 일으키며 거친 숨결을 고르고 있었다. 이제 그 기척을 따라 겨울의 문으로 부드럽게 들어갈 시간, 오늘은 난방 대신 감각으로 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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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러스 야상곡]

색의 선율 – 베딩 위에 녹아내린 달콤한 밤



겨울을 맞이한다는 건, 결국 몸을 뉘우고 쉼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여름엔 얇고 투명한 천이 빛과 바람을 받아내는 매개였다면, 겨울엔 조밀한 공기를 머금은 도톰한 패브릭이 어둠과 추위를 막아내는 방패가 된다. 침구는 단순히 잠을 위한 도구를 넘어, 새로운 계절을 여는 하나의 의식과도 같다. 시간을 감각화하는 아이템이자, 싸늘하게 식은 공기 속에서도 몸을 안온하게 감싸는 사적인 풍경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며 삶의 리듬을 결정하는 패브릭, 집은 계절을 입고 몸이 그 온기를 받아들인다.


딥그린의 무거운 가을 색조를 걷어내고 뽀얀 설경 같은 화이트 매트리스 커버를 씌웠다. 그 위에 한겹 더 코코아빛 패드를 올리니, 몽글한 직물 사이로 달콤한 무드가 번져나간다. 이어서 버터 옐로우 바탕에 가느다란 판스트라이프가 경쾌한 차렵 이불, 민트로 변주된 보드러운 배게, 그리고 상큼한 오렌지색 쿠션 하나를 비스듬히 얹혀 색의 리듬을 완성한다. 이때 컬러 레이어링에 더해 다채로운 텍스타일을 믹스매치해보자. 예를 들어 기본 베딩은 브러시드 코튼이나 울처럼 자연감 있는 소재를, 블랭킷이나 쿠션은 벨벳이나 보클레를 선택해 ‘질감 대비’를 두면, 시각적으로 훨씬 깊이 있고 풍성해지는 마법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겹겹의 직조가 포근함을 설계한다.


부쩍 짧아진 일조량에 마음마저 가라앉기 쉬운 겨울, 온도보다 먼저 바뀌는 건 낙천적인 색들이 연출해 낸 침실의 생동감이다. 특히 고채도의 웜톤은 채광을 받으면 빛을 튕겨내듯 공간을 더 환하게 밝히고, 저녁에는 석양빛 조도와 어우러져 아늑함까지 덧대니 겨울에 제격이다.



톡! 톡! 과즙 같은 색이 패브릭 위에서 터진다. 햇살 닮은 옐로우가 노오란 조명을 받아 은은한 달빛처럼 스미는 순간, 시트러스 야상곡이 시작된다. 컬러의 에너지가 밤의 장막 속에 베어들며 휴식은 음악처럼 감미롭게 울려 퍼진다. 베딩이 우리의 몸을 감쌀 때, 잠은 어둠이 아니라 빛의 한 겹으로 연주된다. 살아갈 힘의 근간을 다시 얻는 회복의 무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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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운지]

겨울의 성소 – 패브릭이 빚어낸 사유의 질감



침실이 몸을 내려놓는 곳이라면, 서재는 영혼을 품는 안식처다. 냉랭해진 타일 바닥은 마음까지 움츠러들게 하지만, 카페트 하나가 그 결을 온화하게 바꿔놓는다. 한올한올 샤기한 직조가 바닥의 한기를 덮어주고, 그 위에 놓인 작은 쿠션은 독서의 체류를 붙잡는 잔잔한 쉼표가 된다. 책등의 타이포그라피와 표지 디자인, 패브릭의 색채와 패턴이 나란히 공명할 때, 서재는 비로소 한 장의 페이지처럼 읽힌다.


겨울은 귀환의 계절이다. 밖으로 흩어졌던 시선이 안으로 돌아오고, 성글게 가라앉은 대기 속에 오히려 내면은 더 깊어진다. 쌓이는 눈, 아련한 밤, 그리고 훌쩍 지나간 1년이라는 흔적과의 대화.


마치 봄볕 싱그러운 잔디를 집으로 들인 듯한 이 원형의 그린 러그는 내게 고요히 머물며 반추하는 자리를 허락한다. 앉고, 기대고, 모양마저 달달해 시각적 즐거움까지 더하는 도너츠 쿠션 위에서의 낮잠에, 몸도 정신도 잠시 쉬어갈 틈이 생긴다. 이런 패브릭들은 하드한 가구가 만든 긴장감을 부드럽게 중화하며, 사색과 휴식의 층위를 더하는 겨울의 언어이다. 바이닐의 미세한 떨림과 타다닥 향초의 심지가 드리운 불빛은 공간의 온도를 반음 올려준다. 카라멜향 진한 루이보스에 한결 따뜻해진 내 손끝과 발끝에 닿는 패브릭의 촉감마다, 겨울 오후의 시간이 아스라히 붙잡힌다. 감각이 곧 사유의 환경을 만든다.


연말의 도시는 화려한 불빛과 환희의 소음으로 들썩거렸다. 문밖의 계절이 깊어질수록, 집 안의 서재는 겨울 무드 라운지로 완성되어 간다. 책과 향, 차와 음악, 그리고 카페트와 쿠션이 내어준 사색의 미장센. 오래 머물고 싶은 장면은 보통 이렇게 내밀하고 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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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운지]

겨울의 성소 – 패브릭이 빚어낸 사유의 질감



겨울은 외부 활동이 줄어들고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는 내향성의 계절이다. 집은 곧 세계의 중심이 되고, 정성들여 마련한 소소한 의식과 낭만적인 장치들이 계절을 버티게 해준다. 어른의 달콤하고 때론 은밀한 놀이터가 되는 홈바는 그 대표적인 공간이다.


따뜻한 침구나 담요가 육체를 감싸듯, 한 잔의 술은 내면을 데우는 열원이 된다. 특히 칵테일이나 와인은 미각뿐만 아니라 고유의 컬러감과 투명도로 겨울의 어둠을 가르며, 빛의 인스톨레이션 역할을 한다. 얼음이 유리컵에 부딫히는 소리, 잔의 곡선을 따라 흐르는 액체의 컬러풀한 리듬은 겨울밤의 정적을 깨는 사운드 퍼포먼스다.


주방 싱크대나 아일랜드 식탁의 작은 코너만으로도 근사한 홈바를 연출할 수 있다. 라벨 디자인과 실루엣을 고려해 병을 진열하고, 빈병에 드라이플라워나 초를 꽂아 데코소품으로 활용하면 좋다. 컵을 진열할 때는 높이·형태·대비를 주어 군집을 만드는 것도 하나의 팁! 유색 글라스, 크리스탈, 투명 유리잔처럼 다양한 소재를 조합하면, 광원이 닿는 표면마다 각기 다른 굴절로 입체감이 생긴다.


홈바는 겨울철 위로가 되는 음식과 함께하는 순간 더욱 가치를 발한다. 술이 감각을 여는 상징이라면, 음식은 몸을 차분하게 안정시킨다. 특히 화사한 핸드메이드 패턴 접시에 담긴 음식은, 조명보다 빠르게 온기를 더해주는 홈바의 건강한 조력자가 된다.



술병은 조형적 오브제 (High),

잔은 빛을 담는 조각 (Mid),

푸드 플레이트는 계절을 말하는 컬러 팔레트 (Low).


High–Mid–Low, 높낮이를 변주한 회화적 레이어가 설치미술을 완성한다. 토피 브라운빛 위스키와 푸른 세라믹 사이, 겨울은 포스터처럼 한층 더 선명해졌다. 집 안에 홈바를 만든다는 건 단순히 술을 진열하는 걸 넘어 빛과 질감, 색과 온기가 큐레이션된 작은 갤러리를 들이는 일과도 같다.



이제 사람들을 초대해볼까?


초대의 식탁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칵테일 한 잔, 접시에 담아낸 케이크 한 조각 그리고 빈티지 촛대를 밝히는 다정함만으로도 충분하다. 환대는 요란하지 않은 사소한 디테일에서 피어난다. 촛불과 샹들리에가 대화의 무드를 만들던 18세기 살롱처럼 술잔은 사교의 유혹이 되고, 접시는 관계의 약속이 된다. 오늘, 이 겨울의 홈바가 그 노스텔지어를 소환한다. 테이블 위에서 우리는 환대와 위로, 두 가지 계절의 언어를 동시에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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