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집 안의 온기를 만드는 목재의 미학

겨울이 길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늘, 우드 아이템을 한두 개 더 들인다.

by 이그조띠끄 김서윤


아무것도 아닌 순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물건에서

시적 감각을 발견하는 태도



일상의 시적인 해석

'Everyday poetry'








겨울이 깊어질수록, 집 안의 공기는 조금 더 둔탁해지고 희미한 잔광에 머문 빛은 한결 더 서늘하게 느껴진다. 모든 자연이 생장을 멈추고 고요히 얼어붙은 계절의 침묵 속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온기 있는 물성을 찾게 된다. 금속과 유리, 대리석과 콘크리트... 차갑게 냉각된 사물의 표면 대신 가장 먼저 손이 닿고 싶어지는 건, 언제나 우드가 가진 따뜻한 체온의 에너지다.


허니 오크, 메이플 골드, 호두 앰버, 토피 브라운 그리고 풍요로운 대지의 황갈색 음영까지. 빛의 각도에 따라 달콤하게 농도를 바꾸는 우드의 색감은 메마른 계절이 남긴 잿빛 그림자를 덜어내고 바라만 봐도 체온이 1도쯤 올라가는 듯, 정서적 온기를 불러온다. 손끝을 얹는 순간, 매끈하게 다듬어진 표면 아래 아주 미세하게 남겨진 목질의 입자가 피부의 감촉을 따라 잔잔한 열감을 전헌다.



나무는 성장 과정이 물질 내부에 서사로 남아 있는 재료이기도 하다.


응고된 지층의 단면처럼 파동을 그리는 나이테,

옹이에 아로새겨진 생장이 중단되거나 비틀린 균열의 흔적,

추상화의 필치로 표현된 기하학적 결의 굴곡.


다채로운 생장의 기록들이 모여, 모든 우드 표면은 고유한 시간의 문양을 남긴다.



이렇듯 겨울에 우드가 유독 더 아름다운 건 온도와 빛의 질감, 축적된 시간을 품은 재료라서 마치 사람의 체온과 맞닿는 듯한 친밀감과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우드는 겨울의 고립을 온기의 은유로, 침잠을 평온한 안식으로, 정적을 포근한 사색으로 감정의 축을 이동시켜 주는 취향의 계절 언어이다.


겨울이 길다고 느껴지는 날이면 늘 우드 아이템을 한두 개 더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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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우드 오브제로 일상의 따스함을 쌓아가는 가장 단단한 방식

Inspired by NEW NORDIC



계절을 따라가며 떠오르는 차도 달라진다.

막 딴 싱그러운 페퍼민트 잎을 띄운 봄날, 스패니시 오렌지차로 나른함을 깨운 여름, 그리고 늦가을까지 손에서 떠나지 않던 잔잔한 캐모마일 꽃차 대신 달큰한 캐러멜향이 그리워 루이보스차를 우린다. 우드 트레이 위에 단아한 실루엣의 스톤웨어 티팟과 잔을 올리고 도자 워머에도 초의 심지를 밝힌다. 루이보스의 붉은 찻잎을 우려 내는 동안 퍼지는 달큰한 카레멜 향을 음미하며 바라본 창밖 픙경. 온통 하얗게 변해버린 설국의 아득한 대기 아래, 뽀얀 햇살을 받아 더 하얗게 반짝이는 누군가의 걸음 자욱이 아련한 시정(詩情)을 불러온다.


타다닥... 트레이의 짙은 오크색은 막 피어오른 심지의 미열처럼 한 해의 시간을 공간 안에 데우고, 점묘법처럼 찍힌 차의 금빛 입자는 오후의 햇살과 섞이며 채도를 한 톤 부드럽게 눌러주는 루미너스 필터가 된다.



우드 트레이의 나직한 단차, 잔의 정갈한 윤곽, 차에 번지는 농밀한 잔향.

차와 함께하는 시간은 겹겹이 쌓여있는 외부의 소란을 지워내고 마침내 나만의 서사가 시작되는 시간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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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의 조형적인 모양도 온화한 공간의 리듬을 더한다. 기계로 찍어낸 규격의 선이 아니라 목재가 가진 결을 따라 누군가의 손끝으로 찾아낸 비정형의 곡선. 그 부드러운 둔각형의 리듬은 깎아낸 형상이 아니라 나무가 스스로 고백한 원초적 형태에 가깝다. 섬세한 사포질로 다듬어진 표면 위에도 수십 년 동안 나이테가 눌러온 압력의 평온함이 스며 있다.


작은 트레이 하나만 있어도 일상의 물건들은 제자리를 찾고 생활의 의식이 디자인된다. 커피잔, 캔들 등 소소한 데일리 오브제가 트레이 위에서 스틸라이프 정물화처럼 재구성되는 순간, 공간은 한층 단정해지고, 겨울의 질감은 또렷해진다. 겨울의 식탁 위에도, 침대 옆에도, 책상 위에도, 바닥에도. 어디든 자연스레 놓인 우드 트레이는 ‘사물의 온기’를 고요하게 끌어올린다.

그 위로 아침의 여명과 저녁의 연무가 하루 동안 드러나고 사라니다.



우드 트레이의 가장 깊은 미감은 사용되면서 완성되는 물성이라는 점이다. 음식이 남긴 미세한 얼룩의 잔광, 사용자의 손끝에서 생긴 맨질거리는 광택, 빛이 여러 계절을 거치며 맡긴 산화의 색. 이 모든 것이 시간의 파티나(patina)로 켜켜이 쌓여 인공적인 물성이 가질 수 없는 유기적 생활감을 만든다. 이런 아날로그 수공의 터치와 사적인 흔적 때문에 우드 트레이는 사물을 올려놓는 도구라기보다 빛과 손의 시간을 그려 낼 작은 캔버스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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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시적인 해석 Everyday poetry’


아무것도 아닌 순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물건에서 시적 감각을 발견하는 태도인 뉴노르딕 디자인 철학과 닮았다. 컵 하나, 티백 하나, 책 한 권이 놓일 때마다 트레이는 단단한 내면의 여백을 기록하며 하루의 리듬을 반복적으로 받아낸다. 그 표식이 바로 생활의 미학이고 작은 우드 오브제로 생활의 따스함을 쌓아가는 방식이다. 특별하고 거창한 즐거움 없이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잔잔한 깨달음. 겨울의 우드가 전하는 자연의 잠언이다.


지극히 평범한 사물들이 평범한 일상과 함께 겨울의 바람 속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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