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문장처럼, 세월의 침전이 만든 성숙된 미감이 그대로 스며 있다.
Inspired by WABI-SABI Interior
허전한 벽면에, 살짝 아쉬운 틈새 공간에 존재감 있게 비스듬히 사선으로 세워 놓은 고재 책장.
긴 세월 햇빛과 비바람에 고스란히 노출되며 자연스럽게 퇴색된 색감과 패인 자국, 비정형의 크랙(crack)이 무심하게 남겨져 있는 거칠기에 오히려 더 매력적인 오브제이다.
기계로 깔끔하게 절단되고 결이 정돈된 새 목재와 달리, 고재에는 어느 지점에서 인간의 손길이 멈추고 자연의 시간이 시작되었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경계는 일종의 ‘기억의 문장’처럼 읽히기도 헌다. 마모와 침식이 남긴 조형적 균열들 사이사이, 인위적으로 절대 가공해 낼 수 없는 고재가 품은 세월감이 왠지 모를 포근함과 편안함을 건네준다.
와비사비(WABI-SABI) 철학이 말하는 ‘불완전함 속의 아름다움’, 세월의 침전이 만든 성숙된 미감이 고재에 그대로 스며 있다. 풍화된 목질층, 닳아내린 모서리, 비틀린(Beuys) 음영은 고풍스러운 빈티지 오브제들처럼 ‘사용된 시간’을 관용의 미학으로 승화시킨다. 흠이 없는 정제된 재료 대신 흠을 품은 날것의 재료를 선택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취향 선언이 된다.
이런 여유로운 삶의 태도를 지닌 고재 책장 위에 화집이나 예술 서적을 살포시 올려두면, 그 자체로 한 폭의 회화처럼 느껴진다. 책은 색면처럼 배열되고, 책장은 장식적인 프레임 역할을 한다. 나무의 그을린 톤과 인쇄물의 색채가 공명하며 겨울 실내에서만 나타나는 밀도 높은 레이아웃을 만들고, 고재가 가진 시대의 결과 책 속 이미지의 예술사적 맥락이 서로를 반사하며, 서가는 하나의 서사적 인스톨레이션으로 연출된다.
고재 책장은 미술관 벽처럼, 다른 사물의 표정도 바꾼다.
책뿐만 아니라 포토 프레임, 소장 중인 LP, 작은 식물이나 향초 같은 사적인 기호의 오브제를 올려두면, 공간과 나 사이의 친밀도가 한층 더 깊어지며 애틋한 관계가 형성된다. 그래서 겨울의 방 안에서 만나는 우드는, 마치 한 계절의 미세한 감정을 수납하는 작은 아카이브가 된다. 고재(古材)는 단순히 오래된 목재가 아닌, 햇빛·습도·손길·계절·사용자의 역사가 켜켜이 흡수된 고유한 내러티브의 표면이기에. 그 위에 물건을 놓는 일은 새로운 기억을 오래된 지층에 보태는 의식이다.
‘시간이 만든 재료를, 다시 나만의 세계관으로 편집하는 행위’.
그걸 가능하게 하는 매개체.
금색도, 갈색도, 회색도 아닌, 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색조의 스펙트럼 속에서, 창백한 겨울빛이 고재의 러스틱한 표면 위로 가장 많은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페이드된 세피아 톤과 오일리한 그레인 입자 때문에, 사진에 포착되는 색마저 노스탤직한 필름의 색보정 같다.
오늘,
겨울의 첫 냉기가 나무의 결을 눌러 어둑하게 광을 내는 순간들로
산화된 파티나(patina)가 옅은 녹청의 막을 피워올리는 장면들로
방 안의 온도는 우드의 잔향을 따라 포근히 차오른다.
Inspired by Modern Boho Interior
라탄 의자는 기후의 조형물이다.
뜨겁게 눌린 열대의 습도, 찌르렁 적도 위로 치솟은 태양의 각도, 인간의 손이 반복한 직조의 운율이 하나의 곡면으로 응축된 이국의 미학이다. 재료가 자라온 지리적 질감과 전통 수공예 방식 그대로 물성 속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탄은 나무의 단단한 목질 대신 바람의 골격을 품었다. 덩굴 같은 섬유질을 휘어 만든 유기적인 형태는 춤추는 듯한 곡선으로 이국의 리듬을 불러온다. 그 리듬은 우리의 몸을 긴장보다 ‘쉬어가라’며 나른하게 유혹하곤한다. 촘촘히 엮인 라탄의 틈 사이로 햇살도, 공기도, 여유로운 휴양지의 하루도 코끝을 간질이는 알싸한 향신료 내음과 함께 자유자재로 흘러다닌다. 우리의 일상 리듬과 전혀 다른, 느슨한 열대의 시간성이 비일상적이고 낭만적인 삶의 여백을 만든다. 걱정이 천천히 걷히는 듯 이완된 긴 호흡, 태양 아래 말라가는 생의 긴장감, 그리고 규칙적인 기하학 패턴이 건네는 심리적 안정감까지. 그 ‘여유의 틈’이 바로 우리가 휴양지에서 경험하는 감각의 구조다.
어느 공간이든 라탄이 놓이는 순간, 그곳은 현실의 방에서 ‘해풍의 파동이 귓가를 간질이던 이국의 어딘가’로 즉각 변주된다. 라탄의 표면에는 늘 휴식의 심상이 깃들고 열대 특유의 밝고 얕은 그림자가 머물러 있다.
라탄은 패브릭을 만날 때 비로소 계절의 표정을 가진다.
계절이 바뀌며 색이 달라지듯, 같은 기억도 다른 온도로 느껴진다. 여름의 라탄에는 린넨이나 라피아 같은 가벼운 식물성 섬유로 열대의 통풍을 이어주고, 겨울에는 냉기의 무게를 조용히 떠받치듯, 폭신한 울이나 보드라운 벨벳을 씌우면 어딘가 남국의 여유와 유럽 겨울 살롱의 감미로운 무드가 동시에 스민다. 그 위에 청키 니트로 짠 도톰한 담요의 감촉을 툭, 무신경한 터치로 얹고 바닥에 아이보리 톤의 퍼 러그까지 더하면, 패브릭의 온도가 층층이 쌓이면서 입체적인 겨울의 음영이 만들어진다. 겨울 실내에서 열대의 온화한 바람의 구조 위에 패브릭의 온기라는 계절적 공존의 미감이 생겨난다.
태양 아래 잘 여문 밀빛을 닮은 라탄은 근본적으로 따뜻한 색온도를 지닌다. 웜화이트, 오트밀, 베이지의 크리미한 뉴트럴 컬러와 테라코타, 오크 브라운의 토양빛 어스톤이 이어질 때 겨울 공간은 조화로운 자연의 윈터 팔레트로 정리된다. 그리고 코발트·터키블루·라임·선셋 오렌지 같은 하이채도 계열이 올려지면, 무드 보드는 단숨에 뉴트럴존에서 보헤미안 컬러 스펙트럼으로 전환된다. 라탄의 웜베이스 위에 선명한 색점이 놓이면서, 마치 겨울 인테리어 화보 속 스틸컷처럼 자유분방한 이방의 컬러의 레이어가 완성되어진다.
라탄은 패브릭의 색만으로도 계절감을 재구성할 수 있는 재료이다.
여름 휴양지의 추억이 아닌 겨울을 이완시키는 식물성 쉼표. 이렇듯 라탄의 이색적인 매력은 휴양지의 로망을 거주의 정서로 바꾸어 놓는다. 가볍고 유연한 소재가 주는 계절적, 연출적 한계를 넘어 라탄은 우리의 공간에 ‘자연과 여행 그리고 비일상의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우드의 이국적 변주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