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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Oct 16. 2020

오늘, 콩들이 새롭다

[시 읽기] 송경동 '다른 서사'



다른 서사


                    송경동   

  

탈근대, 탈영토, 탈식민지, 탈구조화......

탈이라면 이런 것들만 생각해왔는데

오늘은 탈곡기로 콩 터는 일을 돕는다     


통통통 발동 소리 따라

차라락 쏟아져나와 새 부대를 채우는

해콩들이 실하고 오지다

함께 묶여 있다는 것도 고정관념일 뿐

언제까지 옛 인연에 갇혀 있을 거냐고

이렇게 지난 허물 탈탈 털어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일이 얼마나 값진 일이냐고   

  

우수수 쏟아지는

오늘, 콩들이 새롭다     


- 시집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 (창비, 2016)     




[단상]

시가 ‘탈근대’로 시작해서, 콩 터는 ‘탈곡기’를 거쳐, 지난 허물을 ‘탈탈’ 털어버리고 새로 태어나는 일로 전개된다. 이야기가 어디로 튈지 몰라 피식 웃음이 나온다. 그러고 보니 제목이 ‘다른 서사’다.      


시는 진지하게 주의나 사상을 다루며 성찰해야 한다는 것도 고정관념일 뿐이다. ‘콩 터는 일’이라는 저 값진 노동, ‘새 부대를 채우는 해콩들’의 산뜻한 현존. 오늘, 바로 여기에도 시로 태어나기에 충분한 서사가 있다. 



*사진 출처: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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