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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an 16. 2022

존엄한 죽음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영화 <괜찮아, 잘 될 거야> (프랑소와 오종, 2021)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라고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말했다. 그가 든 이유 중 몇 가지를 언급해보면 이렇다. 첫째, 이미 죽어 있다면 제때 문상을 할 수 있다(부고는 늘 죽음보다 늦게 오므로). 둘째, 죽음이 오는 중이라면, 죽음과 대면하여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죽음이 아직 오지 않는다면,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성심껏 선택할 수 있다.  (작가 특유의 촌철살인적이고 유머러스한 부분은 원문을 확인 바란다.)  그렇다면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이 시점에도 역시 죽음은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제일 것이다. 올 한 해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보다 존엄한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테니 말이다.     



   

   영화 <괜찮아, 잘 될 거야>는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자전소설 <다 잘 된 거야>(작가정신, 2016)를 프랑소와 오종 감독이 영화화한 작품이다. 감독은 ‘존엄사/안락사라는 무겁고 민감한 주제를 매우 현실적인 시각에서 절제된 감정으로 담담히 그려냈영화를 보고 나면, 자유와 존엄을 가진 존재로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가까운 이들의 필연적인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생각이 많아진다. 실제로 노년과 중년에 접어든 쟁쟁한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가 돋보인 영화이기도 하다. 딸 엠마뉘엘 역을 맡은 소피 마르소는 세월의 흐름을 실감하게 하면서도 우아하게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진솔하게 보여주어 좋았다. 개인적으론 등장하는 장면은 짧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엄마 역할을 연기한 샬롯 램플링의 텅 빈 얼굴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엠마뉘엘(소피 마르소)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앙드레 뒤솔리에)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여동생 파스칼(제랄딘 펠라스)의 전화를 받고 응급실로 향한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아버지는 신체장애를 얻어 휠체어 신세가 되고 오른손에도 마비가 온다. 예전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상태는 호전되고 있었다. 두 딸은 갑작스럽게 잃을 뻔했던 아버지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차차 회복되고 있다는 사실에 안심했을 것이다. 아버지에게서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 나오기 전까지는.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아버지는 엠마뉘엘이 혹시나 듣지 못했을까 봐 같은 말을 두 번 반복한다. 엠마뉘엘은 큰 충격을 받고 도망치듯 병원을 빠져나온다.     


"끝내게 네가 나를 도와주면 좋겠다." 엠마뉘엘에게 아버지가 존엄사 의지를 밝히는 장면




   ‘존엄사/안락사’를 둘러싼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존엄사’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조치 등의 의료행위를 중단해 인간으로서 품위와 존엄을 유지하면서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일반적으로 ‘존엄사’는 소극적 안락사를 의미하며, 적극적인 의미의 안락사를 허용하는 나라는 네덜란드 등 일부 국가뿐이다. 스위스의 경우엔 안락사 지원 전문 병원을 갖춰 의료진이 마련한 약물을 환자가 자신에게 직접 투여하여 사망에 이르는 ‘조력 사망’을 허용하고 있다. 프랑스에선 2015년 '안락사'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엠마뉘엘 베르나임의 이 자전소설이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원작 소설은 영화와 거의 유사한 흐름이지만 1인칭 시점에 현재 시제로 서술되어 독자를 엠마뉘엘의 감정에 깊이 이입하게 한다. 엠마뉘엘은 아버지의 존엄사 의지 선언 후에 흔히 충격적인 상황에서 거치게 되는 4단계의 심리 변화, 즉 ‘부정-분노-체념-인정’을 차례로 겪게 된다. 그녀는 처음엔 아버지의 문제를 회피하려 하지만, ‘사고가 난 뒤로 아버지는 이렇게 똑똑히 말한 적이 없었다’(p.61)는 것을 이내 깨닫는다. 아버지가 단순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뱉은 말이 아님을또렷한 정신으로 품위 있게 삶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한 것임을 이해하게 된다아버지는 이미 자신의 사회적 죽음을 인지했고 단지 육체적 죽음이 오길 기다리며 생명을 연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 내린 것이다.     

 


   엠마뉘엘은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고 안락사를 실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조력 사망’을 허용하고 있는 스위스의 전문 기관에 연락을 취해 아버지를 스위스로 옮기기로 결정한다. 과정에서 엠마뉘엘과 파스칼 자매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 - 아버지의 남자친구(동성애 성향의 아버지임)와 친척들의 반대, 딸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 자살 방조죄라는 법적 문제, 경찰 심문 및 조사 등에 부딪히지만, 결국엔 모든 일이 잘 해결되고 아버지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한다. 내적 갈등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존엄사 의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어떻게든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자식의 입장은 슬프면서도 고귀했다중간중간 아버지와의 관계, 과거의 추억(사랑과 감동의 경험들은 물론 상처의 순간들까지)을 되새기는 딸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스위스 기관의 전문가를 만났을 때 엠마뉘엘은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꾸는 경우도 있느냐고 묻는다. 담당자는 자신이 경험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남자에게는 어린 아내가 있었는데 작별의 순간을 위해 예쁜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 아내의 모습을 보고는 결심을 철회했다고 한다.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의 아름다운 모습을 더 오래 보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이 이야기 때문이었을까? 엠마뉘엘은 아버지가 스위스로 떠나기 전 마지막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에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나타난다. 평소 블루 계통의 실용적인 옷을 즐겨 입던 그녀였다. 아버지는 딸에게 빨간색이 잘 어울린다며 예쁘다고 말하고 엠마뉘엘은 순간 참아왔던 눈물을 흘린다. 아마도 이 장면은 아버지의 마음을 돌리고 싶었던 딸의 마지막 시도였을 것이다.   

  


   영화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죽음도 경우에 따라 개인의 선택 문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 같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질문이 떠올랐다. 만약에 내가 극 중 아버지와 같은 입장이라면 존엄사를 원했을까? 자식들에게 큰 짐을 안겨주면서까지 이런 부탁을 했을까? 내가 딸이라면, 아버지의 선택을 존중할 수 있을까? 복잡하고 위험한 데다 가슴 아픈 안락사 과정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나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남기면서 동시에 답은 개인의 선택에 맡기는 점이 좋았다. 영화의 제목처럼 어떤 선택에도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죽음을 슬프지만 결코 비참하지 않게인간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우아하게 연출한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영화 <괜찮아, 잘 될 거야>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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