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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22. 2021

출구 없는 미로

프란츠 카프카의 <소송>(문학동네, 2010)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 어느 날 아침 느닷없이 체포되었기 때문이다. (p.9)    

 

    <소송>(프란츠 카프카, 문학동네, 2010)의 첫 장 「체포」의 첫 문장이다. 독자는 이 문장을 읽으며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이가 대체 누구인지, 주인공이 무슨 짓을 했길래 갑작스럽게 체포되었는지 궁금해진다. 당연히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 그 해답이 있기를 기대하며 소설을 읽어나간다. 


    그런데 해당 문장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군가 (...) 중상모략한 것이 틀림없다’라는 말은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에서 ‘그가 무슨 특별한 나쁜 짓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의 ‘무슨’, ‘특별한’, ‘나쁜’이라는 단어는 어느 것 하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로 서술이 끝나버리면 누구도 확신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다. 결국 여기서 확실한 건, 요제프 K가 체포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준 정보 중에 믿을만한 건 이것 하나다.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는 건, 이 소설이 끝까지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소송 당사자인 요제프 K도, 독자도, 그가 소송 중이라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의 정보를 얻지 못한다. K는 자신의 체포 사유(죄목)와 명령을 내린 기관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그가 접근 가능한 인물들은 죄다 말단 직원들 혹은 관리를 보조하는 여성들뿐이다. 이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기능적으로 충실하게 하고는 있지만, 전체적인 사안은 모르며 알아야 할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그저 상급 관청의 일에 착오란 있을 수 없다며 복종한다. 


    법원은 외부에서 도저히 파악되지 않는 정체불명의 거대 조직이며(“모든 것이 법원에 속해 있습니다.”(p.185)),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 난공불락의 요새다. K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은 이 거대한 조직에 맞서는 행위다. ‘허위가 세계 질서’(p.277)인 세상에서 사건의 진실 따윈 중요하지 않다. 점점 난처한 상황에 몰리는 K는 막판엔 모든 걸 체념하고 관망하는 자세를 취한다. ‘권위가 관료들에게도 모호하다지만 그에 대처하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종잡을 수 없다’는 발터 벤야민의 말은 K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그리고 소송이 시작된 후 일 년 만에 K는 비참하게 처형당한다.     

 

그가 한 번도 보지 못한 판사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가 아직 이르지 못한 상급 법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는 두 손을 쳐들고 손가락을 쫙 펼쳤다. (p.287)
    

    소설의 거의 마지막에 대성당 신부는 요제프 K에게 법의 서문에 적혀있다는 비유담('법 앞에서')을 들려준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시골에서 온 남자가 법 앞에 도착해 문지기에게 안으로 들여보내달라고 하지만 입장을 저지당한다. 문이 열려있는 데다 문지기도 언젠가 들여보내 줄 듯이 얘기해 그 앞에서 기다리지만, 끝내 그는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법의 문에서 흘러나오는 광채를 보며 죽어간다. 


    이는 소설 속 요제프 K의 이야기와 맞닿아있는 동시에 이 소설을 읽는 독자의 입장과도 유사하다. 독자는 분명 소설의 입구에 도착했는데 그 안으로 깊숙이 들어갈 수가 없다. 아예 문이 닫혀있다면 책을 덮어버리고 돌아서기라도 할 텐데, 작가는 언젠가 모든 내막이 밝혀지지 않겠는가 하는 암시를 흘리며 우리를 끝까지 가보게 만든다. 마지막 장 「종말」에 이르러서야 독자는, 결국 이 소설은 ‘출구가 없는 미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카프카는 첫 장 「체포」와 마지막 장 「종말」을 동시에 집필하고 중간 부분을 비연속적으로 써나갔다고 한다. 애초부터 작가는 예정된 결말을 감추고 독자가 소설 속에서 K의 무의미한 시도를 따라가며 길을 잃고 헤매도록 설계한 것이다. 요제프 K와 시골 남자처럼 독자는 카프카의 소설에 대해 어떤 절대적인 이해의 단계엔 결코 가닿지 못한다. 하지만 독자는 접근이 금지된 이 소설에서 꺼질 줄 모르고 흘러나오는 광채를 알아본다. 이 광채에 사로잡힌 독자는 소설의 닫힌 문 앞에서 망연자실하면서도 다시금 그의 다른 작품의 입구를 기웃거리게 된다.     


여기는 자네 말고는 아무에게도 입장이 허락되지 않아. 왜냐하면 이 입구는 단지 자네만을 위한 것이었거든. 이제는 가서 그 입구를 닫아야겠네. (p.269)     




    카프카는 1923년 6월 12일 일기에, “글을 쓸 때는 언제나 더 불안해진다.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단어들은 유령 – 손을 이렇게 휙 돌리는 것이 유령들 움직임의 특징이다 –의 손안에서 방향을 바꾸면서 화자에게로 끝을 겨누는 창이 된다.”고 썼다. 카프카의 소설들이 보여주는 종잡을 수 없는 흐름과 자기 파괴적 결말은 어쩌면 작가 자신에게 내재해있는 불안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의 작품이 발산하는 불가해한 광채도 여기서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프란츠 카프카 <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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