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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Nov 03. 2021

솔직하고 정확한 글쓰기

조지 오웰과 위화의 글쓰기 (feat. 나의 실패담)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에는 <서점의 추억>이라는 에세이가 있다. 오웰이 중고 서점에서 파트타임 점원으로 일하면서 경험했던 것을 특유의 독설과 유머로 써 내려간 글이다. 이 글을 읽고 나도 한번 ‘광고 회사의 추억’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도했다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자신의 경험을 오웰처럼 솔직하고 신랄하게 쓴다는 게 쉽지 않음을 느꼈다.     


우선 내가 긴 시간 몸담았던 광고업과 회사를 비판한다는 것이 마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불편했다. 한편으론 나의 개인적인 경험과 감상일 뿐인데 그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싸잡아 깎아내리는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게다가 그렇게 쓴 글이 사회에 혹은 누군가에게 유용할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어쩌면 단지 누군가를 화나게 만드는 글을 쓸 용기가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작은 일이라도 무언가를 폭로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조지 오웰은 삶과 글이 놀랍도록 일치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그의 글은 그가 직접 경험한 시대적 사건들과 사회의 부조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고, 그의 삶은 그가 글에서 밝힌 견해와 신념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의 저서 <<나는 왜 쓰는가>>에는 29편의 에세이가 발표 시기순으로 실려 있어 오웰의 생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의 글과 생각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오웰은 사립 기숙학교에서 받은 차별을 <정말, 정말 좋았지>에 썼고 영국의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 간부로 근무하면서 느낀 제국주의와 식민 통치에 대한 환멸을 <교수형>과 <코끼리를 쏘다>에 적었다. 런던에서의 빈곤과 실업의 경험은 <스파이크>에,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의 실상은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본다>에, BBC 라디오 프로듀서로서의 경험은 <시와 마이크>에 담았다. 오웰의 다른 책(소설과 르포)을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비판적 양심에 따라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을 썼다.     


책이란 게 과연 어떻게 씌어지는 것인가? 아주 낮은 수준이 아닌 이상, 문학은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다. 

_조지 오웰, <문학 예방>, <<나는 왜 쓰는가>>, p.231  

  

이 시대에 조지 오웰과 비슷한 작가를 꼽으라면, 나는 중국 작가 위화를 추천하겠다. <허삼관 매혈기>, <형제> 등 그의 소설에는 중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인식과 풍자가 가득하다. 오웰이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p.297)에 몰두했듯이 위화 또한 ‘5월 35일’(1989년 6월 4일의 톈안문 사건을 돌려 가리키는 말)식 자유를 발휘해 정치적인 글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또한 위화의 산문(<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등)은 오웰의 글과 마찬가지로 작가의 문제의식과 경험적 통찰들이 정직하게 담겨 있다. 신형철 평론가의 말처럼 ‘생을 헐어 쓴 글의 힘’이 느껴진다. 위화가 <형제>의 서문에 쓴 ‘세상이 취했는데 홀로 깨어 있을 수는 없습니다’라는 문장은 조지 오웰의 ‘만일 우리가 가라앉는 배에 있다면 우리의 생각은 가라앉는 배에 관한 것이 될 터이다’(p.438)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이들은 시대의 불의와 사회의 병폐를 외면하지 않고 글로써 맞서 싸웠다.      


작가의 관점은 정신건강 차원의 온전함, 그리고 자기 생각을 밀어붙이는 힘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 이상으로 우리가 요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재능일 것이며, 그것은 확신의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_조지 오웰, <정치 대 문학: <걸리버 여행기>에 대하여>, <<나는 왜 쓰는가>>, p.329   

 

조지 오웰과 위화의 글에서 발견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공통점은 정확성이다. 이들의 서술은 간결하고 명확하다. 오웰은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p.271)고 말하며 ‘기발하게 쓰기보다는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해왔다’(p.299)고 밝힌다. 위화도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문학동네, 2012)에서 복잡하고 어지러운 중국의 삶의 모습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열 개의 단어를 세심하게 선택했다. 이처럼 작가가 정확하게 쓰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글이기에 우리는 두 작가의 글에서 진실에 가까운 것을 읽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나는 이 책에서 끊이지 않고 도도하게 흘러가는 당대 중국의 삶의 모습을 열 개의 단어 속에 축약하고자 한다. 시공을 가로지르는 나의 글이 이성적인 분석과 감성적인 경험, 그리고 진실한 이야기를 하나로 녹여낸 것이기를 기대한다.

_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p.18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나의 글쓰기 실패 경험을 돌이켜보니, 글을 쓰겠다는 충동은 있었으나 ‘왜 쓰는가’에 대한 고민은 충분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조지 오웰과 위화, 두 거장의 글처럼 개인적인 경험이 시대의 통찰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글을 쓰려는 동기와 글이 지향하는 바가 우선 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솔직하게 밝힐 용기와 그것을 정확한 언어로 표현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조지 오웰 <<나는 왜 쓰는가>>, 위화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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