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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an 22. 2022

사랑의 이면을 들여다보다

이승우의 <마음의 부력>(문학사상, 2021)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설의 제목이 <마음의 부력>(문학사상, 2021)이다. ‘부력’의 사전적 정의는 기체나 액체 속에 있는 물체가 그 물체에 작용하는 압력에 의하여 중력에 반하여 위로 뜨려는 힘이다. 중력이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인간의 현실, 즉 삶이라면, 부력은 삶에 반하여 자꾸만 현실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힘을 의미하는 것일까? 물체에 작용하는 부력이 중력보다 크면 그 물체는 뜬다. 작가 이승우는 이 소설에서 마음 깊이 억눌러놓았던 죄책감이 통제를 벗어나 결국 수면 위로 떠 오르고 마는 그 쓰라린 순간을 포착해낸다.  



   

   소설은 아내로부터 어머니께 빌린 돈의 용처를 추궁당하는 ‘나’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시골에 홀로 사는 노모가 있고 이른 나이에 죽은 형이 있는, 평범하고 반듯하게 살아온 공무원이다. 맹세코 돈을 빌린 적이 없는 ‘나’는 결백을 증명하려 하는데, 그의 어머니는 “그렇게 날짜를 안 지키면 어떻게 하냐? 사람이 신용이 있어야지.”(p.27)라며 책망하는 소리를 해 그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채권자를 대신하여, 혹은 채무자인 ‘나’의 보호자 신분으로 어머니는 주인공에게 채무를 갚을 것을 요구한다. 그는 도대체 무슨 채무를 진 것이고, 채권자는 누구인 걸까? 그는 정말로 자신의 믿음처럼 무구한가.     


   어머니는 과거 두 형제 중에 동생인 화자를 편애했다. 구약 성서에서 큰아들 에서보다 작은아들 야곱을 편애한 리브라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형을 미워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다른 누군가가 사랑받지 못하는 일이 일어’(p.37)난 것일 뿐이다. ‘사랑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설’(p.37)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치우친 사랑은 형의 목소리를 ‘나’의 목소리로 착각하긴 하지만 ‘나’의 목소리는 확실히 인지하는 식으로 은근하게 표출되었다. 사실 어머니가 보기에 모든 면에서 동생인 ‘나’가 우월했고 형은 미덥지가 않았다. ‘나’는 대학원을 졸업 후 안정적인 직업인 공무원이 되어 이른바 ‘출세’를 했고 한 가정의 어엿한 가장이 된 반면에, 형은 대학도 졸업하지 못했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면서 벌이도 시원찮았으며 마흔이 넘고도 가정을 꾸리지 않고 소설을 쓴다, 연극을 한다 떠돌아다녔다. 그러다 갑작스럽게 젊은 나이에 죽고 만 것이다.      


   생전에 형은 자식 노릇을 못 한다며 동생에게 “면목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런 형에게 마음의 짐이 있었다. 리브라가 장자인 에서가 받아야 할 아버지의 축복을 빼앗아 동생인 야곱이 받도록 한 것처럼, 어쩌면 ‘형에게 돌아갈 몫을 부당하게 차지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p.36)을 ‘나’는 떨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편애의 대상이 된 사람이 느끼는 마음의 불편함을 사람들은 간과한다. (...) 치우친 사랑에서 제외된 자만이 아니라 그 사랑의 선택을 받은 자 역시 비자발적이다.’(p.36)라고. 안타깝지만 이 모든 건 ‘사랑이 한 일’이고 우리는 그 사랑의 이면까지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는 마음의 빚이 있지만 갚을 대상이 이미 죽어 세상에 없는 현실을 살고 있다. 어머니의 난데없는 채무 통보는 그에게 형에 대한 부채감을 떠올리게 했고 그는 자책감에 빠진다.   

  

   어머니의 마음 상태는 더욱 위태롭다. 어머니는 형에게 딱 한 번 싫은 소리를 했던 기억이 마음에 한(恨)으로 남았다. 카페를 차리겠다며 재정적으로 지원해달라는 형의 요청을 매몰차게 거절한 일이다. 그래서일까, 어머니의 회한과 죄책감은 나날이 깊어져 결국 형의 죽음을 부정하는 단계까지 와버렸다. 그제야 화자는 깨닫는다.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지지만 회한과 죄책감은 시간과 함께 더 진해진다는 사실을.’(p.47) 그리고 자신이 ‘사랑의 대상인 야곱이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제법 깊이 생각하면서 그 사랑의 주체인 리브라가 져야 했을 마음의 짐에 대해서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사실을’(p.47) 말이다. 어머니가 화자의 아내와 통화하는 내용은 절절하다. 어머니는 형 성준이 마치 여전히 살아있다는 듯 대화를 이어간다.  

   

   “성식이는 대학원도 보냈잖아요, 하는 그 애 목소리가 자꾸 들린다. 아니, 그 애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지.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니다. 그런데도 그런 목소리가 자꾸 들리는 걸 어떻게 하냐. 이제라도 성준이한테 카페 차릴 돈을 좀 해주고 싶다. 그래서 그런다. 그래서 돈을 달라는 거지 내가 어디 다른 데 쓰려고 그러는 게 아니다.” (p.44-45)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는 어머니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형으로 착각하는 어머니에게 형을 연기하며 맞장구를 친다. 그렇게라도 어머니의 회한과 죄책감을 풀어드리려는 것일 테다. 그리고 어쩌면 그도 형의 역할을 연기하며 마음의 부력을 가라앉히고 삶의 중력을 되찾으려는 시도인지도 모른다. 마음 아픈 결말이지만 이들이 죄책감과 부채감을 떨쳐내고 마음의 무게추를 바로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마음의 부력>은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이승우 작가는 신학적 이야기를 모티브로 현실의 가족 사이에 있을법한 부채 의식과 죄책감을 철학적 사유와 함께 소설에 담았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이 작품을 “남긴 말들을 무시할 수 없게 된 남은 사람들, 그 말들에 붙들려 상실감과 자책감에 시달리게 된 이들의 마음을 훑어본 소설”이라고 말한다. 나는 영원히 불가해한 사랑의 이면과 미묘한 마음의 작용을 세밀하게 들여다본 소설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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