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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Jan 24. 2022

게임이라는 함정에 빠진
우스운 사랑

밀란 쿤데라의 <히치하이킹 게임>을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디로 가세요, 아가씨?
비스트리카로 가시나요?
자, 타세요.


   긴 휴가의 첫째 날, 다소 들떠있던 젊은 연인은 재미 삼아 게임을 시작한다. 소설의 제목처럼 ‘히치하이킹 게임’이다. 여자는 고속도로에서 ‘히치하이킹한 여자’를, 남자는 ‘낯선 운전자’를 연기한다. 연인 사이에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된 게임이다.     


   게임을 지속하면서 이들은 각자의 역할에 성격을 부여하게 되는데, 내면에 숨겨진 욕망을 투영해 평소의 자신과 상반되는 사람을 연기한다. 나와 다른 타자의 삶을 잠시 체험하는 경험은 때론 매혹적이지 않은가? 항상 진지하고 부끄러움을 타는 자신이 불만스러웠던 여자는 ‘사악한 요부’(p.116)를 연기하며 ‘가벼움, 걱정 없는 태평함, 부끄러움 타지 않는 당돌함’(p.121) 같은 자신의 색다른 모습을 즐기게 된다. 여자 친구에게 친절과 찬사를 바치던 남자는 ‘남성성의 난폭한 측면들’(p.115)이 구체화된 ‘거친 남자’(p.115)를 연기하며 저돌적이고 즉흥적인 일탈을 맛본다. 분명 이러한 역할 놀이는 두 사람에게 일종의 해방감 같은 걸 선사했을 것이다. ‘연기한 삶이 실제 삶을 잠식해 들어가’(p.119)기 전까지는.      


   두 사람은 게임에 몰두하다 터무니없게도 여정의 원래 목적지를 벗어나 낯선 곳에 도착해 밤을 맞는다. 그리고 이 ‘우스운 게임’(p.130)도 얼토당토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장난은 어느 순간부터 쉽게 빠져나올 수 없는 비참한 현실로 변한다. 자기 자신의 정체성과 연기한 역할 사이의 경계선이 흐릿해지면서 두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게임이지만 게임은 곧 이들의 통제를 벗어난다. 안타깝게도 ‘게임 속에서 우리는 자유롭지 못하며, 게임을 하는 자에게 게임은 함정’(p.132)이라는 것을 이들은 몰랐다. 아무도 의도치 않았지만, ‘게임은 결국 삶과 섞이고 말았다.’(p.135) 적당한 선에서 멈춰야 했던 게임은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두 사람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까지 된 것일까? 이들의 관계는 회복될 수 있을까? 하루치의 모험이 연인의 미래를 영영 바꾸어 버린 것일까?    




   <히치하이킹 게임>밀란 쿤데라의 소설집 <<우스운 사랑들>>(민음사, 2013)에 수록된 단편이다. 하찮은 게임 하나가 연인의 삶을 함정에 빠뜨리고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오는 이야기다. 소설집 제목처럼 ‘우스운 사랑’이 아닐 수 없는데, 결코 희극적인 웃음은 아니고 요즘 표현으로 ‘웃프다(표면적으로는 웃기지만 실제로 처한 상황은 슬프다)’에 가까울 듯싶다. 사건이라고 하기에도 별것 아닌 일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 내려가다 점점 고조되는 긴장감에 서늘해졌고 씁쓸한 결말을 예감했다. 


   소설의 마지막에 흐느끼는 여자 친구의 말 “나는 나야, 나는 나야….”(p.141)를 들으며 ‘모르는 것을 똑같이 모르는 것으로 정의’(p.141)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고백이 긴 여운을 남긴다. 우리에게 타인은 언제나 모르는 사람이고 심지어 나 자신도 끝까지 알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리고 삶은 아주 쉽게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 우리를 우습게 만들고 마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 <<우스운 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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