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조나단 글레이저, 2024)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암전된 화면 위로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정체불명의 음향이 한참 흐른다. 도대체 무슨 소리일까, 불길함을 느끼며 어둠 너머의 보이지 않는 이미지를 상상하다 보면 새소리와 함께 뜻밖의 장면과 조우하게 된다. 푸릇푸릇한 풀숲이 우거진 강가에서 평화로운 한때를 즐기는 어느 가족의 모습. 마치 유화 속 한 장면을 스크린에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이 장면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관객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시각 정보와 청각 정보의 불일치에서 오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영화는 루돌프 회스 가족의 단란한 모습을 비춘다. 루돌프 회스는 성공한 남편이자 자상한 아빠다. 그의 아내 헤트비히는 마침내 어린 시절부터 꿈에 그리던 집을 갖게 되었다며 좋아한다. 꽃이 가득한 정원과 온실은 그녀가 가장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공간이다. 마당에 자리 잡은 수영장은 아이들의 놀이터이자 어른들의 파티 장소다. 딸의 집을 방문한 헤트비히의 어머니는 '낙원이 따로 없구나' 하며 감탄한다.
그랬던 어머니가 달랑 편지 한 통을 써놓고 사라졌다. 이유는 한밤중에 목격한 그곳의 실상 때문. 사실 이 가정집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루돌프 회스는 아우슈비츠의 유능한 소장이고 이들 가족은 이런 환경에 익숙해져 무감각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헤트비히의 어머니는 밤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소각로의 불길이 끔찍했을 것이다. 낮에도 수용소의 고함과 비명, 총소리가 희미하게 배경으로 깔려 있었고 멀리 소각로 굴뚝에선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그러니까 조금의 상상력만 동원하면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얼마나 끔찍할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에겐 공포와 지옥이었던 공간이 또 다른 이에겐 꿈이자 낙원이었다는 사실, 이 영화가 안겨주는 그로테스크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루돌프 회스에게 전출 명령이 내려졌을 때, 헤트비히는 아이들과 아우슈비츠에 남겠다고 선언한다.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이곳이 그녀에겐 안락하다는 사실이 새삼 충격을 안겨준다. 인간이 다른 이의 고통에 이토록 무심할 수 있다는 것, 다른 이의 행복을 빼앗는데 조금의 자책도 느끼지 않는다는 것도 소름 끼치는 지점이다. 헤트비히는 죽은 유대인에게서 빼앗은 밍크코트를 아무렇지 않게 걸치고 주머니 속 립스틱을 꺼내 바르기도 했다. 늘상 있었던 일이라는 것처럼.
결국 루돌프는 아우슈비츠에 가족을 남겨둔 채 떠나고 일에 몰두하여 중령으로 진급한다. 그에겐 이 모든 게 그저 잘 해내고 싶은 일일 뿐이다. 24시간 쉬지 않고 가동할 수 있는 소각로를 제작하기 위한 회의 장면이 그의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성과가 자랑스러워 작전명에 ‘회스’라는 자신과 아내의 성(姓)을 붙이기도 한다. 인간이 다른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일을 이토록 잔인하게 심지어 효율적으로 잘 해낼 수 있다는 것이 홀로코스트가 안겨주는 충격이다. 마지막 축하 파티에서 루돌프 회스가 연신 구역질을 하는 것은 지금까지 영화를 따라오며 관객이 느꼈을 거북한 심정을 대변한다.
영화를 보면서 쉽게 해석되지 않았던 장면은 바로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소녀의 등장이다. 소녀는 한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나타나 유대인들이 강제 노동을 하는 곳곳에 사과를 숨긴다. 찾아보니 회스 부부가 실존 인물인 것처럼(회스의 사택도 실제 모습과 유사하다) 이 소녀가 했던 일도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위험을 무릅쓴 도움의 손길들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하지만 영화 후반부에 소녀의 사과로 인해 유대인들이 총살을 당하는 소리가 들린다는 점에서 학살의 규모는 거대했고 도움은 미약했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영화의 제목 ‘존 오브 인터레스트(The Zone of Interest)’는 나치가 아우슈비츠 수용소 주변 지역을 부르던 말이다. ‘관심 영역’이라고 번역했을 때, 헤트비히의 관심 영역은 공들여 가꾼 주택과 정원이었고 회스의 경우는 수용소의 효율적인 운영과 성과 창출이었을 것이다. 인류사에서 가장 끔찍한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 장소를 담장 하나로 마주하고 있으면서도 그 안의 사람들이 겪는 비극엔 조금의 관심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 영화가 전하는 서늘한 진실이다. 그리고 이 같은 비판의 화살은 세계 곳곳의 참혹함을 외면하며 태평한 삶을 누리고 있는 현재의 우리를 향한다.
카메라는 지상 낙원이라는 이곳을 비추지만 끊임없이 벽 너머를 상기시킨다는 점에서 감독의 연출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