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기] 이수명,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손들이 있고
나는 문득 나의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을 기억한다.
내려오는 투명 가위의 순간을
깨어나는 발자국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우리에게는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고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
육체가 우리에게서 떠나간다.
육체가 우리를 쳐다보고 있다.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가 돌아다니는 단추들
단추의 숱한 구멍들
속으로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 이수명,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
[단상]
밖에 비가 내린다. 가끔 내리는 비에 손바닥을 갖다 대면, 선명한 차가움이 손을 뚫고 나갈 것만 같을 때가 있다. 이런 느낌을 시인은 ‘내려오는 투명 가위’에 의해 ‘손이 둘로 나뉘는 순간’이라고 한 걸까? ‘언제나 너무 많은 비들’이 있기에 우리에게는 손들도 너무 많다고 한 걸까?
그러나 ‘내가 너의 손을 잡고 걸어갈 때’는 다르다.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하나의 우산 아래 너와 나는 어깨를 맞대고 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는 어떠한 투명 가위도 우리를 나눌 수 없다. 오히려 두 개의 손이 맞잡아 하나가 된 경지다. 그 모습을 우리에게서 떠나간 육체가 쳐다보고 있다. 사랑의 무아지경.
빗속을 걸을 때 발자국들은 깨어난다. 발자국 속에 무엇이 있는가. 물에 반사된 너와 나가 있을까? 무엇이 발자국에 맞서고 있는가. 하나가 되어 단단한 우리가 맞서고 있을까?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 건 ‘단추들’도 있다. ‘단추의 숱한 구멍들’은 어쩐지 우리를 예속하던 무수한 눈들 같다. 그들의 시선이 무색하게, 우리는 여전히 손을 꼭 잡고 걸어간다. ‘왼쪽 비는 내리고 오른쪽 비는 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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