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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ug 02. 2024

내가 안다 /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시 읽기] 라이너 쿤체, '뒤처진 새'



뒤처진 새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건널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     



  

[단상]

강변북로를 달릴 때였다. 차창 밖으로 한강 위를 ‘V’자 형태로 나는 철새 떼가 보였다. 그리고 그 뒤로 조금 떨어져서 두 마리의 새가 열심히 날갯짓하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내 눈엔 뒤처진 새를 다른 한 마리가 끌어주는 것처럼 보였다. 무리에 다시 합류할 수 있게끔. 앞에서 공기 저항을 막아주어 뒤따라오는 새가 힘을 아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았다. 갈 길이 멀 테니까 말이다. 속으로 ‘혼자가 아니라서 다행이야’라고 중얼거렸다. 


라이너 쿤체의 시 '뒤처진 새'를 읽다가 불현듯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시인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뒤처진 새에게 자신을 동일시한다. ‘남들과 발 맞출 수 없다는 것’이 어떤 건지 자신이 안다며, 어릴 적부터 알았다며 공감을 표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표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패배감, 무리에서 외따로 떨어져 느끼는 외로움. 이런 것들이 뒤섞인 심정이었을 테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시인의 응원에 어쩐지 마음이 저릿하다.     


원문을 찾아보니 두 번째 행의 '날아오며'의 배치가 눈에 들어온다. 뒤처져 나는 새처럼 이 시구는 멀찍이 혼자 떨어져 있다. 시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까지 마음을 울린다.          


라이너 쿤체, <나와 마주하는 시간> (봄날의 책)




*이미지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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