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국 인문 기행>(서경식, 반비, 2024)을 읽고 (2)
인간을 둘러싼 물음이 ‘죽음’과 깊이 결부된 이상, 이 시점에서 쓰고 그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정신적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요컨대 ‘인문학’의 기본이라고 해야 할 정신이다.(p.131)
서경식 교수의 <나의 미국 인문 기행>은 이탈리아와 영국에 이은 ‘나의 인문 기행’ 시리즈의 세 번째 책이다. 저자는 1983년부터 서양 미술 순례를 시작했으며 예술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인문학적 사유로 확장해 책으로 엮었다. 그의 저서는 재일 조선인이라는 디아스포라 정체성과 한국 군사정권의 탄압을 향한 저항(정치범으로 투옥된 두 형의 구명 운동)이 근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생에서 가장 절박한 시기에 ‘어떻게 해서든 숨을 쉬고 싶’(p.59)어 미술관과 공연장을 찾았다는 그는, 어떤 암울한 시대에도 예술은 ‘관용, 연대, 공감을 추구하려는 인문 정신이 살아 있음을 가르쳐준다’(p.157)라는 신념을 설파한다.
<나의 미국 인문 기행>에서는 에드워드 호퍼, 디에고 리베라, 조지 벨로스, 에드워드 사이드, 벤샨의 작품을 조명한다. 주로 도시인의 고독과 상실감, 노동자의 비애, 권력에의 저항 정신 등이 투영된 작품들이다. 저자는 이들의 작품에서 ‘선한 아메리카’의 이상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의 이민자 배척, 다양성 파괴, 단절의 흐름을 거스르고 ‘선한 세계’를 구축할 가능성을 찾고자 애를 쓴다. ‘이 폐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 어떻게든 파괴된 이상을 재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과연 어떻게?’(p.258)가 바로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 치열하게 고민했던 문제의식이다.
서경식 교수는 20세기 초반 뉴욕의 노동자 계급 사람들을 사실적으로 그린 조지 벨로스의 그림을 보고 ‘드디어 미국을 그린 미국인 화가와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다’(p.69)고 썼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냉담하고 오만하게 느껴졌던 2001년의 뉴욕 이후, 18년 만에 다시 찾은 뉴욕은 연말 홀리데이 시즌으로 이방인을 조금 더 환대하는 분위기였다(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타격하기 직전이었다). 나도 살짝은 누그러진 마음으로 여유 있게 뉴욕을 돌아보았고 몇몇 갤러리도 방문했다. 그러다가 MoMA에서 예전에는 놓쳤던 한 화가의 작품이 내 눈길을 끌었다(검색해 보니 2001년도에는 전시되어 있지 않았던 듯하다). 바로 제이콥 로렌스(Jacob Lawrence, 1917~2000)의 <The Migration Series(이주 시리즈)>이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대이주를 그린 연작으로 60개의 작품 중 30개의 작품이 이곳에 전시되어 있었다(나머지 30개는 워싱턴 D.C의 필립스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마치 포스터처럼 알록달록한 색채로 채색된 작은 패널이 갤러리의 하얀 벽에 일정하게 배치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하나하나 이주민의 생활상이 상징적이고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었다(패널마다 하단에 이야기가 적혀 있어 이해를 도왔다). 이주민으로 꽉 찬 기차역, 법정에 선 흑인들, 인종 폭동, 아동 노동력 착취 현장, 감옥에 갇힌 흑인들, 그럼에도 남부에서 북부 도시로 계속해서 밀려오는 이주민... 작품은 새로운 삶을 향한 기대감과 인종차별적 현실이 안겨주는 좌절감 등이 뒤섞인 복잡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 작은 작품들이 뿜어내는 거대한 서사에 압도되어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제이콥 로렌스는 실제로 미국 남부에서 북부로 이주해 온 가족의 일원으로 할렘에서 자라며 그림을 배웠다. 그의 작품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서 직접 보고 겪은 생활상과 역사적 사건 등 사회적 정치적 주제를 주로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적 정체성이 느껴지는 선명한 색채와 역동적인 형상, 생생한 스토리텔링이 특징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국 흑인의 이야기를 미국 문화에 대한 개별적인 경험이 아니라 미국 유산과 경험 전체의 일부로 생각한다.(I do not look upon the story of the Blacks in America as a separate experience to the American culture but as a part of the American heritage and experience as a whole.)”
내 머릿속에 ‘아메리카’는 아마도 이런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는 듯하다. 애초에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라는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이민자들에게 너그럽지 않은 나라. 그럼에도 이주하려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드는 나라. 어쩌면 그 모순과 역동성이야말로 ‘아메리카’의 유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책에서 서경식 교수는 멕시코 화가 디에고 리베라의 벽화 <디트로이트 산업>에서 받은 감동을 서술하며 그의 아내이자 화가였던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를 잠깐 언급한다. 아쉬운 마음에 그녀의 삶과 작품에 대해 잠시 살펴보려 한다.
MoMA에서는 두 개의 작품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Fulang-Chang and I>와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이다. 사실 두 작품 모두 생각했던 것과 달리 그림의 사이즈가 매우 작았다. 서경식 교수가 디에고 리베라의 ‘벽면을 가득 채운 거대한 벽화’(p.101)에 압도되었다면, 나는 프리다 칼로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왜소한 느낌을 자아내는 작품에 마음이 동했다. 이 또한 두 사람의 대조적인 모습을 은유하는 것만 같아 묘한 기분이 든다(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프리다 칼로의 어머니는 ‘코끼리와 비둘기가 결혼하는 것 같다’라고 했다).
<Fulang-Chang and I>의 경우, 프리다 칼로와 그녀의 원숭이가 그려진 그림 바로 옆에 같은 사이즈의 거울이 걸려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관람객들은 거울에 자신의 얼굴을 비춰보며 그녀와 동일시해보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녀가 겪은 삶의 고통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여성으로서 남편의 그림자로 살지 않겠다는 독립적인 목소리는 당시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현재의 우리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Self-Portrait with Cropped Hair>는 프리다 칼로가 디에고 리베라와 이혼한 직후에 그린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디에고 리베라가 좋아했다던 긴 머리를 싹둑 자르고 남성의 복장을 한 프리다 칼로가 화면 정중앙에 앉아 있다. 그녀의 손에는 가위가 들려 있고 바닥에는 자른 머리카락이 흩어져 있다. 결연함 다짐과 심란한 마음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작품이다.
프리다 칼로는 학창 시절 타고 있던 버스가 전차와 충돌하는 큰 사고로 평생을 신체적인 고통 속에 살았다. 잦은 수술과 유산의 경험은 그녀의 삶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아픔이 있었으니, 바로 디에고 리베라였다. “내 인생에 큰 사고가 두 차례 있었다. 하나는 전차 사고이고 다른 하나는 디에고이다. 디에고가 단연코 최악이다.” 이 그림은 희대의 난봉꾼이었던(심지어 프리다 칼로의 여동생과도 불륜을 저지른) 디에고 리베라부터의 심리적 독립을 의미한다. 그녀의 작품을 보고 앙드레 브루통이 초현실적 작품이라며 감탄하자 그녀는 말한다. “나는 초현실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꿈꾼 것을 그린 적이 없다. 나는 나의 현실을 그렸다. (They thought I was a Surrealist but I wasn’t. I never painted dreams. I painted my own reality.)” 가시덩굴이 몸을 칭칭 감고 있고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도 그녀의 그림은 그녀가 직접 겪은 현실의 고통을 그린 것이다.
다시 이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쓰고 그리는 일은 우리에게 주어진 복잡하고 곤란한 상황 속에서 인간을 다시 바라보게끔 하는 정신적 행위’라는 문장을 곱씹어 본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다시’에 방점을 찍어 본다. 서경식 교수의 책을 읽고 내가 보았던 예술 작품을 반추해 보아도 여전히 나는 아메리카의 어디에서 ‘선한 세계’의 가능성을 찾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쩌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다시’ 바라보려는 노력이 작은 희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서경식 교수의 책을 읽으며 인문학적 물음과 사유의 힘을 다시금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