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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서 삶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을까

영화 <콜럼버스>(코고나다, 2017) 리뷰

by 이연미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콜럼버스>(코고나다, 2017)는 처음엔 건축을 중심으로 하는 영화 같았다. ‘건축의 메카’라고 불리는 미국 인디애나주 콜럼버스가 배경이기도 하고, 도심 곳곳의 현대적 건축물을 정적인 시선으로 담은 장면들이 우선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건축에 매료된 케이시와 유명한 건축과 교수를 아버지로 둔 진의 대화에서 소개되는 엘리엘 사리넨, 에로 사리넨, 데보라 버크, 제임스 폴셱 등의 건축가와 그들의 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했다. 예를 들면, ‘비대칭 속에 균형이 있다’는 엘리엘 사리넨의 교회 건축물의 미학적 측면이나, ‘건축은 치유 예술’이라는 제임스 폴셱의 주장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은 뒤로 물러나고 결국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관한 영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케이시와 그의 어머니, 진과 그의 아버지, 그리고 케이시와 진의 관계가 건축물을 매개로 어떻게 연결되고 단절되는지를 영화는 그리고 있었다. 관계에 거는 기대와 그것이 어긋났을 때의 실망, 그리고 회복의 과정을 감독은 마치 건축물을 짓듯 꼼꼼히 설계했다. 볼수록 아름답고 탄탄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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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는 과거 약물 중독의 문제를 겪은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 진학도 미룬 채 콜럼버스에 남아 있는 상황이다. 힘든 시기에 그녀는 직선과 사각형으로 이뤄진 모더니즘 건축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고 건축에 푹 빠졌다고 고백한다. 진은 콜럼버스에 강연 차 방문했다가 쓰러진 아버지 때문에 원치 않게 콜럼버스에 머물게 되었다. 일과 건축이 전부였던 아버지에 대해 원망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만, 콜럼버스의 건축물을 돌아보며 아버지의 흔적을 따라간다. 케이시와 진은 그렇게 건축이라는 공통점으로 우연히 만나 서로의 상처에 공감하며 위로하고 위로받는다.


영화의 마지막에 어머니 때문에 콜럼버스에 남고자 했던 케이시는 떠나고, 반대로 아버지로 인해 억지로 이곳에 오게 된 진은 남는다. 케이시는 진을 통해 건축이라는 꿈을 상기하고 어머니와의 단절을 결심한다. 어머니를 홀로 두고 떠나는 게 힘들고 슬프지만 자신의 독립적인 삶을 살기로 한 것이다. 진은 케이시를 통해 건축을 사랑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어 아버지 곁에 머물기로 한다. 아버지는 회복되기 힘든 상태지만 아버지와의 화해를 위해 마지막까지 노력을 다하기로 한 것이다. 이 결말은 둘 다 정체된 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향해 한 발 내딛는 성장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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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마음을 사로잡은 장면이 있다. 진이 케이시에게 “이 건물이 왜 좋아요?”라고 묻고 케이시가 “그냥 마음이 끌려요”라고 대답한 후 자세한 설명을 할 때 음소거가 되는 장면이다. 말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케이시의 꿈꾸는 듯한 표정과 섬세한 동작에 집중하면 그 대답이 들리는 듯했다. 영화에서 케이시가 가장 밝게 웃는 빛나는 장면이다. 그리고 어쩐지 나만의 대답을 머릿속에서 떠올리게 하기도 했다. 나는 좋아하는 건축물이 있던가?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렸던가? 건축물에서 위안을 얻거나 치유를 받은 경험이 있었나?




알렝 드 보통<행복의 건축>(이레, 2007)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우리가 감탄하는 건물은 결국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가 귀중하다고 여기는 가치를 상찬한다.(p.104)' 즉, 우리가 좋아하는 건물은 우리의 개인적인 이상이 반영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건축의 질서는 지나치게 복잡해지는 감정들로부터 우리를 방어해주기 때문에 또 매력적이다.(p.191)’라는 문장도 있다. 종합해 보면,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에서 쉽게 상처받는 우리에게 모더니즘 건축의 질서는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어쩌면 우리는 콘크리트의 견고함에서 안정감을, 유리의 투명함에서 정직을, 건물의 대칭성에서 평정심을 발견하며 불완전한 삶에 위안을 얻는지도 모른다. 사실 건축은 언제 찾아가도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이미 큰 위안이기도 하다.


영화에서 진은 콜럼버스 사람들은 건축에 관심이 없다는 케이시의 불평을 듣고 “익숙한 것에는 의미를 두지 않게 돼요.”라고 말한다. 이 말에 뜨끔했다. 집중력에 관한 짧은 이야기에서 문제는 집중력이 아니라 흥미의 결핍이라며 “우리가 중요한 것에 흥미를 잃어가나?”라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우리를 둘러싼 일상과 일상적인 관계를 언제부턴가 익숙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일상에서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건축물도 흥미를 품고 바라본다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콜럼버스1.jpg <콜럼버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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