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민음사, 2021)을 읽고
어제 차 타고 가면서 널 봤을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어. 바로 쟤야. 내가 찾던 에이에프가 저기 있어!(p.26)
매장 쇼윈도에 전시된 에이에프(Artificial Friend) ‘클라라’는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가주겠다는 ‘조시’의 약속을 믿고 기다린다. 다른 아이의 간택도 거부하고 조시를 기다린 이유는 몸이 불편한 조시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의 방에선 ‘해가 쉬러 가는 지점’을 볼 수 있다는 그녀의 말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클라라에게 ‘태양’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민음사, 2021)에서 ‘에이에프(Artificial Friend)’는 외로운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도록 생산 판매되는 휴머노이드다. 구매자의 취향에 맞게 성별, 나이, 외모 등이 다양하게 생산되는데 버전마다 특징(상품의 강점)이 다르다. 공통적인 건 태양광으로 충전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에이에프들 사이에서 쇼윈도 자리는 주인을 만날 가능성이 클 뿐만 아니라 ‘해가 주는 자양분’(p.12)을 많이 받을 수 있어 선호된다.
클라라의 장점은 관찰력이다. 클라라는 쇼윈도에서 바깥세상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인간의 행동과 감정을 이해해 보려 노력한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우연히 만난 남녀는 왜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낄까? 쓰러져 죽어가던 노숙자와 그의 개가 따스한 햇살에 새로이 기운을 차린 이유는 뭘까? 여기서 클라라는 한 가지 오해를 하고 마는데, 에이에프들이 태양광으로 충전되는 것처럼 꺼져가는 인간의 생명도 태양의 힘으로 살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뛰어난 관찰력과 인간을 모방하는 능력으로 클라라는 결국 조시 어머니의 선택을 받아 조시의 집에 가게 된다. 그러나 조시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한다. 미래의 이 시대에는 부모의 재력과 결정에 따라 아이들의 지능을 유전적으로 향상할 수 있는데, 조시는 향상의 부작용을 앓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도 조시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조시 어머니는 클라라를 데리고 온 진짜 이유를 밝힌다. 자신은 클라라가 단지 조시의 친구가 되기를 바란 게 아니라 조시를 대체하는 존재가 되기를 바란다고. 사실은 조시의 외모를 구현한 에이에프가 개발 중이고 클라라가 그 안에 들어가 조시로 살아가면 어떻겠냐고.
조시 부모의 비정한 선택과 달리 클라라는 끝까지 아픈 조시를 포기하지 않는다. 클라라는 만물을 소생시키는 ‘태양’의 힘에 기대어 보기로 한다. 조시를 살릴 수만 있다면 클라라는 자신을 희생시킬 각오도 한다. "만약 제가 당신을 기쁘게 할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요. 당신을 특별히 행복하게 만들 만한 일. 만약 제가 그런 일을 해낸다면 그때는 보답으로 조시에게 특별한 자비를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거지 아저씨와 개에게 그랬던 것처럼?"(p.246)
인공지능 로봇이 태양을 숭배하고 원시종교(애니미즘)와 같은 신념을 갖게 된다는 게 가능한 이야기일까? 로봇이 인간을 관찰 모방해서 인간과 가깝게 발전한다면, 희생과 구원이라는 일종의 종교의식을 상상해 내고 이를 실천하게 될까? 최신식 과학 기술(AI)의 산물이 해의 ‘관대함’(p.397)을 믿는다는 게 한편으론 어리석어 보인다. 하지만 기술을 맹신해 아이를 유전적으로 향상하고 아이가 죽으면 로봇으로 대체하겠다는 조시 부모의 생각보다는 훨씬 더 순수하고 인간적으로 느껴진다. 여기에 더해 클라라는 자신의 희생 덕에 조시의 건강이 나아진 후에도(클라라는 그렇게 믿었다) 해의 친절함에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해가 저한테 아주 친절했어요.
처음부터 늘 친절했지만 조시와 같이 있을 때는 특별히 더 친절했어요.(p.443)
긴 세월이 흐르고 에이에프로서 역할이 다한 클라라는 야적장에 버려진 채로 매장 매니저에게 발견된다. 클라라는 그에게 자신이 조시를 대체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누군가는 고도로 발달한 에이에프가 모방하지 못하는 인간의 특별함은 없다고 말했지만, 클라라는 조시의 ‘아주 특별한 무언가’는 조시 안에 있는 게 아니라 조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이다. 클라라는 오랜만에 만난 매니저와 기억을 되짚어가며 대화를 나눌 때, 행복과 아픔을 동시에 느꼈을까? 클라라는 어땠을지 알 수 없지만, 독자는 이 마지막 장면에서 어쩐지 현실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함께 가슴이 저릿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클라라야말로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지닌 휴머노이드임이 틀림없다는 감탄과 함께 그에게 이보다 나은 엔딩을 마련해주지 못한 인간을 반성하면서 말이다.
*이미지 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