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슈테판 츠바이크, 지식공작소, 2001)를 읽고
‘이 나의 인생에서, 정신적인 작업은 언제나 가장 순수한 기쁨이었으며, 개인의 자유는 지상 최고의 재산이었습니다. (...) 원컨대, 친구 여러분들은 이 길고 어두운 밤 뒤에 아침 노을이 마침내 떠오르는 것을 보기를 빕니다! 나는, 이 너무나 성급한 사나이는 먼저 떠나가겠습니다.’
_ 1943년 2월 22일, 슈테판 츠바이크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지식공작소, 2001)는 그의 자필 유서로 시작한다. 처음 출간될 때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나중에 덧붙여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츠바이크의 생애 마지막 순간을 아는 상태에서 그의 회고록을 읽는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나치의 탄압으로 고향 오스트리아를 떠나 세계를 떠돌던 그는 망명지 브라질에서 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보지 못하고 끝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어떤 깊은 절망감이 그를 아내와의 동반자살이라는 선택으로 몰고 갔을까?
570쪽에 달하는 이 책을 나는 지난 12.3 계엄과 내란 사태가 벌어진 ‘길고 어두운 밤’에 읽었다. ‘순수한 기쁨’과 ‘개인의 자유’가 위협받는 어제의 세계가 오늘에 재현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이 몰려와 읽던 책을 내려놓기도 여러 번이었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증언을 통해 붕괴되어 가는 시대 전체로부터 다만 한 조각의 진실이라도 다음 세대에 전할 수 있다면 우리가 한 일이 전혀 헛되기만 한 일은 아니다.’(p.20) 츠바이크가 머리말에서 밝힌 집필 의도대로 그의 증언이 전한 진실을 다음 세대인 우리가 진지하게 받아들였는지 의문이다. 극우의 득세와 전쟁의 광풍이 안정된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지금, 츠바이크의 고뇌와 통찰이 담긴 이 책을 다시 꺼내 들어야 할 이유다.
<어제의 세계>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인 동시에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한 세대 전체의 회고록이다. 19세기 말 ‘안정의 황금시대’(p.3)에서 20세기 초의 양차 대전이라는 이성이 패배하고 야만성이 승리한 ‘도덕적 몰락’(p.15)을 경험한 이들의 이야기다. 그중에서도 츠바이크는 ‘오스트리아인, 유태인, 작가, 휴머니스트 또 평화주의자’(p.13)라는 두드러진 위치 때문에 시대의 진폭을 가장 세차게 겪고 말았다.
책의 전반부에서 츠바이크는 자신의 유년, 학창 시절을 회고하며 양차 대전 이전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유럽 곳곳을 여행하며 겪은 일들을 서술한다. 당대 유럽에서 예술과 문화, 지성으로 최고의 지위를 누리던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난 츠바이크는 ‘세계 시민’(p.18)으로 길러졌다. 릴케, 롤랑, 로뎅 등 수많은 지식인, 예술가와 교류하며 작가로서도 성공 가도를 걷고 있었다. 유럽의 미래를 믿으며 ‘새로운 서광’이 비친다고 생각할 무렵 1차 대전이 발발했고 츠바이크는 그 빛이 ‘세계를 휩쓸 대화재의 강한 불빛’(p.243)이었음을 뒤늦게 탄식한다.
츠바이크는 과거를 반추하며 이 같은 ‘야만적인 역행’(p.6)이 일어난 원인을 평화의 시기에 축적된 ‘힘의 과잉 상태’(p.249)에서 찾는다. 힘이 막강해지면 인간이나 국가나 그 힘을 남용하고 싶어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대 사람들이 공통의 위험을 보지 못하고 경시한 배경에는 미쳐 날뛰는 광기를 마지막 순간 저지할 것이라는 이성에 대한 지나친 신뢰, ‘경솔한 낙관주의’(p.8)가 작용했다고 지적한다.
시대를 진단하는 츠바이크의 예리한 시선은 1차 대전과 2차 대전 사이 달랐던 사회적 분위기를 전달하는 책의 후반부에서 빛을 발한다. 후대의 우리가 상상하기엔 전쟁이 발발했다면 군중은 당연히 두려움에 떨었으리라 짐작하지만, 1차 대전의 1914년 대중들 사이엔 ‘뭔가 당당한 것, 감동적인 것, 그리고 매력적인 것까지 내포되어 있’(p.281)었다는 것이다. 영웅 심리, 순수한 모험심, 애국적인 슬로건 등에 고취된 분위기에 더해 프로이트가 진단한 ‘문화에 대한 불쾌감’(p.282)과 같은 파괴적인 본능이 전쟁을 향한 ‘갑작스런 열광’(p.281)으로 분출되었다는 것이다. 출병하는 젊은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했고, 군인들도 당당한 걸음으로 운명을 향해 걸어갔다고 한다.
반면에 2차 대전이 시작되었을 때의 1939년 대중은 달랐다. 1차 대전을 통해 ‘전쟁은 로맨틱한 것이 아니라 야만적인 것’(p.285)임을 이미 알게 된 사람들은 모든 개인은 ‘정치의 어리석음의 희생물, 아니면 파악할 수 없는 악의에 찬 운명의 힘의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는’(p.284) 환멸과 비탄을 기억하고 있었다. 츠바이크는 양차 대전 사이의 독일 인플레와 파시즘의 대두, 히틀러의 정권 장악이라는 역사적 흐름을 짚어가며, 파시즘에 경도된 단호하고 대담한 젊은이들이 ‘외견상 조용한 표면 아래에 위험하기 그지없는 저류로 가득 차 있다는 최고의 경고’(p.390)였다고 밝힌다.
나치가 독일에서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을 서술한 부분도 인상적이다. ‘역사는 동시대인들에게 그들의 세대를 규정하는 커다란 움직임에 대해 그 첫 단계에서는 알려주지 않는다’(p.457)는 역사의 철칙을 언급하며, 츠바이크는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언제 처음 들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독일 내 유태인들조차도 나치의 출현을 일시적인 분노가 낳은 현상으로만 여겼고 헌법을 수호하는 나라에서 폭력적인 일들이 관철되리라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국회에 불을 지르고 해산시킨 일이 변곡점이 되어 급격하게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쯤에서 책에서 언급한 일련의 과정이 윤석열 정부의 12.3 비상계엄과 국회 무력화 시도, 극우 젊은이들의 서부지법 폭동까지 현실의 우리 사회가 겪은 일들을 연상시켰다는 걸 짚고 가야겠다. 그렇다면 과거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책의 마지막에서 츠바이크는 집으로 향해 걸어가는 자기 앞에 자신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을 본다. 이것을 그는 2차 대전에 드리워진 1차 대전의 그림자로 해석한다. 역사 속에서 단독으로 존재하는 일은 없다. 어쩌면 지난 내란 사태도 오늘의 우리에게 그 암울한 그림자를 뻗고 있는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림자를 걷어 내는 일이 다음 세대를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일 것이다.
이후 츠바이크에겐 망명 생활이 시작된다. 오스트리아를 떠날 때 그는 자신의 수집품을 모두 남겨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손꼽히는 장서가이자 수집가였던 츠바이크는 주로 ‘시나 작곡의 원본이나 초안’(p.203)을 모았고 수집품 목록엔 심지어 베토벤이 생애 마지막 머물렀던 방의 가구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 모든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을 것들이 다른 더 작은 기쁨들과 함께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고 말았는가!’(p.204) 라며 탄식하는 그의 모습이 안타깝다. 츠바이크는 무효가 된 오스트리아 여권 대신 외국인 증명서를 받아야 했고, 이 또한 다른 국가에 간청해서 받은 것이며 언제든 그에게서 ‘빼앗아 갈 수 있는 호의’(p.520)라는 걸 아프게 깨닫는다.
이처럼 어두운 시절에도 츠바이크는 ‘모든 그림자는 궁극적으로 빛에서 태어나는 것’(p.552)임을 독자에게 상기시킨다. 그림자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시선을 빛으로 돌려 시대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그의 마지막 충고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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