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대안 사회를 모색하는 길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데이비드 하비, 선순환, 2021)를 읽고

by 이연미


최근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실태가 여러 미디어를 통해 밝혀지며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가하는 폭력의 정도가 경악할 수준인데, 이 모든 것이 돈(자본) 때문이라는 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피해자들은 손쉽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거짓 정보에 낚여 제 발로 캄보디아에 입국했고, 감금된 상태에서 보이스피싱, 로맨스스캠 등으로 또 다른 사기 피해자들을 양산하는 가해자가 되었다. 국경 밖에서 범죄자가 된 그들은 자국의 관심과 보호를 받지 못한 채 하나둘 죽어 갔다. 그리고 그렇게 남들의 자본을 강탈해 벌어들인 수익은 조직의 최상위 인물들의 곳간에 차곡차곡 쌓였을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는 초국적기업만이 아니라 초국적범죄조직으로 그 컴컴한 속내를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사태를 보면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선순환, 2021)의 부제처럼 '어쩌다 자본주의가 여기까지 온 걸까' 묻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가 현대 사회는 이런 모습이 되어 버린 걸까? 자본에 잠식당한 우리의 삶은 과연 어디까지 추락할까? 다수의 삶이 나락으로 가라앉을 때, 자본과 권력의 꼭대기에 앉은 이들은 아무런 타격이 없을까? 신자유주의의 끝은 인류의 자멸일까?


한 명의 석학에게 또는 한 권의 저서에 이러한 질문들의 답을 바라는 건 과한 요구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줄기 기대를 안고 데이비드 하비의 책을 읽었으나, 안타깝게도 그가 모색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대안’이라는 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하비가 이 책을 쓸 당시는 코로나19 시기였다. 그는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팬데믹이 국가 개입의 필연성을 상기시키며 대안 사회에 대한 논의를 활발하게 하리라 기대했던 것 같다. 팬데믹이 종식된 지금, 과연 사회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는지 의문이다. 트럼프의 재집권, 극우 포퓰리즘의 여전한 강세, 불평등의 심화, 초거대자본에 이은 초국적범죄조직의 탄생까지... 하비는 작금의 현실을 어떤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을까? 여전히 혁명적 미래를 기다리고 있을까?


자본주의의 대안 체제가 무엇인지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대비하고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고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우리가 자본주의를 비롯해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권력가와 자본가 들에 의해 교묘히 조작되고 주입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이 책으로 진행했던 독서토론에서 나왔던 얘기처럼, '누군가 우리의 뒤통수를 계속 치고 있는데 그게 누구인지, 어쩌다 우리는 맞고만 있게 되었는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수확이다.


데이비드 하비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국가는 ‘금융계와 자본가계급의 권력을 대리하는 에이전트’(p.136)로 전락했다고 단언한다. 신자유주의의 폐해로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하자 ‘자립’의 개념을 도입해 ‘모든 것을 개인 탓’으로 돌렸다. 금융위기로 시스템의 위기가 드러나고 신자유주의가 정당성을 잃자 그 책임을 자본이 아닌 다른 것들 - ‘가령 이민자들, 게으른 사람들, 좀 별난 사람들,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사람들, 종교적 견해가 다른 사람들 등’(p,276) - 에 뒤집어씌우는 일이 벌어졌다. 도널드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반이민자정책이 대표적이다. 이는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연합이 부상하고 있다”는 하비의 말처럼 신자유주의 경제와 우파 포퓰리즘의 동맹을 낳았다.


그밖에 이 책에서 흥미롭게 다가온 지점은 ‘변화율 대 총량’의 문제였다. 총량이 많을 때는 변화율이 낮더라도 굉장히 큰 양적 변화를 가져온다. 하비는 잉여자본이 쌓이는 ‘엄청난 불평등’(p.170)이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총량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잉여가치의 변화율에만 집중해 ‘이윤율의 균등화’를 추구하면 부와 권력은 지리적으로 불균등하게 분포될 수밖에 없다. ‘부유한 지역은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지역은 그대로 침체되거나 더욱 가난해지는 메커니즘’(p.249)이 작동한다. 이는 자본의 불평등 문제뿐만 아니라 현대 사회에 갈수록 심각해지는 탄소 배출과 기후변화의 문제에도 적용된다. 날카로운 지적이다.




다양한 소외로 점철된 신자유주의 시대에 인공지능 기술까지 도래했다. 인공지능은 ‘생산과정에서 노동을 배제하는 길’(p.125)을 찾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적 발전이 앞으로 인간 소외를 강화하며 또 다른 사회적 위기를 초래할지, 아니면 새로운 대안 사회를 가능하게 할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가 떠오른다. 주어진 세계에 안주하지 않고 현실을 직시하는 빨간약을 선택하면 매트릭스가 벗겨진다. 이 책을 읽은 경험이 어쩌면 그와 비슷한지도 모르겠다. 하비는 책에서 ‘혁명적인 과업을 이루려면 노동자들이 자신의 해방에 집중해야만 한다’(p.316)는 마르크스의 말을 자주 인용한다. 자본주의 너머 새로운 사회를 모색하는 길은 여기서부터 시작일 것이다. 하비의 말처럼, "혁명은 단발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나긴 여정"(p.28)이니 말이다.



KakaoTalk_20260124_123420379.jpg <자본주의는 당연하지 않다>(데이비드 하비, 선순환,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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