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서사>(오카 마리, 교유서가, 2024)를 읽고
얼마 전 독서 지도를 하던 중 있었던 일이다. 한 학생이 어느 청소년 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쓰다가 중간에 머뭇거렸다. 이유를 물었더니 책을 읽으며 주인공에게 공감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공감하지 못했는지 추가로 물었다. 아이는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처럼 '트라우마'가 될 만한 일을 겪지 못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나는 지금 그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도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일에 대해 이해한다는 게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타인의 고통을 대할 때 필요한 건 섣부른 공감이나 위로보단 지금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태도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날 나는 학생과의 대화에서 오카 마리의 <기억/서사>(교유서가, 2024)를 떠올렸다. 이 책에서 저자는 '사건'의 기억을 타자와 나누어 갖는 것의 어려움을 여러 차례 강조한다. 우선 사건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기억이다. “사람이 무언가를 ‘떠올린다’고 할 때 ‘사람’이 생각해내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 사람에게 도래하는 것”(p.29)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쟁이나 학살처럼 폭력적인 사건을 경험한 사람은 여전히 “사건을 살아간다”(p.139). 이러한 상황에서 언어는 사건의 진실을 투명하게 표상하지 못하며 그 속에는 언제나 말해지지 못한 부분, 즉 '잉여'(p.32)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타자가 그 사람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이해한다는 건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타인의 기억을 나누어 가질 수 있을까? 사건의 기억을 사건 외부의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전달하는 것은 집단적 기억과 역사를 구성하는 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역사적, 사회적인 폭력의 사건을 서사로 재현함으로써 기억을 이어나간다. 그런 의미에서 오카 마리는 “사건의 불가능한 나누어 갖기의 가능성”(p.41)을 모색하는 시도가 바로 소설과 영화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건을 재현하는 사람이나 재현된 사건을 감상하는 사람 모두 '서사의 함정'(p.51)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창작자는 사건을 리얼하게 재현하고자 하는 욕망, 서사를 완결짓고자 하는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 오카 마리는 사건에 의미를 채워 넣어 완결짓는 것을 ‘위장 플롯’이라고 비판하며, 이는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억을 봉인하는 ‘기만의 서사’(p.72)라고 말한다. 책에선 그 대표적인 예로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들고 있다. 전쟁터를 리얼하게 재현하려는 감독의 욕망은 “재현 불가능한 ‘현실’이나 ‘사건’의 잉여, ‘타자’의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p.69)이며, 전쟁으로 인한 부조리한 죽음을 대의를 내포한 죽음으로 거짓 의미를 부여하는 것 또한 전쟁의 폭력성을 지우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또 다른 예시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원더풀 라이프>는 삶에서 가장 좋은 기억 하나만을 간직한 채 내세로 떠난다는 설정이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이는 타자에게 행해진 폭력의 기억(관동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은 선택적으로 지워버리는 것이기도 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영화의 서사가 일본 사회의 내셔널한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지를 의심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서사화된 타인의 기억을 접할 때 우리는 간혹 말해진 것이 사건의 전부, 혹은 진실이라고 착각한다. 매끄럽게 완결된 서사를 보며 당사자는 여전히 고통 속에서 투쟁 중인 사건을 다 끝났다고 여기기도 하고, 심지어 책이나 스크린 뒤에서 ‘나는 안전하다’고 안도하기도 한다. 오카 마리는 이 모든 걸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서사로 재현된 사건을 바라보는 윤리적 태도로서 타자와 함께 ‘난민이 되는 것’(p.153)을 제안한다. 나는 오카 마리가 말하는 '난민 되기'를 사건을 바라보는 나의 위치를 끊임없이 상기하라는 경고로 들었다. 혹여 내 안에 내재한 내셔널리즘이 발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사건’의 존재를 부정하고 그 기억을 지우려는 ‘기억의 암살자’(p.10)인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언설에 휩쓸리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다시 한번 되새긴다. “‘사건’의 기억을 나누어 갖는다는 행위란 타자가 호소하는 목소리에 그 무능함과 수동성으로 응답하는 사실과 다름없다는 점”(p.137)을.
*이미지 출처: 책 표지 그림. Sliman Mansour, "Witness of Tel Al-Zaatar"(oil on canvas,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