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2017) 리뷰
본 리뷰에는 영화의 주요 내용과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둠이 걷히지 않은 이른 새벽, 수산 시장에서 일하는 타카라의 아빠는 출근길에 오른다. 잠에서 깬 타카라는 멀어지는 아빠의 차를 보다가 문득 지난밤에 꾼 꿈에 대해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어졌다. 작은 장난감들을 배치해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온갖 바다 생명체가 가득한 바닷속 그림도 그린다. 그 밤에 아이는 물고기, 문어와 함께 바다를 수영하는 꿈을 꿨나 보다.
학교에 가야 하는 아침, 평소보다 일찍 일어난 타카라는 졸음이 쏟아진다. 한창 잠이 많을 나이다. 타카라는 비몽사몽간에도 카메라와 그림을 책가방에 챙겨 넣고 누나를 따라 학교로 향한다. 그러고는 무슨 결심을 했는지 엉뚱하게도 교문 앞에서 샛길로 빠진다. '아빠는 내가 잠들어 있을 때 집에 오니까, 아빠한테 그림을 보여주러 지금 가야겠어.' 이런 마음이었을까? 눈 쌓인 아오모리를 배경으로 그렇게 타카라의 용기충천한 모험이 시작된다.
아이의 여정을 그저 카메라로 좇는 방식으로 전개되는 이 영화는 대사가 한마디도 없다. 다음을 예측할 수 없어 보는 내내 마음을 졸였다. 아이는 목적지가 있어도 결코 직진하지 않더라. 세상엔 호기심 가는 것들 투성. 타카라는 혼자 고드름 칼싸움도 하고 동네 개들과 짖기(?) 배틀도 한다. 대책 없이 나아가는 아이가 걱정되면서도 그 천진난만함에 웃음이 비어져 나온다. 누군가 어른에게 도움을 청할 법도 한데 타카라는 혼자 힘으로 해내고 싶은 것 같다. 아이는 제 물건도 잘 챙기지 않는다. 장갑 한쪽은 잃어버린 지 오래라 보는 사람이 다 손이 시릴 지경. 털모자는 또 어딘가에 벗어 두고 챙기질 않았다.
하지만 타카라는 제법 영리한 구석도 있다. 남들 몰래 커다란 눈덩이 밑에 귤을 시원하게 보관해 두었다가 간식으로 챙겨 먹는다. 목이 마를 땐 백화점 정수기를 이용할 줄 알고, 시린 손은 화장실 핸드드라이어로 녹인다. 길을 잃었을 땐 수산시장 로고가 찍힌 트럭을 쫓아가기도 하고, 이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다가 아빠의 직장을 지나쳤음을 알아채기도 한다. 마지막에 폭설을 피해 아무 차에나 올라타 잠이 들었을 땐 '아이코' 싶었지만, 다행히 좋은 분을 만나 집까지 안전하게 돌아온다.
타카라는 수산시장엔 도착했지만 아빠를 만나진 못했다. 아빠는 타카라가 길고 긴 하루 끝에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 아이의 그림을 본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잠든 아이를 지그시 바라보다 집을 나선다. 타카라의 마음은 아빠에게 전해졌을까? 그랬을 거라 믿는다. 아빠는 타카라로부터 반복되는 하루를 새로이 시작할 힘을 얻었을 테다. 타카라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오늘도 바다같이 넓은 세상을 헤엄치며 여행하는 꿈을 꾸고 있을까.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다미엥 마니벨, 이가라시 고헤이, 2017)은 잔잔한 영화다. 꾸밈도 없고 요란하지도 않다. 그래서 오히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게 만든다. 예전에 보았던 윤가은 감독의 단편영화 <콩나물>(2013)이 떠올랐다. <콩나물>은 생애 처음 콩나물 심부름을 하게 된 어린 소녀의 이야기로, 세상 밖에 첫걸음을 내딛는 아이의 모험을 그렸다는 점에서 이 영화와 비슷하다. 그러나 <콩나물> 속 아이의 여정은 판타지가 섞여 들어가며 끝이 난다면, <타카라, 내가 수영을 한 밤>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만 담았다. 다만 끝없이 펼쳐지는 설원과 세상을 지울 듯이 내리는 함박눈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낼 뿐이다. 두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은 비슷하다. '아이의 세계는 언제나 어른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차원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