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사의 완결을 향한 욕망과
그 필연적 실패

<아듀>(오노레 드 발자크, 파롤앤, 2024)를 읽고

by 이연미


오노레 드 발자크의 <아듀>를 읽은 첫 느낌은 불편함이었다. 정확히 어느 지점이 불편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작가가 인물을 다루는 방식이 어쩐지 과장되고 난폭하다고 느꼈다. 특히 소설 속 여성이 – 아무리 이성을 잃은 여인이라고 해도 - 남성에 의해 관찰되고 묘사되고 심지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옮겨진다는 점, 그녀에겐 오직 ‘아듀’라는 말만 발화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점이 그랬다. 여성이 철저히 대상화되어 남성의 욕망 안에 배치된 것은 작가가 살았던 시대의 한계로 보아야 할까? 그렇다고 단정 짓기엔, 내가 놓친 무언가가 이 소설에 있는 듯했다.




<아듀>의 줄거리를 요약하면 이렇다. 필리프 드 쉬시 대령은 사냥을 하던 중 우연히 선인 기도원에서 보호하는 미친 여인을 만난다. “아듀”라는 말만 반복하는 그녀는 알고 보니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스테파니 드 방디에르 백작 부인이었다. 그들은 나폴레옹 전쟁 당시 후퇴하던 중 러시아의 베레지나 강에서 이별하고 말았다. 필리프는 자신을 희생해 스테파니와 그녀의 남편 방디에르 백작을 배에 태워 강을 건너도록 도왔다. “아듀”는 이때 스테파니가 필리프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하지만 백작은 강에 빠져 죽고 스테파니는 군인들의 위안부 신세로 전락해 전쟁터를 끌려다녔다. 이후 스테파니는 모든 기억을 잃고 미쳐버렸다.


필리프는 다시 만난 그녀를 원래의 모습으로 돌려놓겠다고 다짐한다. 여러 시도가 실패하자 그는 마지막으로 ‘엄청난 기획’(p.155)을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영지에 두 사람이 헤어진 장소인 베레지나 전쟁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약에 의해 잠들었던 스테파니는 황폐한 전쟁터 한복판에서 깨어나고 과거와 같은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다. 순간 그녀는 기억을 되찾은 듯했으나 필리프를 바라보며 “아듀”라는 말을 남기고 죽고 만다. 소설은 자책에 시달리던 필리프가 결국 자살했다는 후일담을 전하며 끝이 난다.


두 연인의 비극적인 결말은 독자에게 여러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먼저 필리프가 ‘스펙터클’하게 재현한 베레지나 도하 전투는 스테파니에게 얼마나 큰 충격을 안겨주었기에 그녀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까? 필리프의 기억에 그곳은 자신의 희생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살려낸 장소였을 것이다. 반면에 스테파니에게 베레지나 강은 남편과 연인을 모두 잃고 전쟁의 폭력에 노출되어 죽음에 맞먹는 고통이 시작된 장소이다. 같은 일을 겪어도 실제 경험은 각자 다를 수밖에 없으며, 같은 장소라도 다르게 기억되기 마련이다. 그 끔찍한 현장에서 의식이 돌아왔을 때 스테파니는 모든 고통을 다시 겪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 그녀의 “아듀”는 연인의 이별 단어가 아니라 죽음의 표상인 단말마가 아니었을까.


<기억/서사>(교유서가, 2024)를 쓴 오카 마리는 <아듀>를 ‘사건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의 불가능성을 그린 작품’이라고 말한다. ‘사건’(전쟁터)을 아무리 ‘리얼하게’ 재현했다고 하더라도 거기엔 타자(스테파니)의 존재와 기억이 누락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필리프의 욕망이 낳은 기획은 필연적으로 실패로 귀결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를 라캉의 정신분석을 토대로 살펴보면, 전쟁터의 재현은 하나의 ‘스크린’으로써 필리프가 공백을 은폐하기 위해 만든 거대한 환영이었지만 오히려 실재의 범람을 초래해 스테파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스테파니의 기억을 되돌리겠다는 필리프의 집착은 과연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까? 전쟁터의 ‘모든 장면을 최대한 참혹하게 재현하기 위해’(p.155)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은 또 하나의 광기가 아닐까? 오카 마리는 필리프의 행동을 스테파니를 위한 것이라기보단 ‘나르시시즘적인 자기 인식의 욕망’으로 분석한 쇼사나 펠먼의 의견에 동의한다. 그러니까 필리프는 스테파니가 자신의 기억 속 우아한 여인으로 돌아와 연인인 자신을 알아보기를 욕망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의 해석을 덧붙이자면, 필리프는 자신이 스무 번 넘게 구한 여인을 한 번 더 구해내어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이룬 연인의 재회’라는 ‘구원 영웅 서사’를 완성하고 싶었다고도 볼 수 있다.


‘서사의 완결을 향한 욕망’은 이 소설이 독자에게 남기는 불편함과도 연결되어 있다. 오카 마리에 따르면, 스테파니의 부조리한 죽음에 필리프의 자살이 잇따르는 것에 대해 독자는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방치되는데 이처럼 ‘완결되지 않은 서사’는 독자에게 암흑의 심연을 본 듯한 정신적 외상 상태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제야 비로소 독자는 전쟁의 폭력성을, 말해질 수 없는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오카 마리는 폭력적인 사건의 재현에 있어서 매끄럽게 완결된 서사를 제공하여 독자를 안도하게 하는 것을 오히려 ‘기만의 서사’라고 비판한다.




발자크가 이 모든 걸 의도해서 소설을 썼는지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다만 <아듀>가 발자크가 기획한 <<인간극>> 총서의 ‘철학 연구’에 속하는 작품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발자크는 19세기 격변하는 프랑스 사회의 면면을 총망라하겠다는 목표로 2,500여 명의 인물들이 등장하는 90여 편의 작품을 하나로 엮는 거대한 기획을 했다. <<인간극>>의 세 개의 하위 연구(풍속, 철학, 분석) 중 ‘철학 연구’는 사회 현상의 이면에 숨어있는 원인을 밝혀내고자 한 것으로 ‘인간조건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그것의 필연적인 실패’(발자크의 또 다른 ‘철학 연구’ 소설 <루이 랑베르>(문학동네)의 옮긴이 해설 참고)를 주로 다루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듀>는 단순히 ‘연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 혹은 ‘전쟁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해주는 리얼리즘 소설’은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인간 내면의 욕망이 광기로 치닫는 과정과 비극적인 결말을 다룬 작품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KakaoTalk_20260108_224943861.jpg <회개한 멜모스 / 아듀>(오노레 드 발자크, 파롤앤, 2024)




*이미지 출처: January Suchodolski <Berezyna, 19th Century pain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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