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디에 에리봉의 <미셸 푸코, 1926~1984>를 읽고
미셸 푸코에 대한 가장 충실한 평전이라 평가받는 디디에 에리봉의 이 책을 나는 ‘푸코의 삶과 사유에 대한 고고학’이라 이름 붙였다. 에리봉의 글쓰기는 푸코의 그것과 닮았다. 현대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의 탄생부터 죽음까지를, 공식적으로 발표된 이론부터 사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에피소드까지를, 마치 고고학에서 지질학적 층을 한 겹씩 분석하듯이 세밀하게 들여다보며 밀도 있는 푸코의 초상화를 완성했다. 에리봉이 참고한 자료도 푸코의 고고학/계보학 저서만큼이나 풍부하다. 푸코의 저작과 서간문, 대담과 인터뷰 등의 1차자료뿐만 아니라, 당대 푸코와 교류했던 이들의 증언, 비평, 회고에 더해 자기 자신의 ‘짧지만 매우 긴밀했던’(p.5) 푸코와의 개인적 기억까지 총망라했다. 서문에서 에리봉이 ‘나의 책은 이 모든 것을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고 나는 생각한다’(p.5)며 자신감을 드러낸 것도 충분히 인정할만하다.
푸코의 삶에서 내가 언급하고 싶은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글쓰기에 대한 열정이고 다른 하나는 철학적 사유의 실천이다. <광기와 비이성>이라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이미 심사위원과 청중을 매혹하며 ‘박식과 독창성, 문학적 자질, 그리고 변증법적 능력’(p.199)을 높이 평가받은 푸코였지만, 글쓰기는 그에게도 끝없는 열정이자 도전이었던 것 같다. 에리봉이 강렬하게 묘사했듯이, ‘그는 끊임없이 읽고 쓰고 가르쳤다…. 그렇게 하기를 그는 평생 계속했다.’(p.115) 해외에 체류하는 동안 매우 서투른 언어를 말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그가 모국어를 “유일한 집”이라고 느끼며 “나는 이 언어를 되살리고, 언어의 작은 집을 하나 짓기로 결심했다. 나는 그 집의 주인이 될 것이고, 그 집의 구석구석을 잘 알게 될 것이다.”(p.152)라고 다짐하는 부분도 인상적이다.
푸코는 결코 글쓰기에 안주하거나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출간한 책에 대해서도 상황에 따라 내용을 덧붙이거나 삭제하는 등 손보기를 계속했다. 에리봉이 ‘푸코는 매 단계마다 연속적인 수정작업을 하는 사람이다. 그는 열심히 일하고 나서는 그것을 모두 바꾼다.’(p.306)고 말할 정도였다. 푸코는 죽음이 그를 데려가기 직전까지 집필에 몰두했다. 그의 마지막 저서 중 하나인 <쾌락의 활용> 첫 부분은 글쓰기에 대한 그의 생각이 집약되어 있어 그대로 인용할 만하다. “무진 애를 쓰면서, 시작하고, 다시 시작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시작하고, 그러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주저하는 발걸음을 떼는 그런 사람들, 그리고 똑같이 불안과 망설임 속에서 작업하면서도 결국은 자기 의무를 포기하는 사람들, 그렇다. 우리들은 같은 별 위에 사는 사람들이 아니다.”(p.561) 푸코가 전자에 해당함은 에이즈 투병 중에도 출판을 위해 끝까지 다듬었다는 마지막 저서들이 증명한다.
푸코의 또 다른 놀라운 점은 행동하는 철학자였다는 점이다. 푸코는 ‘철학적 사유란 끊임없는 실천’이며 철학자란 ‘우리의 존재와 엮여있는 그 비-철학 옆에 항상 가장 가까이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p.43) 직업적 소명감을 일찌감치 그의 스승 장 이폴리트로부터 배웠다. 그의 고고학/계보학이 과거의 역사에만 치중하고 현실과 유리되었다며 비판하는 이들이 있지만, 푸코의 기획은 그가 <감시와 처벌>에서 밝힌 것처럼 “현재의 역사를 쓰는 것”(p.390)이었다. 그의 사유는 늘 ‘현장’(p.90)에서 이루어졌고, ‘비판적 행동으로서의 사유’(p.6)는 감옥정보그룹 등의 정치적 참여로 이어졌다. 1969년부터 그는 ‘투쟁하는 지식인의 화신’(p.347)이 되어 시위 현장에 나타나고 선언문을 작성하고 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인다. 그로 인해 구금, 연행, 심지어 폭행을 당해 늑골이 부러지면서도 투쟁의 의지를 꺾지 않았다.
푸코의 마지막 3년 동안의 강의를 엮은 <담론과 진실>(오트르망 심세광, 전혜리, 동녘, 2017)에는 그의 후기 사유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인 ‘파레시아(parresia)’가 나온다. 파레시아는 ‘모든 것을 말하기’를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진실을 말하는 용기’, ‘위험을 감수하는 말하기’, ‘비판적 태도’를 뜻한다. 파레시아를 행하는 데엔 반드시 위험(권력을 가진 자의 격노)이 수반되기에 파레시아스트(파레시아를 행사하는 자)는 위험을 감수하는 자이다. 푸코는 그의 글쓰기와 삶을 통해 자신이 진정한 파레시아스트임을 입증해 보였다. 그는 역사를 탐구하여 얻은 철학적 사유, 규범과 권력의 압제에 저항하는 주체의 ‘자발적 해방과 반성적 불복종’(p.6)을 몸소 실천했다.
푸코의 장례식장에서 질 들뢰즈가 낭독했다는 푸코의 글이 마음을 울리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서 ‘성찰과 관찰을 계속하기 위해서 자기가 현재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으며, 자기가 지금 보고 있는 것과 다르게 지각할 수 있다’라는 의문이 반드시 필요한 그런 순간들이 있다. ... 그렇다면 철학이란 – 철학적 행동이란 –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사유에 대한 비판작업, 바로 그것이 아닐까?”(p.5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