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 <좋은 이웃>(<<안녕이라 그랬어>> 수록 단편)을 읽고
한동안 이사할 집을 알아보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건 지난 늦가을. 집주인은 미안하게 되었다면서, 다주택자를 향한 정부의 세금 압박이 심해졌고 남편도 직장에서 은퇴해 어쩔 수 없이 지금 사는 집은 팔고 이곳에 들어와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장황한 설명을 덧붙였다. 굳이 세입자에게 알리지 않아도 될 TMI에 가까운 이야기를 한참 듣다 보니, 단지 미안해서라기보다는 어디든 하소연하고 싶은 마음이 뒤섞인 복잡한 심경의 표현 같았다. 순간 바라던 아파트를 운 좋게 분양받았다고 웃으며 얘기하던 계약 첫날의 집주인 얼굴이 스쳤다.
그 사정이 충분히 이해되면서도 갑작스럽게 집을 구해야 하는 처지가 되니 심란했다. 서울을 떠나 신도시에 자리를 잡은 건 지금으로부터 4년 전. 남편의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옮긴다는 생각이었고, 나도 근처에서 독서지도사 일자리를 찾았기에 합리적인 결정이었다고 여겼다. 남편은 서울을 벗어난다는 것에 약간의 패배감을 느끼는 듯했지만, 살다 보니 출퇴근도 수월하고 신도시의 인프라도 괜찮다며 생각을 바꿨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를 하더라도 이 동네를 벗어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4년 사이 집값은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올라 조건에 맞는 매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부동산 중개수수료와 이사비용까지 더하면 지출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경제적인 이유로 점점 더 멀리 떨어진 지역의 매물을 살펴보다 보니, 남편이 한때 느꼈다던 패배감이 이번엔 내게 몰려왔다. 겨울의 추위가 더욱 혹독하게 다가왔다.
하필 이런 시기에 김애란의 단편소설 <좋은 이웃>(문학동네, 2025)을 읽었다. 사십 대 중반의 여성, 독서교실을 운영하는 독서지도사, 집주인으로부터 퇴거 요청을 받은 세입자…. 주인공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매물이 없다며 투정하는 그녀에게 “매물은 있지. 돈이 없어 그렇지.”(p.135)라는 남편의 말부터 서재의 많은 책이 ‘짐’(p.104)처럼 느껴지는 현실까지, 어쩌면 이렇게 내 상황과 비슷할까. 소설 속 주인공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시대인과 어떤 가치와 속도를 공유한다 믿’(p.108)었으나 그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p.120)하고 되뇐다. 당차게 회사를 그만두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자 했던 그 언젠가의 우리의 선택도 잘못된 것이었을까?
소설에서 주인공은 윗집에 새로 이사 와 대대적으로 인테리어 공사를 한다는 삼십 대 초반 부부로 인해 착잡하다. 젊은 나이에 자가를 마련했는지 큰돈 들여 집을 고치는 모습에서 ‘자신감이랄까 여유’(p.100)가 묻어났기 때문이다. 자신들은 쫓겨나듯 이사를 하게 되었다는 자격지심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게다가 독서교실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공사 시간을 조정하겠다던 약속마저 지켜지지 않자 주인공의 불만은 폭발한다. 소음에 항의하러 올라가 보지만, 그럴듯하게 꾸며 놓은 인테리어에 주눅만 든 채 돌아온다. 그런 주인공에게 엘리베이터에 붙은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p.105)는 공고문이 곱게 보일 리 없다. ‘이웃’이라는 말조차 낯설어진 요즘 같은 시대에 ‘좋은 이웃’이라니.
그런데 곧 더 큰 패배감이 몰려온다. 주인공이 가정 방문으로 독서 지도를 하던 시우는 부모가 시장에서 정육점을 하는 장애 아동이다. 아이가 선생님만 찾는다는 말에 주인공은 교육자로서 뿌듯함을 느끼며 수업료도 올려 받지 않았다. 어려운 가정을 돕는다는 선의와 아이의 지적인 성장에 힘이 되고 있다는 자부심은 그러나 시우의 부모님이 신축아파트를 마련했다는 소식에 무너진다. 주인공이 느낀 낭패감은 경제적인 계층이 뒤집힌 것에 대한 상실감을 넘어 자기 자신에 대한 환멸이다. ‘나는 시우를, 시우 어머니를, 그들이 사는 집을 내려다본 적 없는데. 그럼 마주보는 건 괜찮지만 올려다보는 건 싫은 걸까?’(p.130)
선생님은 책에 있는 말들을 다 믿냐는 시우의 질문에 이제 그녀는 대답하기가 곤란하다. 젊은 시절 ‘사람’을 지키고 싶었던 그녀는 요즘 ‘재산’을 지키고 싶다는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남의 욕망은 탐욕 같지만 자신의 것은 생존 욕구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에게 떳떳한 선이란 과연 어디까지일까 반문’(p.141)하기도 한다. 불안하게 요동치던 주인공의 심리가 도달한 곳은 낯선 당혹감이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p.142)으로 그녀는 어둠 속에 침잠한다.
우리는 결국 근처에서 새집을 구했다. 도심에서 약간 멀어지고 산 쪽으로 조금 더 올라간 곳이다. 그래도 새 집주인과 우리 부부가 서로의 필요와 조건이 잘 맞아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동안 이사할 집을 구하러 다니며 나도 <좋은 이웃>의 주인공처럼 감정의 부침을 겪었다. 막막함이 조급함으로 바뀌었다가 마땅한 매물이 나타나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니 무력감이 들었다. 계약이 성사되기 직전에 세를 올리겠다는 어느 젊은 집주인의 일방적인 통보를 받았을 때가 치명적이었다. 이런 식으론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의 ‘좋은 관계’ 혹은 ‘좋은 이웃’을 기대할 수 없었다.
삭막해진 마음에 뜻밖의 위안이 된 건, 우연히 보게 된 유튜브 영상이었다. 가수이자 자선사업가인 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언가 닥쳤을 때, 이게 결과라고 생각하면 힘들잖아요. 예를 들어, ‘통장에 만 원밖에 없어. 그런데 이게 나의 삶의 결과야.’ 이렇게 생각하면 되게 어려운데, 삶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힘이 나잖아요.” 한동안 나를 지배했던 부정적인 감정이 ‘이게 내 삶의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부동산을 위시한 자본 앞에서 무참히 흔들렸던 마음을 다잡았다. 한때의 고난을 우리가 잘못 살고 있나 하는 의심으로 과장되게 해석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자본주의 사회의 우리가 ‘좋은 이웃’의 가능성을 완전히 상실한 건 아닐 것이라 믿는다. 단지 각박한 세상에서 뒤로 밀려 잊힌 것뿐이지 않을까. 서로를 내려다보거나 올려다보지 않고 마주보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이웃과 좋은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이사를 앞두고 이웃의 가치를 되새겨보는 독서였다. 따뜻한 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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