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사러 오는 사람 중엔 인상을 쓰고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
꽃집을 하는 친구가 있다.
그녀는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했고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취직해 제품 디자이너로 일을 했었다. 해외에서 디자인 관련 상도 받고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소위 잘 나가던 친구였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안정적인 직장으로 부러움을 샀지만 그녀는 어쩐지 나날이 힘에 겨워 보였다. 자신이 디자인한 시제품을 직접 끌고 층층이 옮겨 다니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했고 일하면서 부딪히는 사람들이 힘들다고도 했었다. 당시 우리는 각자의 앞가림에 정신이 없었고 친구의 불평은 사회초년생이면 누구나 겪는 필연적인 고난으로 치환되며 잊혔다.
회사를 다니며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가고 있을 줄로만 알았던 그 친구는, 어느 날인가 홀연 일을 정리하고 유학을 떠났다. 건너 들은 소식에 따르면 런던의 플로리스트 전문과정에 지원했다고 했다. 1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한국에 돌아온 그녀는 작은 꽃집을 차렸다.
그날은 회사에서 바쁜 일정을 처리하고 간신히 제시간에 퇴근한 날이었다. 아주 오랜만에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녀의 꽃집으로 향했다. 달리는 차 안에서 나는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새로운 사업을 축하하는 마음이 물론 컸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요즘 경기가 안 좋아 자영업자들이 힘들다던데.’ ‘김영란법으로 꽃집이 타격이 크다는데.’ 등등
그녀를 만나고 나는 조심스레 사업은 어떤 지 물어보았다. 그때 친구가 내게 했던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어쩐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것만 같았다.
"이전에 회사를 다닐 때는 사무실에서나 회의실에서나 만나는 사람들마다 전부 인상을 쓰고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꽃을 사러 오는 사람 중에는 인상을 쓰고 오는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고!"
그녀는 제품 디자이너로 일할 때 월급은 훨씬 높았는지 몰라도, 치열한 경쟁과 사내 정치에 스트레스를 받아 너무 힘들었었다고 덧붙였다. 그에 비하면 지금은 하루하루 기분 좋게 일한다는 것이다.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는 친구가 마치 활짝 핀 꽃 같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날 하루를 돌아보았다. 내가 만났던 사람들의 표정을 떠올리고, 그들을 향해 지었던 나의 표정도 떠올렸다. 꽃처럼 환하기는커녕, 잔뜩 심각하게 인상을 쓰고 있는 얼굴들만 떠올랐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행복한 건가, 내 삶은 이대로 괜찮은 건가 의문이 들었다. 어쩌면 이 날 친구의 한마디가 처음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의문을 갖게 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