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자

[포토에세이]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간다는 것

by 이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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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 골목에서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어가시는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할머니의 다른 쪽 손에는 작고 하얀 개와 연결된 줄이 들려 있었다. 나이 든 그 개는 할머니보다 앞서지도 뒤쳐지지도 않도록 세심하게 보폭을 맞추고 있었다. 주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빠르게 스쳐 지나가도 오직 할머니의 걷는 속도만 신경 쓰는 것 같았다. 횡단보도 앞에서 할머니가 잠시 주춤하자, 기특하게도 그 개는 할머니를 힐끗 보더니 다시금 자신의 속도를 조절했다.


할머니와 강아지가 나란히 걸어가는 뒷모습에서 나는 예전에 영국에서 보았던 노부부를 떠올렸다. BBC PROMS이라는 클래식 음악 축제의 공연을 보러 갔을 때의 일이다. 유학생이었던 나는 가장 저렴한 스탠딩 티켓을 구해 공연장에 입장했고, 내 바로 앞에는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가 나란히 서서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장시간의 클래식 공연이 힘에 부치시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쯤, 노부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의 허리를 토닥토닥 두드려주었다. 힘들다, 허리가 아프다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지만 상대방의 마음을 내 마음같이 알았던 것이다. 공연이 끝나고 서로의 손을 꼭 잡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시는 두 분의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 없었다.


사진은 작년 가을 국립수목원에 갔을 때 찍은 것이다. 빨갛게 단풍이 든 두 그루의 나무가 주변의 풍경과는 상관없이 서로 완전히 동화되어 있는 느낌이 좋았다. 오랜 시간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것 같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상대방의 속도에 나의 속도를 맞춰가며 나란히 걸어가는 것.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서로가 같은 마음이 들고 자연스럽게 닮아 가는 것. 늦가을 두 그루의 나무가 노년의 동반자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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