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한 달 즈음에

게으르게 보내는 시간을 허락할 것

by 이연미

퇴사 후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남들은 회사를 그만둘 때 ‘시원 섭섭’하다는데, 나는 ‘시원’하기만 한 것이 한동안 의아했다. 처음엔 8년을 몸담았던 회사를 박차고 나온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아서 인가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도통 ‘섭섭’한 부분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미련이 남지 않아서 인 것도 같다.


한 달 동안 자유를 말 그대로 ‘만끽’했다. 아침에 (알람 없이) 일어나서 하루의 시간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좋았다. 그동안 하고 싶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못했던 것들을 찾아 실컷 누렸다. 전시 관람 7회, 강연 참석 5회, 영화 감상 5회, 공연(락페 1회 포함) 관람 4회, 책 완독 4권, 독서토론모임 참석 2회, 연극 감상 1회, 북 토크 참석 1회, 저자 사인회 참석 1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정을 잡았더니 어떤 날은 하루에 두 가지 이상의 이벤트가 겹쳤다. 언젠가는 오전, 오후 두 차례의 강연에 참석한 뒤 저녁에 공연을 보러 갔더니, 이동하는 것만으로도 체력이 달렸고 뇌에는 과부하가 걸렸다. 입가가 부르트고 부쩍 피곤했다.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바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글감은 늘어갔지만 막상 글을 쓸 시간은 부족했다. 글 쓰는 삶을 살겠다며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어느 순간 ‘아, 내가 지나친 욕심을 부리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스쳤다. 회사를 다니며 누리지 못했던 것을 이참에 누리고야 말겠다는 보상심리가 작용했던 것이다. 거기에 더해서 마음 한 편 나태해지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무엇이든 하도록, 어디든 가도록 내가 나를 채찍질한 것은 아닌지 반성해본다. 한 달이나 지나고 나서야 온전히 쉬는 시간을 갖지 않았음을 몸이 먼저 말을 걸어 깨달았다.


이제는 한숨 돌리고 재정비할 시간이다. 버트런드 러셀은 그의 저서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인간은 여유가 있어야 숙고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고 진정한 자유와 주체성을 확립할 수 있다고 충고했다. ‘열심히 일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강박관념을 버리고 게으름을 허락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처방을 따르기로 했다. 그동안의 이런저런 경험들을 내 안에서 소화해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글로 정리하는데 집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