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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Apr 12. 2020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는 왜 쓰는가(한겨레출판, 2010)>는 소설가이자 뛰어난 에세이스트였던 조지 오웰의 삶과 문학, 시대 의식과 작가 정신이 한 권에 응축되어 있는 에세이집이다.    

  

우리에겐 <1984>, <동물농장>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조지 오웰은 생전에 소설뿐만 아니라 수백 편의 에세이를 쓴 저널리스트다. 그중 29편의 엄선된 에세이가 발표 시기 순으로 이 책에 실려 있다. 오웰의 생의 궤적을 따라가며 한 편씩 읽어나가면마치 자서전이라도 읽은 듯 작가와 그의 작품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조지 오웰의 글은 인간과 사회를 꿰뚫어 보는 예리한 통찰과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위트 섞인 독설로 명성이 높았다. 이는 오웰의 독특한 삶의 행보에서 연유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덟 살 때부터 부유층 자제들이 다니는 기숙학교에서 차별을 받으며 생활을 해야 했고(‘정말, 정말 좋았지(p.373)’), 이미 이때부터 자신에게 “낱말을 다루는 재주”“불쾌한 사실을 직시하는 능력”이 있다는 걸 느낀다. 명문 이튼을 졸업한 후에는 영국의 식민지 버마에서 경찰간부로 5년간 근무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 통치에 환멸을 느끼고 돌아온다(‘교수형(p.23)’, ‘코끼리를 쏘다(p.31)’). 그 후 오웰은 런던과 파리에서 접시닦이 등 밑바닥 인생을 살고(‘스파이크(p.9)’) 헌책방에서 파트타임 점원으로 일하기도 하면서(‘서점의 추억(p.43)’) 글쓰기에 몰두한다.  그는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스페인내전에도 참전하며(‘스페인내전을 돌이켜본다(p.133)’), 2차 대전 중에는 BBC 라디오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하는 등(‘시와 마이크(p.163)’) 47세 폐결핵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부당한 현실을 직시하고 저항하며 글을 썼다.     


<소설, 서평, 칼럼, 르포 등 다양한 글을 쓴 조지 오웰>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그의 대표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p.289)’에서 오웰은 한 작가의 글 쓰는 동기를 헤아리자면 그의 성장 과정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글의 주제는 그가 사는 시대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그는 작가 생활을 시작하기도 전부터 이미 나름의 정서적 태도를 갖게 되며, 그것은 그가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무엇이다. (p.292)     


그는 이 에세이에서 글을 쓰는 동기를 다음과 같이 네 가지로 분류한다. 1. 순전한 이기심 – 똑똑해 보이고 싶고 사후에 기억되고 싶은 욕구. 2. 미학적 열정 – 외부 세계의 아름다움이나 낱말의 배열이 갖는 묘미에 대한 인식. 3. 역사적 충동 –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알아내고, 후세를 위해 보존해두려는 욕구. 4. 정치적 목적 - 세상을 특정 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      


오웰은 작가의 내면에서 네 가지 충동이 충돌하는데, 1936년 스페인내전을 계기로 자신은 네 번째 동기인 ‘정치적 목적’에 집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p.297)     


그는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하며, “예술이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p.294)”라고 비판한다. 또 다른 에세이 ‘문학 예방(p.221)’에서도 그는 “비정치적인 문학”이란 없다고 단언하면서, 이는 문학이 경험을 기록함으로써 동시대 사람들의 관점에 영향을 끼치고자 하는 시도(p.231)”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조지 오웰은 특히 언론의 자유 문제에 민감했다. 그는 단호하게 “매수된 정신은 망가진 정신(p.240)”이라고 지적하며, 작가가 솔직하고 힘 있는 글(p.233)”을 쓰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통념을 따르지 않고 두려움 없이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다. 에릭 메이젤이 그의 저서 <글쓰기의 태도>에서 이야기한 “중립적인 글쓰기는 없다”도 비슷한 맥락이다. 하고자 하는 말이 있는데 아무도 화나게 하고 싶지 않다거나, 만인에게 ‘좋은 사람’으로만 남고 싶다면 글을 쓸 수 없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의 해석이 담기지 않은 무미건조한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p.300)   

   

여기서 더 나아가 오웰은 작가가 사상적 자율성을 잃는다면 문학 창작도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상상력이란 야생동물과 비슷한 것이어서 가둬두면 번식하지 못한다(p.240)”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의미에서 오웰은 그의 지적 자유를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소설 <1984>와 <동물농장>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오웰은 질문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자신은 10년 동안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일(p.297)”에 몰두했으며, 그렇게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목적을 하나로 융합해보려고 한 최초의 책이 <동물농장>이었다고 말이다. 작품 이면에 있는 저자의 동기와 삶의 면모를 아는 것은 소설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는 한 편 한 편이 오웰의 사회 비판적 성찰이 담긴 ‘솔직하고 힘 있는 글’이다. 오웰의 이러한 태도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그 동기를 생각해보게 하고, ‘어떤 글을 쓸 것인가’,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가’ 등 글 쓰는 자로서의 태도와 자세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글을 쓰면서 곁에 두고 수시로 곱씹어볼 책이다.           


<나는 왜 쓰는가> _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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