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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미 Mar 06. 2020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
그 처절한 실패담

이기호의 <한정희와 나>를 읽고

본 독후감에는 책의 내용 일부와 개인적인 관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며 당신을 찾아온다면, 당신은 손을 내밀 수 있는가?’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맞이하고 온전히 이해하며 받아들일 수 있는가?’ 


‘타인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과연 가능한 일인가?’      


소설은 묻고 또 묻는다. 질문이 거듭될수록 독자는 점차 자신감을 잃어가다 결국은 소설 속 화자처럼 실패를 고백하게 된다. 그리고 가슴이 텅 비어버리는 경험을 한다. 이기호의 단편소설 <한정희와 나>에 관한 이야기다.    




<한정희와 나>는 제17회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이다. 작품집 표지에 그려진 가시 돋친 선인장의 소녀가 바로 화자의 집에 맡겨진 정희다. 정희는 화자의 집에 오기까지 ‘조금 길고도 복잡한’ 사연이 있는, 그래서 삐죽삐죽 가시가 돋친 열두 살 아이다. 소설가인 화자는 어쩐지 아내의 과거와 오버랩되는 정희를 ‘환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감정으로 맞이한다. 그의 아내도 어린 시절 집안의 어려운 형편 때문에 남의 집에 맡겨져 길러졌고, 정희는 아내를 맡아 키워준 집에서 입양했던 재경 오빠의 딸이다. 부부는 마음의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정희를 맡았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아내도 나도 그게 정확히 어떤 의미의 일인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한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맞이한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어떤 시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랐던 것이 맞았다. 그건 아이들을 아무리 많이 키우고 있다고 해도 저절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세상에 예상 가능한 아이란 없는 법이니까…….” (p.20-21)     


그는 초등학생인 아이를 이해해보려, 아이와 교감해보려 노력한다. 자신과 혈연은 아니지만 정희에게 마음이 쓰이는 것을 발견하며 ‘나중에 정희 때문에 가슴이 텅 비어버리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p.24)’하고 가끔 애틋한 고민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정희가 학교 폭력의 가해자로 학폭위에 회부되자, 그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자신의 삶에 찾아온 누군가를 진심으로 환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타인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폭이 얼마나 좁은지, 화자는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깨닫는다.    


“나는 어느 책을 읽다가 ‘절대적 환대’라는 구절에서 멈춰 섰는데, 머리로는 그 말이 충분히 이해되었지만, 마음 저편에선 정말 그게 가능한가, 가능한 일을 말하는가, 계속 묻고 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 자기 자신조차 낯설게 다가올 때가 많은데, 어떻게 그 상태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 나는 그게 잘 이해가 되질 않았다. 나 자신이 다 거짓말 같은데…….” (p.33-34)     


심지어 사건의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신과 달리 반성조차 하지 않는 정희의 모습을 마주하면서 그는 폭발하고 만다. “너 정말 나쁜 아이구나. 어린 게 염치도 없이…….” 그는 자신도 모르게 아이에게 ‘하지 않았으면 좋았을 말들과 해서는 안 되는 말들을’ 내뱉는다. 뒤늦게 그 말을 들은 정희의 표정을 떠올리며 그는 자신의 가혹함을 깨닫지만, 이미 정희는 그의 집을 떠난 후다. 


그렇게 소설 속 화자는 자신의 삶에서 실패한 경험을 고백하며, 동시에 타인의 고통에 대한 글을 써왔던 작가로서의 거짓됨도 고백한다.      


“내가 가장 많이 쓰고자 했던 것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 그런 생각이 들 때면 어쩐지 내가 쓴 모든 것이 다 거짓말 같았다. 누군가의 고통을 이해해서 쓰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고통을 바라보면서 쓰는 글.” (p.32-33)     


그리고 그는 묻는다. 당신이라면, 당신이라면 과연 정희에게 손을 내밀 수 있겠는가? 당신은 타자의 고통을 이해한다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말문이 막히고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이렇게 춥고 뺨이 시린 밤,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면, 그때 나는 그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그때도 나는 과연 그에게 손을 내밀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하면 나는 좀처럼 글을 잘 쓸 수가 없었다.” (p.39)     


그러나 타자에 대한 절대적 환대가 아무리 허상일지라도, 결국엔 실패할 것임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 지점에 가닿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듯 이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도 절망보다는 위로가 아니었을까?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않는다면 ‘작가가 또 무엇을 쓴단 말인가?’라는 화자의 말과 ‘더 적나라하게 쓰겠다’는 이기호 작가의 수상소감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한정희와 나> _ 이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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