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나의 감상

다섯 번째 일지: 1월 11일, 두 번째 대면 모임 소감

by Su

이번 달 독서모임은 5명이 신청했다. 지난달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모두 그대로 신청했다. 첫 모임에 왔던 사람들이 그대로 이번 달도 참석하겠다고 한 것은 모임이 나쁘지 않았다는 반증 같아서 기뻤다. 모임 당일, 2명이 감기가 심해져서 불참한다는 연락을 줬다. 요즘 파리는 독감이 유행이라던데 타지에 홀로 나와 감기에 걸린 참가자들이 마음 쓰였고, 아픈 와중에도 취소연락을 줘서 고마웠다. 그렇게 4명이서 만났다. 당일 취소라는 변수가 항상 있으니 6명 정도의 참가신청인원이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달 모임을 진행한 생라자르 역 근처 카페(BKNK)가 다소 시끄러워서 다른 카페를 시도해 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BKNK는 공간도 꽤 넓고, 예약도 되고, 무엇보다도 출판사가 운영하는 카페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지만, 나도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소음으로 인해 참가자의 이야기가 종종 안 들렸었기 때문에 장소를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에 동의했다. 참가자분들이 생라자르 역 근처에 있는 카페와 브라세리를 추천해 줘서 모임은 생라자르 역 근처 Trinite라는 브라세리에서 진행했다. 예약은 안 됐지만 10명이 한꺼번에 와도 거뜬할 만큼 자리가 많은 곳이었다. 빨간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브라세리의 라탄의자가 독서모임 분위기를 한 층 더 프랑스스럽게 만들었다. 사람이 많지 않을 시간대인 오후 3시라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 크게 시끄럽지도 않았다. 독서모임은 연말연초를 어떻게 보냈는지 가볍게 이야기한 후 미리 공유했던 주제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1️⃣ 외딴방을 추천한 참가자가 해당 도서를 선정한 이유 얘기해 주기

강석경 작가의 <숲 속의 방>을 추천하고 싶었는데 책을 착각하셨다고 했다. 두 책 모두 여성작가에 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이다 보니 헷갈리셨다고. 개인적으로 <외딴 방>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읽었기 때문에 착각으로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감사했다. 그리고 <숲 속의 방>도 읽고 싶어졌다. 처음 들어본 책인데 찾아보니 80년대 여성문학을 대표하는 책이며 출간된 당시에 베스트셀러였고 영화화된 작품도 굉장한 흥행을 했다고 한다. 작품이 상당히 궁금해져서 올해 안에 읽어볼 예정이다.


2️⃣ 책 전반에 대한 감상 나누기

나는 <외딴 방>을 도서관에서 대여해서 읽었다. 이 책의 첫인상은 '쉽지 않겠는 걸'이었다. 생각보다 책이 두꺼워서 신경숙 작가의 <바이올렛>처럼 간신히 읽게 될까 봐 걱정됐다. 그런데 강한 몰입력으로 성큼성큼 전진하듯이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조리'처럼 잊혀진 단어들을 만나 반가웠고, '쇠스랑', '질곡', '아로새기다'처럼 내가 모르는 한국어 단어들이 이렇게 많았나 싶었다. 물론 문맥으로 단어의 뜻을 어렴풋이 유추할 수 있었지만 정확한 단어 의미를 알기 위해 네이버 사전 앱을 다운로드하기까지 했다. 한국어 문장들이 굉장히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한 책이었다. 참석자 중 한 분도 나와 동일한 감상을 얘기했다. 책이 생각보다 두꺼워서 걱정했는데 빠르게 읽혔고, 모르는 단어가 많았다고 했다. 모르는 단어가 많았다는 건 80-90년대 생(으로 추측되는) 참석자들의 공통점이었다.

이 책을 추천하신 분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살아보셨던 분이라 책이 해당 시대를 너무 어둡게만 묘사한 것 같다고 하셨다. 작가 개인의 비극과는 별개로 그 시절은 작가만 가난했던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가난했다고. 학교에서 각자 가정에 어떤 물품들을 두고 사는지 조사하기도 하고, 응답하라 1988의 덕선이네처럼 주택 한 채에 다른 살림이 얹혀살기도 했으며, 공단 근처에는 방 한 칸씩 얻어서 살아가는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고 했다. 여고에서도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10% 남짓 되는 학생들이 대학을 갔다고 했다.

장점이 정말 많은 책이라서 단점을 어렴풋이 느꼈지만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내가 소설을 읽으면서 희미하게 느꼈던 책의 아쉬운 점이 뭐였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책은 픽션화된 자전적 소설인데, 책에서 나오는 작가의 삶이 어둡고 가엽고 애절하게 묘사하다 보니 읽으면서 조금 지친다고 느꼈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삶 속에 한 부분쯤은 애틋하게 느끼는 지점이 있다. 그리고 작가가 책에 투영한 그 애틋함이 동시대를 살아간 많은 이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기에 출간 당시 사회적인 파장을 낳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힘들고 우울한 얘기를 끊임없이 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있노라면 지치는 것처럼, 400페이지가 넘어가는 책이 전부 그런 내용이다 보니 몰입해서 술술 읽으면서도 책의 전체적인 감정선이 과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최근에 읽은 글쓰기 책에서 글을 읽을 땐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한다고 했는데, 책을 읽을 때 뭔가 걸리는 부분이 생기면 그 이유를 스스로 찾아내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마냥 좋았던 책으로 감상이 끝날 뻔한 걸 독서모임 덕분에 내가 느꼈던 미묘한 불편함을 감지하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나도 몰랐던 나의 감상을 찾게 하는 독서모임이라니! 시작하길 정말 잘했다.


3️⃣ 가장 마음에 닿았던 구절 또는 문장 공유하기

나에게는 20대 청춘부터 결혼하고 가정을 꾸린 이후까지도 정치적인 신념이 무너지지 않는 대쪽 같은 셋째 오빠가 굉장히 흥미로운 캐릭터였다. 독재정부 치하에서 본인의 청춘을 다 바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오빠와 당장의 먹고사는 문제가 더 절실했던 작가의 현실이 대치하게 되는 내용 (책의 204쪽부터 206쪽)이 마음에 가장 와닿았다. 나는 대의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인간인지, 희생할 수 있다면 어느 선까지 가능한지에 대한 주제가 나에겐 항상 흥미롭고, 그런 삶을 사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대단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참가자는 같은 여성 노동자로서 여공들의 이야기가 더 공감이 되었다고 이야기했고, 다른 참가자는 사진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동생들을 돌봐야 하는 첫째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사촌언니와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같은 책을 읽었지만 이렇게 극명하게 가장 마음에 닿는 이야기와 캐릭터가 나뉜다는 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개인의 생각은 모두 다르고 다양하다는 걸 몸소 체험했다.


4️⃣ 책을 선정자가 등장인물 중 한 캐릭터의 특정 행동을 하나 선정하면, 그 부분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기

: 책을 선정한 참가자가 정한 캐릭터는 큰 오빠였다. 집안의 맏이로 20대 초반부터 가장의 역할을 짊어져야 했기 때문에 개인의 욕구보다는 가족의 생계가 먼저였던 큰 오빠의 삶이 그 시대의 모든 첫째들은 그러해야 했기에 (본인은 첫째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공감을 많이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외딴방의 배경인 70-80년대와 현대 사회에서의 가족의 역할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나에겐 그 당시에는 당연했던 부계장자상속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찾아보니 한국에서 1977년에서야 유류분 제도가 처음 생겼다고 하니 50년 전만 해도 첫째가 모든 걸 상속받았던 시대였던 것이다. 그리고 2024년에는 형제자매 유류분 제도가 위헌으로 결정되면서 형제자매 간 유류분 청구는 이제 불가능하다고 한다. 현대사회의 형제자매 유대관계에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된 것인데, 급속도로 핵가족화된 한국사회의 가족 형태만큼이나 가족 내 관계 역시 빠르게 변하고 있고, 그걸 법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게 꽤나 인상적이었다.


5️⃣ 2026년 책과 관련된 신년목표 나누기

나는 올해 다양한 장르의 책 50권을 읽는 것과 이 독서 모임을 꾸준히 잘 운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1년에 50권이면 한 주에 한 권씩은 읽어야 하는 수치다. 다독이라고는 할 순 없겠지만, 독서를 습관으로 들이기엔 충분한 수치라고 생각했다. 독서가 습관과 취미가 되면 현명하고 나답게 늙을 수 있겠지. 100세 시대에 오래오래 현명하고 싶다.

다른 사람들도 본인들의 목표를 공유했다. 구체적으로 1년 동안 읽을 도서 목록을 공유하신 분, 독서 모임을 꾸준히 나오는 게 목표이신 분 등 다양했다. 모두가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상반기가 끝날 시점에 다 같이 목표 중간점검 한 번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본인이 목표한 바를 잘 이루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자극을 받기도 할 거고, 목표를 잘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겐 남은 하반기도 본인의 목표 달성을 위해 파이팅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첫 책을 읽고 만난 독서모임은 90분이 조금 넘게 진행됐다. 다음달 주제는 '경제/경영'으로 정했고, 도서선정은 방향을 조금 바꿔서 제비뽑기가 아닌 투표로 결정하기로 했다. 투표 결정방식은 생각하지 못했는데 집단지성이 이래서 좋다. 어떤 책들을 사람들이 추천할지, 어떤 책이 선정될지 기대된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