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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hnstory Nov 28. 2024

누구의 줄에 설 것인가

이 라인이 네 것이냐 저 라인이 네 것이냐

서울의 지하철엔 9개의 라인이 있고, 회사엔 굵직한 몇 개의 라인과 잡스러운 잔가지 라인들이 존재한다.



향하는 곳이 다른데 같은 틀 안에 있으려니 소모적인 충돌이 음지와 양지 도처에서 일어난다.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들려오는 총성에 귀를 막고 입을 닫고 눈을 가려보아도 출렁대는 마음을 다잡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조직의 규모가 거대할수록 야전사령관들은 저마다 분주하고 정보과에선 찌라시 수준의 하찮은 정보라도 긁어모으기 바쁘다. 나의 첫 번째 회사생활에서 적나라한 이 그림들이 그려지는 과정을 아주 가까운 곳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금요일 이른 저녁, 서초동 허름한 노포에서 세지 못한 폭탄주와 갈빗살은 내게 어느 노선으로 향할 것인지를 묻는 갑작스러운 시험대였다. 더군다나 함께 자리한 선배들이 소속된 부서를 듣고서 놀라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비틀거리며 향하던 집에 곧장 갈 수 없던 난, 집 근처 단골 바에 들러 데낄라를 연거푸 들이켰다.





뻔하고 지루한 이 스토리의 과정과 결과 모두를 드러낼 생각은 없다.


어느 조직에나 있을 수 있는 얘기고 콘텐츠 역시 큰 차이가 없을 테니 말이다. 다만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숙제는, 대체 언제쯤 이 나라 이 조직에서 '라인' 없이 잘 풀리는 이들이 별난 인재로 분류되지 않고 당연한 사회현상으로 받아들여지게 될까 하는 문제다. 스스로의 능력을 인정받아 좋은 위치로 나아가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다. 이 과정을 라인으로 막거나 방해하는 행위는 자연을 거스르는 것이고. 그럼에도 라인에 오와 열을 맞춰 서지 못한 이들은 제도권에서 벗어난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 일쑤다. 내 팔 내가 흔들며 사는 인간들로 치부되기도 하기에, 늘 지혜롭고 현명한 이들은 이런 고인 물들의 병정놀이에 참여하지 않고 탈영을 시도하는 것이다. 결국 그래서 누가 남게 되는가.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단 옛말이 틀리지 않았다. 


이런 조직은 시간을 두고 와해의 길을 걷게 되며 어떤 경우 스스로 침몰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다. 본디 사람의 이기적 성향으로 100% 신뢰할만한 인물을 찾기란 실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인데, 조직이 아닌 사람의 라인을 타는 이들은 그 리더의 속마음 전부를 알 수 없기에 일보다 눈치를 살피고 성과가 아닌 라인의 기능적 효과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다 그 라인이 잘려나감 혹은 그러한 분위기가 감지됨과 동시에 환승을 시도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직장에서 영원한 관계란 있을 수 없음을 왜 모르겠는가. 이로우면 취하고 손해의 가능성을 피하려 하는 행위를 누가 탓할 것이며, 그럼에도 옆자리를 끝까지 지킬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까. 라인이 형성될 정도의 규모 있는 기업에 있다면 어떤 면에서 이는 다행이라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안타까운 상황은 그렇지 못한 환경에서도 라인이 형성되는 조직이다. 이런 곳이라면 굳이 길게 얘기할 필요도 없겠다. 


결국 승자와 패자는 정해진다. 

어떻게든 라인의 끝은 영전으로 마무리될 테니. 희소성 있는 자리라면 그 명과 암이 분명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인생 2막의 시작이자 어떤 이에겐 수도 없이 들어온 축하 난을 기부경매 하는 기회를 잡은 것일 테니 말이다. 한동안 동문회에 참석하지 않는 나의 곤조(?)로 인해 학교 선배였던 지점장에게 타박을 받았더랬다. 대체 회사에 들어와서도 동문을 따지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학교에서부터 이어온 인연도 아니고 이제 공통의 관심대상에 눈높이가 맞춰져야 할 텐데 다음 인사이동에 역량 있는 이들을 발탁하는 것이 아닌 학교 후배를 끌어오는 게 과연 조직에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것인지 난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찌 보면 이런 생각 자체 만으로도 난 눈밖에 난 직원이었을 것이다. 더불어 그 '라인'이라는 것을 활용하지 못한 미련한 인간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의 눈엔 말이다. 결국 그 라인을 등에 없지 않고 나아가고자 마음먹은 그 순간부터 취업만큼이나 녹록지 않은 직장 내의 서열과 승진 그리고 라인의 영향력에 대해 절절히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조직이 잘 되어가고 있다면 좋으련만 작금의 상황들을 보면 그렇지 못하다. 각종 대출비리에 바람 잘 날 없었는데 나의 관점으로 이 또한 라인의 얽히고설킨 상황들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좋은 이들끼리는 통함이 있다. 

굳이 라인을 신경 쓰지 않아도 힘이 되는 이들이 있고 마음으로 아끼고 챙겨주고 싶은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팍팍한 직장 생활에 무한한 에너지가 되기도 하고 이들이 떠나갈 때의 생각보다 큰 공간의 헛헛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좋은 인연이라면, 서로 느긋함을 갖고 소식을 전해와도 늘 반갑다. 의무적으로 연락하는 관계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으니 가끔 소주 한잔에 바싹 구운 노가리를 뜯어먹어도 훈훈하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꼭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 그게 어떤 모습이든 생각지도 못했던 이유로 말이다. 


내가 서야 할 라인은 조직의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의 끝이다. 누군가의 뒷자리가 아닌 것이다. 조직의 가치가 개인의 판단과 사견으로 혼탁해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챙겨야 한다. 두 다리 뻗고 맘 편히 눕지 못할 자리라면 굳이 가까이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라인은 끝이 있고 조직은 존속된다. 우리가 일을 하고 팀에 속하고 기업에 속해있는 상황이라면 무엇을 우선해야 하는지, 5년, 10년이 지난 후 어떤 것들이 남게 될지 생각해 본다면 라인의 구축이 아닌 역량의 구축이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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