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어르신에게 길을 알려드리지 않기로 했다.

예의도 어른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by M ent

나는 작년까지도 어려워 보이는 어르신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편이었다. 길을 찾는 어르신을 보면 친절히 알려드리고 근처라면 모셔드렸다. 엘리베이터나 출입문을 잡고 기다리는 것이 몸에 밴 습관이었다. 나에게는 그것이 당연함이나 누구나 할 수 있는 친절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도움이 필요로 하는 어르신을 보아도 망설이거나 아예 모른 척 지나치게 되었다. 계기는 여러 사소한 서운함이 있었고 마지막 화룡정점을 찍는 사건이 있었다.


친구를 만나고 SRT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뒷좌석에 앉은 한 어르신이 다가와 목적지를 말하며 어떻게 가는지를 물으셨다. 친절하게 카카오맵을 켜서 경로를 보여드리고, 하차 후 어떻게 가야 할지 안내해 드렸다. 어르신은 모바일 지도에 익숙하지 않아 같은 내용을 세 번, 네 번 반복해서 물으셨다. 답답했지만, '익숙지 않으니 헷갈릴 수 있지'라고 생각하며 천천히 다시 설명했다.

그러다 문득, 어르신의 얼굴이 일그러지며 화를 내며 말하셨다.

"아니, 외국인이냐? 한국말을 왜 그렇게 못 알아먹게 해!"

그 순간, 내 안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친절함과 설명하려던 의지는 차갑게 얼어붙었다. 친절하게 도우려던 나의 호의가 순식간에 무능함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감정적으로 크게 상했지만, 똑같이 언성을 높이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이어폰을 귀에 꽂으며 냉소적인 눈빛으로 정면을 바라봤다. 단 한마디만 했을 뿐이다.

"어르신, 그렇게 말씀하시면 제 기분이 상당히 안 좋습니다."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SRT의 진동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평택지제역 도착 안내방송이 들렸고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톡톡 쳤다. 그 어르신이었다. 미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고마워. 내가 말이 심했어. 기분 나쁘게 해서 미안하네."

그 사과 한마디에 내 분노는 조금 가라앉았다. 나는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괜찮습니다. 조심히 가세요"라고 답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이미 타인에, 특히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주는 건 의미가 없다는 알고리즘이 완성되어 갔다.


이런 불쾌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어르신들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외침은 더 이상 존중이 아닌 당연한 요구로 들리기 시작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되었을 상황에, 그들은 도와주는 사람의 태도나 방식이 잘못된 것처럼 굴었다.

단지 '고맙다'는 짧고 쉬은 그 한마디면 되는데, 그것을 '자존심'이나 '지위', '나이'의 문제로 삼는 순간 사람들은 도와주려는 손을 거두고 피하거나 무시하는 쪽을 택하게 된다.


예의는 돌아오는 법이다.

추석 때 어머니와 함께 시장을 갔을 때, 인파로 북적이는 시장길에서 짐을 잔뜩 끄는 할머니가 내쪽으로 오고 계셨다. 물론, 나는 할머니가 오는지도 모르고 길을 막고 있었다. 할머니는 인상을 찌푸리거나 화를 내는 대신, 크고 또렷하게 말씀하셨다.

"학생! 미안한데 잠시만 길 좀 비켜줄래?"

내가 황급히 길을 비켜드리며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기도 전에, 할머니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마워!" 하고 지나가셨다. 그 짧은 순간, 나는 불편함 대신 따뜻함을 느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오래된 진리는 예의에도 적용된다.

어르신들이 "요즘 젊은이들은 예의가 없어"라고 비판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어른으로서의 품위 있는 예의를 보여준다면 어떨까? 젊은 세대가 '마땅히 존중해야 할 어른'을 만났을 때, 비로소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예의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상대방에게 듣고 싶고, 받고 싶은 행동은 결국 나 스스로 보여주는 태도에서 시작된다. 나이를 떠나, 존중은 기브도 아니고 테이크도 아닌 기브&테이크다.


미안하다지만으로 시작해서 고맙다로 끝나는 도움의 과정

인사를 기다리는 게 아닌, 먼저 인사를 하는 멋짐이 있다면 도움을 요청하는 어르신들보다 먼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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