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배려와 희생을 존중하고 감사하자
작년, 회사에 업무 배정이라는 폭풍이 불어닥쳤을 때의 일이다. 누구에게나 귀찮고 하기 싫은, 소위 '폭탄 돌리기'로 불리는 업무가 남게 되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나만 아니면 된다'는 분위기 속 눈치게임이 진행 중이었다.
결국 누군가는 해야 할 상황. 관리자가 와서 난처한 표정으로 승진을 위해서라는 이유와 함께 부탁을 했다. 안 해도 괜찮지만 그럴 경우에는 업무를 분리하겠다는 협박 아닌 협박과 함께.
이리저리 업무를 분석해 보니, 생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나는 모두가 기피하는 그 업무를 맡겠다고 했다. 물론, 조건은 업무 분장 전까지 누군가 신청하는 사람이 없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그 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업무를 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기피했던 근본적인 이유가 깔끔하게 해소되었다. 심지어 업무 환경이 개선되는 호재까지 겹쳤다. 게다가 운 좋게도 그 업무 중 하나에서 성과를 거두어 점수까지 받았다. 정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찾아온 뜻밖의 행운이었다. 모두가 피했던 업무를 자진해서 맡은 배려에 대한 선물 같았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내가 이룬 성과와 상황 개선을 두고 악의적인 소문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쟤, 원래 저렇게 쉽게 꿀 빨려고 들어간 거였어." "관리자랑 동문이라 뒤를 봐준 거라더라." "원래 내가 하려고 했던 건데 쟤가 선수 친 거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아무도 희망하지 않았던 업무였다.)
처음 소문을 들었을 때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만 나왔다. 그다음은 배신감과 엄청난 분노가 치밀었다. 남들이 하기 싫어서 침묵할 때, 내가 총대를 메고 나선 호의가 순식간에 '특혜'와 '꿀 빨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있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했다. 예전처럼 모르는 척하고 속에서 삭여야 할까? 아니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야 할까?
긴 고민 끝에 나는 처음으로 타인과의 관계보다 나의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결심했다.
곧장 관리자와 상사에게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내 감정을 솔직하게 전달했다.
"남들 하기 싫고 신청 안 한 업무 제가 한 겁니다. 본인들이 회피했던 일을 마치 자기들이 하려던 것처럼 헛소문을 퍼뜨리는 건 참 치졸한 거 같네요."
그리고 몇몇 소문의 진원지에도 직접 내 입장을 말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며칠 만에 악의적인 가짜뉴스는 잠잠해졌다.
이 외에도 비슷한 일들이 많았다. 힘들어도 티 내지 않고 묵묵히 일했더니 과중한 업무만 더 쌓였던 경험, 성과가 예상되는 업무를 선배에게 양보했더니 나에게 배려 없는 업무로 돌아왔던 경험들.
예전의 나라면 '직장 생활이니까', '내가 참아야지'라며 웃어넘기고 속에 쌓아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고 말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는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헛소문을 퍼뜨리고, 나를 당연하게 이용하거나 얕잡아 봤던 사람들이 내가 말을 하자 태도를 바꿨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의 속에 갇혀 있던 말이 상황을 바꾼 것이다.
그들에게 나의 '말 없는 배려'는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 말 없이 모든 것을 'OK' 하는 나는, 뒤에서 이용해 먹고 버릴 수 있는 소모품이었고, 화를 내지 않는 나는 화를 낼 줄 모르는 바보 천치였던 것이다.
침묵하고 묵묵히 일하는 것은 결코 바보라서도, 상대가 무서워서도 아니다. 그것은 주변이 편안하기를 바라는 배려와 희생이라는 누군가의 조용한 노력이다.
하지만 그 노력이 무시되고, 그 배려와 희생이 당연한 권리가 된 상황이 온다면, 더 이상 참지 말아야 한다.
"말을 못 해서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이 상황이 명백히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하고 때로는 엄격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침묵은 다 괜찮아가 아니라, 배려와 희생의 다른 모습이다.
나의 희생이 무시되기 전에, 나의 배려가 마땅히 존중받을 수 있도록 이제 참지 말고 말자. 그리고 말하자.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