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왜 자극을 반복하는가
서론. 인간은 왜 매운맛을 찾을까
매운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통증은 실제로는 고통 신호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 고통을 기꺼이 반복한다. 운동을 하고 나서 느끼는 근육통, 한겨울 찬물 샤워 직후의 짜릿함, 번지점프 직후의 심장박동처럼—이 모든 감각은 일정한 고통을 수반하지만 동시에 중독적으로 반복된다. 이것은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몸에 내재된 자연 마취 시스템(natural analgesia)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본론1. 자연 마취 효과 —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무대
인간은 특정 자극에 노출되었을 때 내인성 진통제 역할을 하는 물질들을 스스로 생성한다. 대표적으로 엔돌핀, 아드레날린, 도파민이 있다. 매운맛은 고통 수용체를 자극하고 이로 인해 뇌는 위협 상황으로 인지하여 엔돌핀을 방출한다. 이는 진통뿐 아니라 경쾌함, 고양감(euphoria)까지 유도한다. 운동 후 분비되는 도파민은 성취감과 중독을 함께 불러일으키며 위험한 상황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은 생존반응과 쾌감을 동시에 유발한다. 이러한 생리적 보상은 인간이 고통에 노출되기를 반복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본론2. 내면의 자극 회로 — 중독과 쾌락의 경계
이 자연 마취 효과는 본질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보상 시스템이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이 회로가 다양한 형태로 ‘남용’된다. 예컨대 극도로 매운 음식, 격한 운동, 도박, 게임, SNS, 쇼핑 등은 모두 이 회로를 자극해 도파민을 유발한다. 문제는 자극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수록 뇌의 보상 기준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전에 느꼈던 쾌감을 다시 느끼기 위해 더 자극적인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자연 마취 시스템은 쾌락의 중독 회로로 전환된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이 자극 회로 자체가 인지적 기능과 감정 조절을 왜곡하는 병적 상태, 즉 정신질환(mental illness)으로 이어질 수 있다. 충동적 행동을 멈추지 못하거나 보상 회로가 과도하게 민감해져 감정의 균형을 잃는 경우, 이는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정신적 치료가 필요한 상태다. 조현병, 우울증, 충동조절장애, 행동 중독(behavioral addiction) 등은 자연 마취 시스템의 오작동이 신경생리학적으로 표현된 한 형태이기도 하다. 특히 도파민 시스템의 과활성은 조증 상태를 유발할 수 있고 반대로 둔화될 경우 무기력과 우울감을 동반한다. 뇌의 보상 체계는 단순한 쾌락의 회로가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무엇에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관여하는 핵심 회로이기 때문이다.
본론3. 결핍과 중독 — 무엇이 그들을 반복하게 하는가
흥미롭게도 자연 마취 효과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종종 감정적 결핍이 자리하고 있다. 유년기의 애착 손상, 정서적 무시, 반복된 상실 경험 등은 자극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고 자기위안을 찾기 위해 반복적인 자극을 추구하게 만든다. 이들은 자극을 '쾌락'이라기보다 '생존의 버팀목'으로 받아들인다. 중독은 그래서 때때로 결핍의 감각을 스스로 마비시키려는 무의식적 시도이기도 하다. 이들을 판단하거나 교정하려 하기보다 먼저 그 결핍이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본론4. 자기조절력 — 자극을 누르는 힘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자기조절력(self-regulation)이다. 자기조절력은 자극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지연시키거나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다. 단순히 의지력의 문제가 아니라 자극과 반응 사이에 인지적 여백을 둘 수 있는 능력이다. 최근 뇌과학은 이 자기조절력이 전두엽(prefrontal cortex)의 활성화와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준다(Naomi P Friedman & Trevor W Robbins, 2022, Neuropsychopahrmacology; Choong-Wan Woo et al., 2015, PLoS Biol.; Todd F Heatherton, 2011, Annu Rev Psychol.). 이는 단순히 충동을 억제하는 것을 넘어 ‘어떤 쾌락이 건강한가’를 분별하고 때로는 ‘불편함을 감수할 가치가 있는가’를 판단하는 고등 인지능력이다. 자기조절력이 낮을 경우, 자극에 대한 과잉 반응과 통제 불능은 쉽게 정신질환의 위험 요인으로 전이될 수 있다.
결론. 자극을 인식하되, 지배당하지 않는 삶
인간은 자극에 반응하도록 설계된 존재다. 하지만 모든 자극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없다. 중요한 것은 자극을 ‘통제하는 힘’이 아니라 자극과 나 사이의 관계를 인지하고 선택하는 능력이다. 자연 마취 효과는 인간의 생존을 위한 고유한 시스템이지만 그 안에서 중독으로 흐르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조절이 필요하다. 자기조절은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정신 건강과 직결된 능력이며 결국 우리가 말하는 ‘건강한 삶’이란,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는 용기와 쾌락을 보류할 수 있는 판단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삶일 것이다.
맺으며
중독적 자극을 반복하는 사람을 대할 때 우리는 교정자가 아니라 결핍을 언어화해주는 동료 청취자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어떤 순간엔 그저 누군가가 "이건 중독이 아니라 고통의 신호일지도 모른다"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자기인식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가 서로의 리듬을 존중하는 순간, 자극은 마침내 반응이 아니라 선택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