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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먹었지만 이직의 목적에 맞는 회사로 이직하는 것은 쉽지는 않았다. 거의 포기할 때쯤 참 우연히도 가장 가고 싶었던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다. 부서도 연구직보다는 기획 쪽이었으니 경영과 매니지먼트를 경험해야겠다는 이직의 목적과도 부합했다. 이직 후 6개월, 나는 잘 가고 있었을까? 그리고 벤처랑은 무엇이 달랐을까?
대기업과 벤처기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조직의 크기와 복잡성에서 나오는 관료주의다. 조직은 옆으로도 크고 위로도 길다. 일들을 잘게 쪼개어 부서화 해 거미줄처럼 엮었고 위로는 사장이 끝이 아니었다. 수많은 계열사 위로 지주사 역할을 하는 회사가 또 있었다. 이렇다 보니 일어나는 일의 맥락과 자세한 상황은 모르는데 일이 잘 못될 경우 책임만 져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사결정을 할 때 주관자를 도와 일을 일으키기 보다는 리스크를 회피하기 위해 각종 보조 장치를 갖추고 서류 작업 같은 업무를 늘린다. 당연히 일이 추진되는 속도도 느리고 가다가 멈추는 일도 많다. 대기업이라고 많은 자금으로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경우는 없었다. 다만 최고 경영자의 지시사항일 경우에는 달랐다.
그렇다 보니 능력 있고 똑똑한 사람들도 새로운 아이딜 어을 내거나 독립적으로 일을 추진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옆에서 보기에 아쉬운 경우가 많았지만 이해가 되었고 나도 곧 그렇게 될 것 같았다. 그 사이 나는 부서가 통폐합되면서 오픈이노베이션과 투자를 담당하는 부서로 오게 되었다. 부서의 업무는 오히려 나와 더 맞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으나 문제는 통폐합으로 원래보다 30퍼센트나 많은 인원이 생긴 것이었다. 내가 할 일은 거의 없었다. 원래 있던 일을 더 쪼개어 나누긴 했지만 단발성 일이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원, 포닥 그리고 벤처에서도 일은 찾아서 그리고 만들어서 했었다. 그게 팀과 회사는 물론이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런 보수적인 분위기에서 이를 새로 만드는 것은 별로 환영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맡은 작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장기적 관점에서 크게 만들어 계획하고 부서장과 팀원들에게 발표하고 공유했다. 내가 총대 매고 추진 할 테니 옆에서 잘 봐달라는 부탁과 함께.. 바쁜 사람들한테 같이 하자고는 차마 못했지만 유관 부서의 협력을 얻어내는데 까진 성공 했다. 그렇게 적극성을 띠어서일까? 일이 하나씩 추가가 되고 기존 업무도 조금씩 더 얻어올 수 있었다. 부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벤처 정신이 대기업에서 필요 없지는 않았다.
쓰다 보니 또 길어져 3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