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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털찐 냥이 Jan 07. 2023

넘쳐나는 생각의 머리채 잡기

한 올 한 올 적어본다

   매일 쓰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훗날 돌아볼 기록이 과거를 반성하게 해주어서가 아니라 현재에서 나와 마주 앉는 시간을 꾸준히 보내기 때문일 거예요.


<김신지_기록하기로 했습니다_휴머니스트_2021>



휴일 오후, 지하철 역 주변의 번화한 거리의 카페에 갔었다. 카페 계단을 나선으로 올라서 첫 번째 테이블에 보인 것은 누군가의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다이어리를 펼쳐놓고 꼼꼼하게 펜의 그림자를 새기고 있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다른 이들도 몇 명 눈에 띄었다. 본인의 시간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종이 다이어리에 직접 꼼지락꼼지락 손으로 기록을 하고 있었다. 여느 카페의 흔한 풍경과 조금 다르게 보였다.


 왜 노트북이 아니고 종이일까?


흥미롭게 보였던 것은 기록하는  시간,장소, 도구 였다.

평일의 분주함을 정리할 수 있는 일요일 낮시간.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음악소리가 범벅이 되어 들리는 소음이 있는 공개된 장소.

노트북, 태블릿이 아닌 종이를 묶어 놓은 다이어리.

그렇게 사람들이 기록을 하고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 본 기억이라서 요즘은 어떠한지 잘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는 자신에게 집중할 시간이 늘어난 만큼 생각을 잘 정리하기 위해 다이어리를 펼치는 횟수가 늘어나 있지 않을까?

내가 벗어나지 못한 아날로그 방식을 다른 사람들도 하고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종이에 생각을 적는 행동이 내가 시대에 뒷걸음질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위안이 된 것 같다.


외출을 할 때, 나는 노트북이나 태블릿과는 별도로 얇은 수첩 또는 냅킨 몇 장이라도 가방에 꼭 넣고 다닌다. 대단하게 창의적인 글을 쓴다거나 멋진 아이디어를 낚아채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느 순간 끄적이고 싶을 때가 있을까 봐  손이 심심해할까 봐 갖고 다닌다. 그런데 그렇게 종이에 적는 행동이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의 나이 듦을 행동으로 나타내지는 않을까?' 혼자 소심해질 때가 있다. 카페에서 나 혼자 태블릿의 펜슬이 아닌 0.3m 수성펜을 잡고 있는 손이 살짝 '어색한가?' 싶을 때가 있다. 아니면 아직 무한한 문구류의 블랙홀인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의 세계에 입문하지 못해서 혼자 어색한 것일까? 왠지 스티커 붙이는 것도 어색하니 말이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계 그 중간 어디서 어정쩡하게 서있나 보다.


몇 년 전, 한참 고민이 깊었을 때가 있었다. 생각이 넘쳐나서 수십 장의 A4종이에 나를 괴롭히는 문제로 인한 생각의 머리채를 붙잡고 끌고 다니며 기억의 꼬리 끝까지 적어 내려갔던 시간이 있었다. 작은 카페에 앉아서 쓰고 또 쓰고 펜을 바꿔가며 도형으로 색으로 생각에 인덱스를 붙였다. 어찌나 진지하게 쓰고 있었던지 맞은편에서 나를 보던 모녀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생각을 정리하나 봐" 중년의 딸이 노모에게 말했다.

"응, 그래야 할 때가 있지" 노모의 대답이 나에게 들려왔다.


나를 두고 속닥이는 말인데 싫지 않았다. 그녀들의 대화는 위로가 되었다. 종일 여운이 남았다. 이마도 내 마음도 모르게 듣고 싶은 말이었나 보다.


 생각의 바닥 끝까지 적어내려가니 점점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런데 그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었을까? 돌아보니 허탈했다. 생산적인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난장판이 된 미역줄기 같은 길고 얽힌 생각을 잡아채서 조목조목 썰어낸 것은 잘한 것 같다. 예전에 회의록을 적고 프로젝트를 진행해본 덕분인지 아니면 대학원에서 두뇌에 담아내기 벅찬 지식을 정리하던 훈련이 있었던 덕분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생각의 우주에서 혼자 헤매다가 미아가 될 뻔했으나 평온을 찾았으니 기특하다.


오늘도 길고양이 밥그릇을 채워놓았다. 궁금하다. 종종 가만히 앉아있는 녀석들을 보면 궁금해질 때가 있다. '무슨 생각할까?' '길고양이도 나처럼 생각이 많을 때가 있을까?' 어린아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고 매일을 생존의 날카로운 칼끝에서 살아내고 있는 존재이다. 밥 주는 시간과 장소를 학습하고 친숙한 사람을 인지한다. 오랫동안 많은 고양이들을 지켜보니 그들은 학습 능력도 있고 관계를 맺을 줄 아는 동물이다. 성격도 제각각 다르다. 그래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종종 궁금해질 때가 있다. 최소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나 정도는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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