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집가 Sep 18. 2016

시간에 다른 가치를 두는 일 = 여행

<달라이라마와 히치하이킹을> 뤼도빅 위블레르

1.


누군가 책을 사는 행위도 충동 구매 중 하나라고 말한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도 그 충동 구매라면 할 말이 많은데, 다른 물건들은 꽤 고심해서 사는 편인데 서점에만 가면 꼭 책 한 권씩 충동적으로 사들고 나온다. 읽을까 말까 망설여지는 책은 책 표지 사진을 찍어두었다가 며칠 후에도 읽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인터넷으로 주문하거나 다음번에 서점에 들렀을 때 꼭 집어온다.


내가 책을 구매하는 것을 충동 구매라 부르는 것에 동의하는 이유는 책 읽는 행위 자체가 나쁘다는게 아니라, 몇년 째 읽지도 않고 책장에 꽂아놓고는 책등만 기억하는 책이 이미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늘 지금 이 타이밍에 딱 어울리는 책들이 있기 마련인 법! 이번 연휴 직전에도 '추석 연휴에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침대에 누워 여유롭게 읽는다'는 설정에 꼭 맞는 책을 세 권 샀다. 누가 인간은 학습의 동물이라고 했나, 인간은 지긋지긋한 반복의 동물이다.


아쉽게도 연휴 동안 이 세 권중에 두 권밖에 못 읽었다. 연휴가 가는게 정말 아쉽구나!


2.


여행기를 자주 읽는 편이지만 선택하는데는 나름의 기준이 있다.


첫째, 사진이 절반 이상이고 종이 재질이 유난히 좋은 책은 사지 않는다. 무겁고 비싸기만 할뿐 알맹이는 거의 없다.

둘째,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곳을 여행했거나, 일주일 정도 머물고나서 이 나라나 도시에 대해 다 아는냥 떠드는 책은 사지 않는다. 그건 책을 읽는다기보다는 포털에 널린 정보를 책으로부터 수집하는 것에 더 가깝다.

셋째, 작가 개인의 스토리가 별로 매력이 없거나 글을 쓰는 일을 업으로 하지 않는 작가의 책은 사지 않는다. 나는 여행을 소재로 한 글을 읽는 것을 좋아하지 누군가의 여행 일기를 읽으려는 까닭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사실 난 소설을 포함해 하루키의 모든 작품 중에서 먼 북소리를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류성용의 '여행생활자',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Eat Pray Love', 그리고 마이케 빈네무트의 '나는 떠났다 그리고 자유를 배웠다'이다.


오늘 소개하는 뤼도빅 위블레르의 '달라이 라마와 히치하이킹을(Le monde en stop)'은 위에 열거한 책의 수준은 아니지만 나름의 테마와 메시지가 분명했고 여행책을 선택하는 기준을 모두 충족한, 연휴에 유유자적 읽어볼만한 책이다.


참고로, 저자가 달라이라마를 진짜 만났냐고? Yes! 달라이라마와 정말 같이 히치하이킹을 했냐고? No! 출판사의 전략인 것 같은데 난 제목보다는 서브에 끌린 편이라 뭐:)


3.


뤼도빅은 2003년부터 1,825일 그러니까 딱 5년간 세계일주를 했는데 이동 방법은 오직 '히치하이킹' 뿐이다. 즉, 대륙과 대륙을 이동할 시 다시 말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야 할 때도 그는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배'를 히치하이킹한 것.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탄탄대로가 눈앞에 펼쳐져있던 그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 나온 한마디, "인간은 자아의 신화 구석구석에 숨겨진 운명의 단서를 읽을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 때문에 여행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배낭여행도 아니고 오직 엄지를 올려 우연히 얻어걸린 차를 타고 이동하는 방식이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험에도 많이 노출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불확실성을 받아들이고 점점 열린 자세로 세계를 품어가는 그의 자세에서 많이 배울 수 있었다.


밤에 어디서 잘지, 어떤 차를 탈지, 10분 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어떤 만남이 기다릴지 전혀 모르는 불확실한 날들에 적응이 되어간다. 이를 통해 미지의 세계를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 간다. 미지의 세계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조금씩 편안함을 느끼는 범위를 넓혀가며 인내심을 키우고 자유를 만끽하게 된다.

이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하루하루 성장하고 타인에게 마음을 열어가고 있다. 일정 때문에 이런 경험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 세계여행은 내게 금쪽같이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또 서구 중심의 시각으로 세계를 정의했던 그가 경험을 통해 새로운 관점을 계속 얻어가던 모습을 보며 부럽기도 했다. 반대로 그가 미국인이 아니라 프랑스인인건 여행을 할 때 여러모로 참 다행이었겠지만, 다른 국가의 다른 젠더의 사람이 유사한 여행을 한다고 했을 때 그가 받았던 환대를 똑같이 받을 수 있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특히 이란이나 아프가니스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아시아인, 황색인종, 무교, 싱글, 여성인 내가 과연 그 나라에서 자유롭게 여행은 커녕 살아서 돌아다닐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전히 여성을 억압해야만 하는 하등한 인류로 보는 나라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도 아예 안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류(?)의 여행을 여성 혼자 한다는 것은 굉장히 많은 제약과 위험이 따르는 일이다, 아효-


유려한 글 솜씨는 아니지만 아프리카나 남아메리카, 중앙아시아처럼 우리에게 정보가 그리 많지 않은(=별로 관심이 없는) 나라와 문화에 대해 새롭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됐다. 1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처음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1권을 읽었을 때 느꼈던 충격과 자극이 떠올랐다.


아쉬운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우리가 제3세계라 부르는 저개발국의 문화, 사회, 정치에 크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변함이 없으면서 다양성을 추구한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어 부끄러워졌다. 물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주요채널인 미디어에서 자주 다뤄주지 않는데다 민감한 내용이라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기 어렵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너무 닫힌 세계를 고집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4.


나도 그와 같이 여행을 떠날 수 있을까? 히치하이킹으로? 글쎄, 그건 너무 위험해. 5년의 장기 여행을? 5년은 좀 긴 것 같고, 1년쯤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주위 세상을 더 잘 알기 위해 내 인생의 5퍼센트를 쓰는 것이 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 가치를 두는 일이 다를 뿐이다.


무작정 여행을 꿈꾼다기 보다는 내가 여행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을 명확히 한 다음 그것을 증명하거나 반대로 계속 실패하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을 대면하고, 타인을 이해하기 시작하며, 세상을 체득하고, 지구를 생각할 수 있도록.


5.


그는 프랑스로 돌아와 비영리단체 ‘평화와 스포츠 PEACE AND SPORT’에서 일하며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도모하는 일을 하다 현재는 재능 기부를 희망하는 여행자와 개발도상국 비영리단체를 연결해주는 네트워크 ‘미션이 있는 여행 TRAVEL WITH A MISSION’(TWAM)을 만들었다고 한다. 멋지다! 역시 세상에 멋진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생활이 꿈을 지배하지 않고, 꿈이 생활을 지배해야 한다는 걸 명심하라"던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다시 한 번 오늘을 다지는 계기를 마련해준 책, 이 정도면 꽤 성공적인 충동구매가 아닐까.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건너야할 자신만의 사막이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