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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Sep 02. 2016

누구나 건너야할 자신만의 사막이 있다

<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이다> 남영호

1.


오후 1시 30분, 미팅을 하기엔 꽤나 애매한 시간.

오전 중 미팅 장소로 움직여 근처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여유있게 미팅에 들어가거나, 주말이었음 아침을 먹었을 시간에 이른 점심을 먹고 이동해야 한다. 사실 오후 1시 30분은 미팅을 하기에 애매한 시간이 아니라, 밥을 먹기에 애매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직장인은 결국 밥심으로 버티는데, 밥은 꼬박꼬박 챙겨먹어야지.' 그러나 나는 오늘 애매한 시간 덕분에 점심을 거른채 미팅에 들어가 힘없이 미팅을 하고 힘없이 다음 미팅 장소로 향했다. 

오후 2시 50분, 포털에 "OO역 혼밥"을 검색했다.

OO역과 바로 연결되는 복합 쇼핑몰에 가면 혼밥이고 둘밥이고 고민 없을 식당이 여럿 있었지만 오늘은 유독 혼밥을 먹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환영 받는' 곳에서 먹고 싶었다. 검색 결과는 볶음국수와 철판볶음밥을 아주 맛있게 하는데다 무려 혼밥을 환영한다는 가게를 보여줬고, OO역에 내리자마자 지도앱을 켜고 그 집을 찾아 걸었다.

가는 길에 만난 몇몇 식당은 이미 3시가 넘었으니 점심과 저녁 사이 Break Time에 들어가있었다. 아쉽지 않았다, 요샌 Break Time 없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돌리는 식당을 더 찾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장님들이 종업원의 쉴 권리를 존중하는 것 같다. 물론 그 시간에 제대로 쉬는지, 쉬는 시간에 대한 수당도 정확히 쳐주는지 알 수 없지만. 

오후 3시 40분, 혼밥으로 유명한 식당 앞에 도착했는데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텅 빈 식당에 내가 들어서면 모든 종업원이 나를 위해 움직여야 하는게 부담스러웠다. 찾아오는 길에 지났던 두 테이블 정도 손님이 있고, 주방과 홀 종업원들이 늦은 점심을 하고 있던 찌개집이 자꾸 떠올랐다.

결국 메뉴에 대한 선호와 관계없이 찌개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종업원도 다른 손님도 각자의 끼니를 떼우느라 나에게 필요 이상의 눈길도 관심도 주지 않는, 서로의 밥상에만 충실한 공간으로. 나 역시 그 누구도 신경쓰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으며 그 안에 자연스럽게 섞였다.


2.


혼자 여행도 하고 혼자 밥도 먹고 혼자 술도 먹어왔건만, 무엇인가 혼자 한다는 건 이따금씩 이렇게 결코 익숙하게 해낼 수 없는 일이 되곤 한다.


우리는 결국 혼자인데 왜 혼자인 것에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전세계에 있는 거의 모든 사막을 여행해온 탐험가의 책을 절반쯤 읽었을 때, 그가 사막을 혼자 걸은 것은 아니고 그에겐 늘 팀이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챘다. 당연한 일이었다. 사막을 제대로 알게되는 순간, 사막은 홀로 걷는 일은 무척이나 위험하며 가능하지도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탐험가이자 사진작가이기도 한 저자의 글과 사진은 하나같이 유려하다


그런데 혼자서 걷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일종의 배신감 같은걸 느꼈다. 탐험가라면 철저하게 혼자여야하고 또 처절한 고독 속에서 살아남아 걸어나와야만 할 것 같은, 그래야만 뭔가 그럴 듯할 것 같은 혼자만의 상상을 가지고 있었다. 혼자 밥을 먹는 일에도 가끔은 용기가 필요한 일인데 왜 탐험가에게 그런 헛된 이미지를 씌워놓고 비교하고 실망했을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무지였을까, 아니면 허상으로 가득찬 이상을 만들어놓고 내가 사막을 홀로 걷는 일은 1g의 가능성도 없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며 애써 분리하고 싶었던 걸까.


3.


사막을 몇 십일, 몇 백일씩 걷는 일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면서 경험할 기회가 전혀 없을 일이다. 그래서인지 사막을 걸으며 느낀 많은 감상들을 작가는 인생에 자주 비유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


숱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난 운 좋게도 살아남았고 다시 그곳을 꿈꾸며 앞일을 계획하고 있다. 사막은 때론 아름답지만 분명 혹독한 곳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막을 떠날 수가 없다. 내가 떠나려 한다고 떠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우리가 헤어지는 것은 내 삶이 끝날 때쯤에나 가능할 것 같다. 사막은 나에게 일터이자 학교 같은 곳이다. 때론 신나는 놀이터이기도 하다. 내가 무엇을 하든 간섭하지 않는다. 내가 어떻게 걸어가든 충고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남긴 발자국이 바람에 흩날려 사라지기 전에 앞으로 나가야 한다. 

쉬어갈 그늘이 반가운 것은 땀 흘려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늘 속에 주저앉아버리면 그늘 밖이 두려워진다. 그것에 익숙해지면 다시 출발할 용기가 없어지기도 한다.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는 과감히 그늘을 떠나야 한다. 그늘에 앉아 멈춰버리면 영원히 사막을 벗어날 수 없다.

내 길을 놓치고 나니 사막이란 곳이 나를 이렇게 힘들게 한다. 다시 그 길을 찾아가려니 너무나 힘겹다. 그렇지만 이곳을 빠져나가려면 내 길을 찾는 수밖에 없다. 남의 길을 따라가다보면 내 길을 잃게 된다. 사막에서나 사막 밖에서나.


하나같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들이다. '누구나 건너야할 자신만의 사막이 있다'는 말처럼 우리의 인생은 정말 사막과도 같은 걸까.


불확실함과 두려움으로 넘쳐나며 도저히 끝을 알 수 없는, 희망이라곤 없는 황량함에 포위된채 느끼는 무력감. 그러나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 단 하나뿐인.


사막은 아름답다고 한다, 그러나 하루에도 몇번씩 자신을 잡아먹을 듯한 뜨거운 건조함을 이겨내고 살아서 걸어나갈 수 있을거란 무한한 용기가 있는 자만 이 아름다움을 감당할 수 있다.


4.


운좋게도 이 책의 작가이자 탐험가인 남영호 대장의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는 우리가 몰랐던 사막의 오해와 진실에 대해 또 그가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원정에서 배운 것들을 공유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메시지라면 단연코 "마음의 준비가 안되면 두렵고, 두려우면 조바심이 나고, 조바심이 나면 실패한다"는 것.


사막을 건널 때 또는 우리의 삶을 걸어갈 때 간절히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스스로의 가능성을 믿는 것, 준비된 단단한 의지를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돌아갈 길이 없는 사막에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면 결국 시원한 나무 그늘이든 뙤약볕이 내리쬐는 모래 벌판에서든 포위되고 마니까.


모두가 수직의 탐험을 할 때 수평의 탐험을 선택한 작가는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단 한번도 쉬웠던 적도 없었고 매번 한계를 느끼겠지만 결국 사막에서 살아 걸어나올 자기 자신의 강한 의지를. 그는 '거의 다 온 것은 다 온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탐험가의 정신으로 매번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성취하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말은 하고 싶지않다. 


다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각자가 가진 크고 작은 사막을 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 사막과 달리 인생은 시작점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멈춰서거나 나아갈 수 밖에 없다는 것, 무엇을 선택하든 자기만의 몫이겠지만 가능성에 걸어보는게 더 남는 장사가 아니겠냐는 것.


지금 이 순간, 눈 앞에 높은 사구 하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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