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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집가 Jun 05. 2019

러닝머신 달리기 vs. 아웃도어 달리기

아무튼 달리기 #02


2019년 5월 19일 일요일 

18도 비온 후 갬, 미세먼지 좋음 

3.37K, 22:30, 6’40” 



헬스장 러닝머신 위가 아니라 처음으로 땅바닥을 내딛으며 달린 것은 (서른이 넘어서 밖에서 달린게 처음이라는 말은 좀 이상하지만) 2018년 9월 16일이었다. 나의 나이키 러닝 클럽(NRC) 앱에 첫 기록으로 남은 그 날은 여의도 공원에서부터 상암 월드컵 경기장까지 10K를 달리는 '아디다스 마이런'에 참가하는 날이었다(나이키 앱을 켜고 아디다스 대회를 뛴다니). 초여름, <마녀체력>을 읽고 뽐뿌를 제대로 받은 운동 욕구는 러너들의 필수 코스라는 스포츠 브랜드 마라톤 대회 신청을 하게 했고, 급기야 헬스장에 내 발로 들어가 PT를 등록하기에 이른다.  


“회원님은 체력은 정말 좋은데 근력, 체지방, 체형에 모두 문제가 있네요. 크게 미달이거나 너무 과해요. 그래도 체력은 정말 좋아요.”


트레이너 선생님의 말에 고개는 끄덕였지만 속으로 '이게 무슨 소리야, 말이 되는건가?’ 하고 생각했다(선생님, 죄송합니다). 그러나 머지 않아 알게 됐다. 몸무게에 비해 근육량이 적고, 체지방률은 높고, 체형도 망가져있으나 타고난 힘과 근성이 좋다는 말이었음을. 그리고 나중에 또 발견한 사실은 운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있을때와 없을때의 그 힘 차이가 엄청나다는 것을. 즉, 체력은 정신력에 의존하고, 정신력은 또 체력에 의존한다는 것을 여러번의 나태와 방황, 반성과 다짐의 반복으로 깨닫게 됐다. 


어쨌든 체력은 좋으나 근력, 체지방, 체형에 문제가 있고, 2분을 겨우 뛸 정도로 폐활량과 지구력에도 문제가 있는, 즉 '운동을 하기에 아주 적합한 상태'란 사실을 발견했다. 물론 발견을 해야만 알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마라톤 디데이를 앞두고 조금씩 거리를 늘려가는 연습을 했다. 첫주에는 걸으며 워밍업을 한 다음 5분을 쉬지 않고 달렸다. 그 다음주는 1키로를, 그 다음주는 10분을, 그렇게 조금씩 늘려 어느새 쉬지 않고 2키로를 달리는 실력(?)의 소유자가 된다. 함께 마라톤에 등록한 친구는 “우리 트레이너 선생님이 그러는데, 3키로를 20분에 달리는 연습만 꾸준히 하면 10키로 충분히 뛸 수 있대. 3번만 반복하면 되잖아.” 라는 듣기에는 쉽지만, 실제로는 결코 쉽지 않은 말을 했고, 그래도 아주 조금은 용기가 되었다.  


그렇게 나는 대회에 나가기 전 헬스장에서 열심히 연습을 했다. 지면도 고르고, 속도도 일정하고, 무릎과 발바닥에 무리도 거의 안주는 러닝머신 위에서. 그리고 나서 처음으로 바깥을 달린게 하필이면 10키로 마라톤 대회다. 초반 병목현상은 물론이고 합정에서 망원을 넘어가는 오르막은 생각도 못했고, 아스팔트를 달릴 때 무릎에 느껴지는 무리감은 상상도 못했다. 물론 10키로를 다 뛰고 나서 피니쉬라인을 넘으며 느낀 성취감도 이루 말할 수 없었지. (대회에 대해서는 다음에 이야기 하도록 하자. 그리고 유명 스포츠 브랜드가 개최하는 마라톤은 젊은이들의 인스타그램 사진 촬영 대잔치이고, 오히려 프로 러너와 숨은 고수들은 국제 대회에서 더 많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도.) 


달리기 초보는 이날 처음으로 러닝머신에서 달리는 것과 아웃도어에서 달리는 것의 차이를 실감한다. 무엇이 더 좋고 더 나쁜 건 아니고, 각각의 장점과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러닝머신 달리기 vs 아웃도어 달리기  


러닝머신은 속도는 물론 페이스를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다. TV도 볼 수 있다, 재미있는 영화나 스포츠 경기나 뉴스가 있는 날엔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싶)지만 대부분 느리게 간다. 끝나고 기구 운동을 하면 땀을 비 오듯 흘릴 수 있고 근력을 키우는데 효과적이다. 늦은 시간까지 일한 다음 남은 에너지를 러닝머신에서 쥐어짠 다음 집에 가면 기절과도 같은 숙면을 경험할 수 있다.  


아웃도어는 구간마다 속도가 다르다. 내가 달리기를 멈추면 그대로 멈추는 것이기 때문에 즉,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기 때문에 의지력이 필수다. 바람이 선선할 땐 몸은 힘들지만 왠지 호강하는 기분이 든다, 풍경이 좋은 곳을 달릴 때는 더더욱. 아스팔트보다는 트랙이 있으면 폭신폭신해서 무리가 덜 간다. 음악을 듣든 팟캐스트를 듣든 러닝코치의 코칭을 듣든, TV를 볼 때보다 몸에 집중이 더 잘 된다. 비나 눈이 오거나 너무 덥고 춥거나 미세먼지가 많으면 뛸 수 없다.  


프로는 고사하고 아마추어라는 말도 부끄러운 (쪼렙인) 나는, 안이든 밖이든, 달리는 것을 여전히 힘들어 한다. 그날 그날의 수면의 질이나 식사량, 기분이나 컨디션에 따라 힘든 정도가 매번 다르고 달리기를 마치면 기록을 남기는데 운동 강도는 항상 ‘어려움 - 대화가 버거우며 호흡이 어려운 수준’이다. 그런데 왜 계속 달리는걸까?

  



얼마 전 빌라선샤인 입주설명회 프로그램 중 하나였던 황선우 작가님의 강연을 갔는데 10년 넘게 꾸준히 달리기를 해왔다며, 20대와 달리 30대가 되어 달리기를 비롯한 운동을 할 때 형상보다는 기능과 상태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살을 빼고 라인을 만드는 것보다는 더 오래 달리고, 더 무겁게 많이 들고, 더 깊이 호흡하고 느끼는 것에 말이다. 그리고 몸도 몸이지만 “운동은 마음의 탄력과 정신의 혈액순환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내 몸의 기능과 상태도 매일 다르고, 상황과 날씨도 매일 다르다. 내가 어쩔 수 있는 유일한 것은 달릴지 말지 선택하는 것, 그리고 되도록이면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유익한 방식으로 달리기로 결정하는 것 뿐이다.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든 아스팔트 위에서 달리든 달리면서 내가 생각하는 것은 오직 달리기뿐이고, 이를 통해 도리어 내 일상을 즐기고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그게 내가 달리는 이유라면 이유다. 




비 온 뒤, 밤에 달리는 홍제천은 영화나 스포츠 경기를 보며 달리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상쾌했다. 여름이 더 깊어지기 전에 더 많이 밖에서 달려야겠다고 달리는 내내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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