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난 바스의 발견

스페이스K 헤르난 바스 <모험, 나의 선택>

by zoey


요사이 좋은 전시에 목말라있었다.


이직을 하면서 몇달 정신 없이 바쁘기도 했고 마땅히 가고싶다 생각이 드는 전시가 없기도 했다. 다른 사람 제안으로 같이 가게된 전시는 정말 돈이 아까웠고, (무슨 전시였는지는 비밀..) 세계적인 작가의 대규모 회고전이라고 해 기대하고 갔던 전시는 좁고 복닥복닥한 전시 동선에 도무지 아무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뭐 전시에 가성비 따지기는 뭣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기대에 상응하는 만족감 없이 나오면 뒷맛이 씁쓸한건 사실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스페이스K의 헤르난바스 전시는 아주아주 가성비(?) 좋은 전시였다.


#1 매력적인 인물 묘사

the sip in.PNG The Sip in / 2019

내가 만난 첫번째 헤르난 바스 작품.

인물 하나하나의 어딘가 퇴폐적이며 아름다운 묘사가 마음에 들었던 작품.

재작년 청담 소전서림이 오픈할 무렵 1층 카페테리아에 크게 자리한 그림을 보고 누구의 것인지 찾아보며 헤르난 바스를 알게되었다. 뉴욕의 첫번째 게이바라는 배경설명을 듣고보니 인물 하나하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과 표정이 재미있다. 흰손(아마도 바텐더의)은 투명망토라도 쓴듯 잘려있는데 이런 부분이 마치 바 안에서 손님들을 관찰하고 바라보는 바텐더가 된듯한 느낌을 받게한다. 이런 시선은 바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쭉 이어지는데 어딘가 불안정해보이고 그러나 아름다운 인물들이 등장하고 표정이나 패션, 헤어스타일, 상황들이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인물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재미가 있다. 그림 속 인물이지만 정말 그 인물에 대해 궁금해진달까. 그림 한장으로 그 인물에 빨려들게 하는 흡입력이 대단하다.


보통 헤르난 바스의 작품에는 소년과 어른의 경계에 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초기작에선 배경의 비중이 크고 인물이 작게 묘사되나 최근의 작품으로 올수록 인물의 묘사가 섬세해지고 크기도 커진다.

초기작에선 인물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강렬한 붓터치와 색감의 배경이 두드러지는 편이다.

다운로드.png Ask the sk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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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스토리텔링

실제로 바스는 다양한 영역에서 영감을 얻는다 한다. 고전문학이나 종교, 신화, 초자연주의, 영화에서 발췌한 단편을 엮어서 새로운 스토리 텔링을 구성한다.

Pink plastic lures,
20210309000908_0.jpg The Monster Hunter

실제 대상을 가져와 사용하기도 하는데 <Pink Plastic Lures>에선 제임스딘과 포르쉐552가(그를 상징하는) 등장하고, <괴물사냥꾼 The Monster Hunter>에 등장하는 네시 사냥꾼 또한 Steve Feltham이라는 실제 인물을 묘사한다.(24년동안 네스 호에 머물며 괴물을 추적한 인물) 모험과 미스테리물 덕후인 나에겐 이런 부분이 보는 재미를 더해주는 큰 요소로 작용했다.


같은 맥락에서 바스의 인터뷰를 살펴보면 모든 회화가 어떤 이야기 책 속에 숨겨진 삽화같이 느껴진다고 고백하는데 그는 루브르 박물관 안에서도, 어쩌면 이곳에 걸린 수많은 그림들이 다양한 이야기들의 삽화를 모아 전시해 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너무 사랑스러운 작가가 아닌가?) 감상자의 입장에서도 그의 그림은 연속되는 스토리 속의 스틸컷같은 느낌으로 감상하게 된다. 아무것도 모르고 봐도 재미있지만 견고하게 층층이 쌓인 스토리를 이해하면 훨씬 더 풍부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 플로리다와 질풍노도의 감성

어느 문화권, 어느 예술 분야에서든 사랑 받는 것이 바로 청춘, 질풍노도의 감성이다.

바스의 그림에는 금방 비가 쏟아질 것 같은 우중충하고 축축한 공기와 이곳에 홀로 내던져 진 것 같은 아슬아슬한 젊음의 불안이 가득 배어있다.

4f15e60b754e7563b309d50ae3c50f54.jpeg The start of theend of the longest drought

바스가 표현하는 청춘의 느낌은 결이 사뭇 다르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플로리다적인 감수성이 가득 배어있어서이다. 작가는 마이애미와 북부 플로리다에서 나고 자랐는데 그곳에서 자라며 UFO나 유령, 하디 보이즈, 네스호의 괴물처럼 미스테리한 소재들에 관심을 갖게된 것으로 보인다. 으스스한 모텔과 버려진 자동차가 있는 수풀이 우거진 마당, 그리고 그 옆의 플라밍고.. 전형적이지 않은 소재들의 조합이 신선하고 또 매력적이다. 넷플릭스에서도 <기묘한 이야기> 라던지 누군가 죽고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모험 스토리를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들에게 바스는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작가이다.


작품을 한눈에 봤을 때 반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 혹은 작가에 대한 배경지식이 생기고 나중에 반해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헤르난 바스는 전자와 후자를 모두 가뿐하게 충족시킨다. 배경을 전혀 모르고 봤을 때도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고 스토리를 뒤져보았을 땐 정말로 반하게 된달까.


개인적 취향으로 헤르난 바스는 최근의 신작이 참 좋고 이번 전시에는 펜데믹 이후에 그려진 다수의 최신작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2021년 그려진 (최최최) 신작이 있으니 많은 분들이 다녀오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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