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놀기 위해 일을 잘하기로 했다

나의 일과 공간, 음악, 술과 책, 그리고 불안과 즐거움

by zoey




책을 하나 접했다.

<WORK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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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써머리만 읽고도 굉장히 큰 감명을 받았던 이유는 지금 내 삶에서 가장 큰 고민거리가 그들의 고민과 일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른에 가까워진 나이는 나에게 어떤 조급함을 느끼게했다. 이 조급함의 근원이 어느 생각 없는 사람이 악의 없는 듯 빈정대며 말하는 여자의 서른살은 꺾이는 거라는 수준 낮은 생각에서 비롯했을까도 상당히 큰 비중을 두고 고민했다. 하지만 내가 조급해하던 이유는 돈과 커리어, 내가 펼쳐나가고 싶던 내 미래에 대한 굵직한 문제들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나눌 사람이 없었다.


서른이라는 나이 그 숫자의 상징성보다는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두근거리던 대학시절의 내가 꿈꾸던 나의 서른살과 실제 내 서른살의 삶의 괴리가 너무 커지진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공포였다. 그리고 이 공포심을 바탕으로 2월의 첫째주를 지난 주말, 나는 세우지 못한 신년 계획을 세워볼까한다.

사실 좀 재미있는 것은 난 2019년에도 2월달은 다되어 신년 계획을 세워 이 브런치에 글을 썼다. (하하 게으른 나) 나는 생각을 하고 싶을 때 글을 쓰는 버릇이 있다. 생각은 무형으로 스쳐지나가지만 내 생각의 족적을 글로라도 남기면 좀 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생각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 인생의 화두는 '일' 이다. 2017년 2월 졸업을 하고 5월부터 일을 시작. 그 사이 잠시 휴식기도 있었고 다른 회사에 다닌 시기도 있었지만 사실 상 VMD로의 커리어를 시작한지는 만 2년을 꽉 채웠고 이제 3년차의 직장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회사에서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는 판단 속에 회사 밖의 일에서 즐거움과 의미를 찾아보고자 하기도 했고 (이를테면 운동이라던지 새로운 분야에서의 창업..) 실제로 그 일들은 나에게 새로운 설렘과 에너지를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하고 있는, 하게 될 일을 직시해야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VMD라는 일은 상당히 특이한 구석이 있다. 새로 만나게 되는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VMD가 무엇인지 설명을 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하고 있는 일이나 관심사에 따라 다르게 설명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뭐 단어 그대로 설명하자면 Visual Merchandiser이니까 시각적으로 브랜드나 공간을 연출해 판매를 증진시키는 일을 뜻한다. 근데 이게 참 재미있는건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이 VM의 경계가 상당히 모호하다는 거다. 제품을 올려놓는 선반의 모양보다 그 매장에 직원이 입은 무심한 듯 감각적이어 보이는 앞치마와 흘러나오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재즈 선율이 더 인상 깊을 때가 많다. 일을 하다보니 점점 더 이 사전적 의미의 VM 외의 것의 중요성을 느끼고 관심이 간다. 내 최종적인 목표가 무엇이다 라고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지만 어쩌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은 이 애매모호하지만 아주 매력적인 포인트들을 기획하고 구현하는 일에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성장하기 위해서 다른 밀레니얼 세대들이 어떻게 살고 일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부지런하면서도 게으른 사람이다. 신년 계획을 2월이 훌쩍 넘은 지금 세우는 것만 보아도, 그리고 주말 아침 오후 4시가 되어야 집 앞 카페에 도착한 것만 보아도 나는 확실히 게으른 편이다. 그런데 또 나는 집에 누워 가만히 있지는 못한다. 놀아도 제대로 놀고 싶고 봐도 좋은걸 보고싶다. 잠깐 카페에 간다하더라도 최고의 경험을 하고 오고 싶어 열심히 찾아본다. 그래서 부지런히 좋은 공간을 찾고, 좋은 아티스트, 좋은 전시를 찾아 경험한다. 이게 밀레니얼의 특징인지 내 지독한 성격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평생에 걸쳐 끼고 살아야하는 내 성향인 것 같으니 이걸 잘 활용해보기로 한다.




하나, '일'을 잘 하기로 한다. (본업)

올해는 좀 싫은 것을 들여다보는 해가 되었으면 한다. 사실 나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하지만 또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다. 이왕 할거니까 일을 잘 하는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벌써 몇개의 책을 주문했다.. 열심히 읽자)

내 본업은 감사하게도 내가 그리는 커리어에서 성장하기 좋은 일이다. 그리고 또 나는 본업을 할 때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회사의 이름을 지우고 내가 한 일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당당하고 또박또박하게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회사에서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무수한 일들에 대한 가능성을 닫지 않도록 한다.


둘, 굵직한 가지 하나를 길러본다. (배움)

MBTI를 하면 난 늘 ENFP가 나온다. 이 성향의 특징은 끝맺음이 없다는 것이라고 하는데 뭐 실제로도 그런 것 같다. 벌이는 것은 많은데 끝맺기가 참 힘들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 순간의 트랜드를 분석해 일시적인 형태의 프로모션을 디자인하는 VMD를 하는 데에 좋은 성격같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런 산만함과 용두사미적 에너지를 모으는 하나의 굵직한 테마를 만들어주기로 한다. 나는 올해 어떤 '경험'을 디렉팅하는 나의 미래를 위한 자양분을 쌓기위해 산만하고도 다양한 활동을 해볼 것이다.


셋, 세련된 어른으로 성장한다. (취향)

아 이건 내 커리어적인 부분은 아닐 수 있지만 어쩌면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세련된 어른으로 성장하는 데엔 몇 가지 기준이 있다. 문득 보게 된 어떤 사람의 세련된 글씨체를 보고 그 사람이 달리 보이기도 한다. 내가 입은 옷의 상표나 듣고 있는 음악이 그걸 이야기해주기도 한다. 어느 하나 심각하게 중요한 것 같진 않은데 이런 자그마한 것 하나가 그 사람을 멋지게 보이게한다. 내가 좋아하는 걸 좀 더 좋아해보기로 한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영화를 좀 더 열심히 파고들어본다. 내가 좋아하는 술에 대한 책을 읽어본다. 뭐 사실 내가 좋아하는걸 열심히 한다는 것 자체가 내가 원래 제일 잘하는 것이기 때문에 꽤 달성하기 쉬운 목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포인트는 작년처럼이 아니라 좀 더 성장할 것. 스쳐 흘려보내지 말고 감상을 기록하기, 다른 이와 나누기, 그림을 그리기. 여러 방법을 테스트해보며 내 취향을 세련되게 성장시킬 것이다.


나의 스물여덟, 서른이, 그리고 나의 인생이 더 다양한 일들로 충만했으면 한다.

최근 본 영화 마지막 구절이 인상 깊어 이 구절을 적으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아름다움도 두려움도 모두 경험하라. 계속 걸어나가라. 감정에는 이르지 못할 거리란 없으니"

_ 라이너 마리아 릴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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